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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May 02. 2018

"내게, 아버지란"

단순한 질문에서 떠올린 어떤 기억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만큼 그는 공기 같았다.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늘 곁에 있는 묵묵하고 성실한 사람. 아버지는 3살 때 부모를 여의었다. 형제도 없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정이 많았다. 결혼해서는 어머니의 나이 어린 동생들을 건사했다.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수십 년의 공무원 생활을 접으며, 선거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모두가 의아해했다. 우리 집엔 돈도 없고, 빽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정치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부 거짓말 못하는 전형적 모범생. 그러다 끝날 ‘바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정말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리운 고향, 단양에 군수로 금의환향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점점 미워지기 시작했다.


                               /


 무모했다. 단양은 보수적 성향이 짙은, 노인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기호 1번을 배정받는 것이 엇보다 유리했다. 하지만 1번으로 출마했던 전직 군수가 두 명이나 출마한  상황에서 해당 정당의 공천을 받을 리 없었다. 그래도 희망을 품었다. 아버지는 조력자를 자처하는 ‘친척의 말’을 믿었는데,  ‘단양에서 입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자영업자일 뿐이었다. 때문에 이리저리 치이다 이름 없는 정당에 정착했는데도, 이상하게 포기를 못했다. 누가 봐도 어리석었다.


아버지는 미련하게 분투했다. 아직 본 후보 등록 전이어서 유세 시에는 명함 정도만 뿌릴 수 있었는데, 매일 자신이 구상한 ‘정책 노트’를 보며 의지를 다졌다. 하루는 내가 지원에 나섰다. 지역 축제에도 가 논두렁도 도는데, 한 할머니가 욕을 하며 쫓아왔다. “난 기호 1번 아니면 절대 안 찍어!” 그녀 떠난 자리엔 조금 전 건넨 명함이 구겨진 채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다. 노력은 꼭 결실을 이룰 것이라고 답답하게 말했다.


그 노력이 ‘돈’이란 사실을 아버지만 모르는 듯했다. 다른 후보들은 선거 사무실, 현수막 등을 통 크게 질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조그만 공간 마련에 명함만 찍었을 뿐인데도 이상하게 돈이 샜다. ‘단양에 있는 친척’이 직접 돈 관리를 했는데, 어린 내 눈에도 돈을 빼돌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 보는 안목이 낮은 것 아니냐”라고 화를 내도 소용없었다. 돈도 쪼들리고 이상한 사람들만 꼬이는데 속 터지게 혼자 정의로움을 자부했다. 


시간이 지나도 인지도는 오르지 않았다. 돈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여론조사를 보니 낙선은 기정사실이요, 기탁금을 회수할 가능성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설득했다. “공무원 생활 명예롭게 하셨는데, 거지 꼴 되면 어떻게 해요” 본 후보 등록 이틀 전, 아버지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애매하게 변죽만 울리다 끝난 상황이었다. 도망치듯 단양을 떴다. 찰거머리 같던 ‘그 친척’은 연락도 없었다. 아버지는 입을 닫았다.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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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전 일이다. 우리 집엔 경제적 여파가 꽤 있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고, 언니와 난 ‘시집갈 때 혼수도 기대하지 말자’며 아버지 탓을 했다. 그는 여전히 침묵했고 가끔씩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렇게 갈등이 깊어지던 어느 날, 아버지와 우연히 순대 국을 먹게 되었다. 나는 물었다. “연금생활자 아 어쩔 뻔했어요. 왜 그리 군수에 집착했어요?" 아버지는 조용히 숟가락질을 잇다 답했다. “평생 내 맘대로 한 게 하나도 없어서”  


순간 탁 하고 마음을 치는 게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도 꿈이 있는 인간”이란 깨달음이었다. 난생처음 그를 ‘한 개인’으로 받아들인 순간이기도 했다. 미안했다. 그리고 쪽 팔렸다. 내가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었던 기억은 한 사람에겐 너무도 절실한 이상향이었으니까. 딱 한 번 자신을 위해 썼던 카드. 단지 선거가 아닌 존재감의 표방. 그것은 평생을 그림자처럼 살아온 이의, ‘온전히 살아있음’에 대한 열망이기도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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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아버지란, 한 때 미웠던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은 ‘터무니없는 꿈’까지도 힘껏 응원하고픈 사람이다. 격렬히 망할 목표를 향해서도 시속 100km로 함께 질주할 수 있는. 그것은 의리 없는 이 세상에, 그의 마지막 지지자로 남고 싶은 내 소망이기도 하다. 그가 내게 그러했듯, 100만 분의 일이라도 인간답게 돌려주고 싶어서.


5월이다. 누군가의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이 글을 썼다. 내게 아버지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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