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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Feb 03. 2020

Long live the QUEEN

모녀가 함께 하는 즐거운 덕질

에↗↗↗오↘↘↘

엄마가 퀸을 좋아하셨다는 걸 알게 된 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덕이다. 엄마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딱히 연예인을 좋아하는 티를 내셨던 적이 드문데 동생과 함께 보랩을 보고 오셔서 직접 말씀하셨다. 엄마도 왕년에 퀸을 좋아했다고. 그렇게 난 코블리 싱어롱 후기를, 엄마는 그 시절 추억을 서로 나누며 식구들 모두 얘기를 꽃피웠다. 소녀의 얼굴로 구오빠를 언급하는 엄마의 모습은 처음이라 새롭고 또 좋았다. 엄마의 최애멤은 당연히 로저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브라이언이었던 걸로 밝혀져 반전의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 현대카드에서 슈퍼 콘서트 공지를 띄웠을 때는 ‘무조건 같이 모시고 간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원래 슈콘은 현카 소지자인 친구 찬스로만 보러 갔지만 그때는 내가 직접 현카를 만들어 점심시간에 PC방 원정을 다녀왔다. 막콘 좌석 2장+스탠딩 2장, 도합 4장만 잡게 해 달라는 내 결연한 의지와 용병 지인의 도움 덕에 티켓팅도 보람 있게 성공! 시원하게 앱카드를 긁은 순간에는 오랜만에 효도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백만 년 만에 넘나 쾌적하고 씐났던 스탠딩b

그리고 마침내 2020년 1월 19일 디데이. (올 때마다 다신 안 오겠다고 결심하는) 고척돔에 도착해서 엄마가 지정석 게이트로 입장하시는 걸 본 뒤에 나와 동생도 춥다는 소릴 연발하며 스탠딩 구역에 들어갔다.


호빗인 나와 디스크 환자인 동생은 사람에 안 치이고 안전하게 보는 게 목표라 상대적으로 한산한 뒤편에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퀸 내한이 내가 겪었던 모든 스탠딩 중에서 최고였다. 적어도 내 주변은 시작하자마자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지도 않았고, 다들 각자 적정거리를 유지하면서 즐겁게 관람하는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서 있던 자리를 보니 시작 전에 있던 곳에서 절반 정도 전진해온 듯해 놀랐다. 우리 대체 언제 이렇게까지 앞으로 온 거냐고 깔깔거리다가 ‘Don't Stop Me Now’ 때 흥을 주체 못 하고 스카이 콩콩을 탄 수준으로 점프했을 것이라고 정리.


내가 이 공연을 生눈으로 보다니 (오열)

전체적으로 엄청 세련되고 에너지 넘치는 공연이었다. 부내가 느껴지는 조명과 레이저를 비롯한 각종 무대 효과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잘하나 싶었던 아담의 가창력과 무대매너, 레드 스페셜을 든 브라이언옹의 포스, 드럼을 부술 것 같은 로저옹의 박력도 더할 나위 없었다.


조명이 꺼지고 ‘Innuendo’ 음원이 라이브 음향으로 바뀌는 순간부터 전율 그 자체였다가 첫 곡인 ‘Now I'm Here’부터는 미친 듯이 방방 뛰고 소리 지르며 공연을 만끽했다. 장소가 고척이라 음향은 별 기대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음향도 너무 좋았고-역시 돈 쓰면 해결됨-, 전광판만 잘 보고 오는 게 목표였는데 퀸과 아담도 너무 잘 보였다.  


당연히 첫날도 그랬겠지만 이날 아담은 끼와 실력으로 무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관객까지 휘어잡았다. 실제로 보니 2014년 공연도 혐생 때문에 놓치고 직캠만 보며 마음 아파했던 지난 시절을 완벽히 보상받는 느낌. ‘Killer Queen’ 때는 요염하게 부채를 쥐고 관객과 밀당하더니, ‘Bicycle Race’에서는 바이크를 타고 등장해 어나더 레벨의 잔망으로 익룡 소리를 뽑아냈다. 노래는 고척을 완전히 찢었다, 혹은 고척돔 뚜껑을 날려버렸다 정도로 묘사할 수 있을 듯. 특히 ‘Who Wants to live Forever’는 섬세한 감정 처리까지 완벽해서 그저 입 벌리고 감상했다. 진심 아담 램버트 너무 잘한다는 말은 몇 번을 외쳐도 모자라다.-이렇게 존잘인데 헤이터들은 왜 그렇게 아니꼽게 후려치는지 이해 불가-


분명 프레디도 하늘에서 지켜보며 좋아했겠지 :)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중 하나는 역시 ‘Love Of My Life’. 브리옹이 돌출 무대에서 “안녕!!!이라 인사하고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자, 공연장은 객석의 우렁찬 떼창과 형형색색의 핸드폰 플래시 불빛으로 가득 찼다. 그때부터 울컥했는데 전광판에 등장한 프레디 머큐리를 보니 눈물이 안 흐를 수가 없었다. 알고 보는 연출인데도 실제로 경험하니 뭉클함과 애틋함이 뒤섞인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공연이 끝나고 동생과 같이 퇴장하면서 허리와 발바닥이 부서질 것 같다고, 이틀 내리 스탠딩 뛰었다면 우린 죽었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다 브리옹과 로저옹을 생각하며 반성했다. 아직도 무대에서 그렇게 쌩쌩하고 짱짱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시다니. 역시 락스타는 다르다.


집으로 가는 길에 너무 좋았다며 상기된 얼굴로 행복해하시는 엄마와 생일선물을 미리 받은 것 같다고 기뻐하는 동생을 보니 뿌듯했다. 서울 공연이 끝난지는 한참 됐지만, 아직 퀸뽕이 덜 빠져서 요즘도 무심결에 자꾸 ‘Love Of My Life’ 마지막 부분을 흥얼거리고 있다.


무대에 우주를 가져다 놓으신 닥터 브라이언 메이b

Back hurry back

Please bring it back home to me

Because you don't know what it means to me

Love of my life

Love of my life


다시 서울에서 퀸버트 무대를 볼 수 있을까. 기약할 다음이 과연 있을까 싶어 기쁘고 행복했던 만큼 괜한 애틋함도 컸다. 브리옹 로저옹 남은 투어 잘 마치시고,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옛다 내 마음♥ 심장을 통째로 내어주시는 롹스타 본새에 기절 ㅇ<-<

이제  ‘퀸 락 몬트리올’재개봉해서 싱어롱 관만 열어주면 바랄 게 없겠다. 그때 또 엄마랑 손 잡고 온 가족 총출동해야지. Long live the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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