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어: MCU 인피니티 사가
나의 2019년 최다 관람작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다. 4월에 CGV 서버가 터지고, 이선좌 팝업에 피 말리다가 겨우겨우 개봉날 조조 표를 사수한 기억도 이제는 다 추억. 극장에서 본 영화를 또 보는 걸 좋아하지만 당분간 ‘엔드게임’만큼 많이 보는 영화는 없지 않을까 싶다.
내 MCU 입덕 계기는 2012년 ‘어벤져스’였다. 그전에 본 마블 영화라고는 ‘아이언맨’ 뿐이라 아는 캐릭터는 토니 스타크 하나였는데 극장에 가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주연끼리 모인 팀 업 무비라니! 매력 쩌는 캐릭터들의 조합, 부내가 진동하는 현란한 시각 효과, 거기다 웅장한 음악까지. ‘어벤져스’가 태어나서 처음 본 슈퍼 히어로 무비는 아니지만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후 그동안 놓친 MCU 작품들을 뒤늦게 찾아보며 토니 스타크 입덕 부정기를 끝내고-당당히 MCU 최애가 됨-, ‘에이전트 오브 쉴드’ ‘에이전트 카터’부터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다 챙겨봤더니 어느새 최종장. 2008년 4월 ‘아이언맨’부터 2019년 7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이르기까지, 마블만 11년의 서사를 쌓은 게 아니다.
1020의 길목에 ‘해리 포터’ 시리즈가 있었다면, 대학교를 졸업해 사회인이 되는 동안에는 ‘MCU 인피니티 사가’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내가 어느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극장에 갔는지 등을 회상하면 덩달아 조금 찡해진다.
원래 눈물이 없는 편도 아니지만-나이 탓임- 극장에서 슈퍼 히어로물을 보며 눈물을 펑펑 쏟다 못해 음소거 모드로 오열할 줄은 미처 몰랐다.
‘엔드게임’을 n번 보는 동안 안 울었던 적이 없다. 캡틴 아메리카가 종이 쪼가리처럼 찢기는 방패를 쥐고 홀로 타노스를 상대했을 때부터 눈물이 줄줄. 어벤져스의 역전이 시작됐을 때는 희열의 눈물이 흘렀지만, 그게 다시 비통한 눈물로 바뀌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솔로 시리즈든 팀 업 시리즈든 만듦새가 일정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캐릭터 사용이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각각 좋아할 수밖에 없는 포인트들이 많았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토니 스타크와 피터 파커의 유사 父子 관계성과 서사였는데, 이건 예상 밖으로 내 차애가 피터 파커가 돼 버린 탓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스파이더맨이 등장하자마자, 이렇게 일언반구도 없이 툭! 내놓을 수 있구나 싶어 그 신선함에 덕통사고를 당했는데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기점으로 출구가 영영 막혀버렸다.
무튼 덕분에 즐거웠던 11년이었다. 이것보다 더 크고 웅장한 팀 업이 나올 수 있을까. 마블이 앞으로도 잘해주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 페이즈를 원년 멤버들을 응원했듯 좋아할 수 있을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토르: 러브 앤 썬더’ ‘앤트맨 3’ 제작 소식도 반갑지만 일단은 디즈니+부터 빨리 좀 국내에 론칭됐으면 좋겠다. 해도 내후년이라니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