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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Oct 07. 2019

확실한 건 음울과 혼돈 그 자체라는 것

[영화] 조커(2019)


코미디언을 꿈꾸던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와킨 피닉스)은 어떻게 광기 어린 범죄자가 되었나. 영화 ‘조커’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Don't (forget to) SMILE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을 보며 드는 생각은 세 가지였다.


1. 이 완성도의 99%는 와킨 피닉스의 공이다.

2. 덕분에 진이 다 빠져서 두 번은 못 보겠는데 다시 보고 싶다.

3. 근데 조커한테 이런 서사를 부여하는 건 위험하지 않나?


열연 그 이상의 경지를 보여준 러닝 타임의 지배자

이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느껴지는 건 전적으로 와킨 피닉스 때문이다. ‘조커’ 속 와킨 피닉스의 연기는 열연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123분의 러닝 타임을 완벽하게 지배한 어나더 클라스의 어떤 것이었다. 3D도 아닌데 배우의 표정이나 몸짓이 아이맥스 화면을 뚫고 나와 극장 전체를 힘 있게 휘어잡는 걸 경험했다.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미친 정신병자의 머릿속을 강제로 체험당한 기분이었다. 엄청 긴장하고 봤는지 극장을 나오는데 승모근이 뻐근했을 정도.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내뿜는 에너지와 몰입도가 상당해서 두 번은 못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몇몇 장면이 자꾸 떠올라 다시 보러 가고 싶어 졌다.


막 보고 나와서는 모든 것이 명확해 보였는데, 다시 곱씹어 볼수록 영화가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의 프레임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그것도 좀 소름이다. 아서는 그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고 안 죽였을 수도 있고, 아서의 어머니 페니가 진실을 말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 모든 게 웬 정신병자의 망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확실한 건 음울혼돈 그 자체를 느꼈다는 것, 이거 하나다.


I used to think that my life was a tragedy, but now I realize, it's a comedy

내가 기억하는 조커들의 모습은 이렇다. ‘배트맨(1989)’의 잭 니콜슨은 넘사벽 포스의 그로테스크한 광대, ‘다크 나이트(2008)’의 히스 레저는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한 빌런,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의 자레드 레토는 분량이 안습이었던 사랑꾼. ‘조커’의 와킨 피닉스는 가장 현실적이고 음울한 조커로 기억하게 됐다.  


설득력 있는 서사를 지닌 빌런은 무척 매력적이고, 조커는 전무후무한 임팩트甲 빌런이다. 하지만 조커에게 이런 서사를 부여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아서는 TPO를 가리지 않고 웃음이 터지는 체질의 소유자다. 멘탈에 문제가 있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노력했다. 그러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삶은 소시민이자 사회적 약자였던 그를 짓밟고 또 짓밟았다. 부패와 탐욕에 찌든 도시에서 정신줄을 붙잡고 버텨내는 건 혹독했다. 그래서 다 놔버리고 조커가 된 게 이해는 갔다. 그런데 폭주하며 후련함을 넘어 짜릿함을 느끼는 그의 모습에 동정이나 연민을 줄 여지는 결코 없었다.


조커는 결국 비정한 사회의 학대가 낳은 결과물이었다, 로 끝내기에 ‘조커’의 막바지는 좀 많이 아찔하고 위험해 보였다. 조커의 얼굴이 하나의 아이콘이 되고, 조커의 행동이 무슨 사회 현상처럼 번져 통제 불능이 되던 고담시의 모습이란.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에서는 충분히 걱정할만하다고 느꼈다.-차원이 다른 하이퍼 리얼리즘일 듯-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 귓가에서 스티븐 손드하임의 ‘Send In The Clown’이 맴돌 것 같다.



뱀발:

‘조커’를 보고 그동안 몰랐던 내 조커 취향(?)을 알게 됐다. 조커는 무근본 신원미상 노빠꾸 돌+I 미친놈인 게 좋다. 잭 니콜슨부터 와킨 피닉스까지 다 달라서 매력적이지만 역시 내 픽은 히스 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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