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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Jun 28. 2018

베스트셀러의 슬픔

베스트셀러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씁쓸한 관조



<찌질한 인간, 김경희>를 읽다 보면, ‘책 판매’에 대한 저자의 초조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바로 서점 매대에 깔린 자신의 책이 얼마나 반응이 있는지를 숨어서 지켜보는 장면이다.  저자는 막상 책을 집으려다가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고 아쉬워한다. 자신에겐 분신과도 같은 책이 그 무엇보다 눈에 띄길 바라지만, ‘거대하게 쌓인 경쟁 책들’ 사이에서 겨우 숨 쉬고 있는 현실을 깨달으며 깊은 자조감,  안타까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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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에 대한 열정이 한창이던 때, 이 책을 접했다. 책을 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수십 군데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고 결국 한 출판사와 인연이 닿았다. 특히 출판사와 한창 편집 작업을 하던 시기여서, 김경희 저자가 겪었던 ‘판매’에 대한 초조함은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었다. 그런 건 출판사가 알아서 해 줄 거란 믿음이 강했다. 그런데 웬걸? 출간을 하자마자 출판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책이 세상에 나왔으니, 잘 파셔야 합니다. 독자들이 책을 찾지 않으면 2주 만에 매대에서 사라질 수도 있어요"


실제 내 책은 일부 서점에서 소소하게 유통되다 한 달 만에 서점 매대에서 사라졌다. 출판사의 영세한 경제사정 탓에 그 어떤 광고도 지원받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은 홍보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셀럽들에게 무상 홍보를 부탁하는 인스타 DM,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고. SNS 좀 한다는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하며 리뷰를 부탁하기도 했다. 책의 타깃인 2534 세대들이 많이 쓰는 APP회사에 무작정 전화를 하기도 다. 마음이 동하면 콜라보 기회를 노릴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다. 결론은, 노 답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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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을지는 몇 개월에 걸쳐 결정되었지만, 이제는 단 3주 만에 판가름이 된다”라고. 일 년에도 수만 권이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출판시장에서, “매출의 80%는 상위 10개의 출판사가 차지한다”는 말과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출판은 더 이상 콘텐츠가 답이 아닐지 모른다. ‘단기간에, 어떻게 소비되느냐’의 싸움이다. 반응이 없는 책들은 매대에서 단시간에 퇴출되는 것처럼, 시장은 작가의 열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시장의 그늘을 말해주는 ‘사재기 문화’란 것도 있다. 알바를 고용하거나, 서점과 짜고 초기에 ‘의도적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매출을 통해 책의 순위가 올라가고,  그 순위로 눈에 띈 책들에게 소비자들의 쏠림 현상이 생긴다. ‘베스트셀러 조작’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나는 이에 대해서 완벽한 비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명의 도덕적 인간으로서는 “어째 그래?”란 비난을 던질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경제적 능력’에 대해서는 부러움도 생긴다. 정말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경지기에.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상당히 다단한 감정을 겪었다. 먼저 출판사가 나를 발견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이토록 무책임하게 방임함에 대한 원망.  작가의 역할이 과연 쓰는 것인가 아니면 파는 것인가에 대한 혼돈. 좋은 책은 저절로 알아보게 되는 것인가, 알아봐 주도록 만들어지는 것인가 등. 그리고 이 감정들은 그 끝에서 내게 이런 질문을 남겼다. “나는 이 프레임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만약 그 프레임 안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말이다.


단순한 질문 같지만 내게 이 질문은 “계속 글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의 질문과도 같았다. 무언가를 써 내려가도 발견해주는 이가 없다면 그 글은 ‘일기’로서만 역할을 할 것이니까. 만약 운이 좋아 힘 있는 출판사를 만나면 ‘다행’인 일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얼마큼 장사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등. 비슷한 시기에 ‘베스트셀러 조작’을 위해, 과거 책 사기 알바를 했었다는 모 음원 회사 대표의 ‘음원 사재기’에 대한 칼럼을 접하며, 막막함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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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는 너무도 반갑다. 자신의 글을 읽어줄 독자를 스스로 모집하고, 월 1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매일 독자들에게 ‘새로운 에세이’를 보내준다는 그 의도는 너무도 신박하다. “글쓰기는 과연 돈이 되지 않는가”란 질문에서 시작했다는 이 프로젝트는 큰 호응을 얻으며 1차 완료되었다고 한다.  독자의 유치, 그 과정에서의 홍보, 최소의 수익 확보까지 3박자를 완벽히 만족시킨 것이다.  


프레임 안에 어떻게 낄 것인가를 고민했던 내게, 프레임 자체를 멋있게 박차 버리는 그녀의 시도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 글에 대해서는 꾸준한 이력을 남겨 온 그녀기에 ‘글쓰기에 대한 그녀만의 고민’을 확인해보는 사례이기도 했다. 참고로 그녀가 등단한 한겨레 신문의 <손바닥 문학상> 작품 명은 ‘상인들’이다. 건물주의 손녀로 태어나 상인들이 북적이던 동네에서 자랐지만, 정작 본인은 용돈이 아닌 누드모델 알바로 생활을 잇는 이야기 말이다. 그 역시도 그녀가 택한 새로운 프레임이렷다.    


글을 쓴다는 것은 확실히 한가로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내 글을 꾸준히 써 내려간다는 것 외에, 그 글을 어떤 프레임 위에 올려놓을 것인가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현상들에 대해 이것저것 불평하듯 늘어놓았지만, 팩트는 팩트다. 그 팩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대착오적 인간’이 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과연 나는 ‘어떤 프레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의 고민이 든다. 덧붙여 그것이 과연 성공적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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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이란 단어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글쓰기에 대한 결론은 한마디로 ‘유혹’인 것 같다. 누군가 멋있게 해 낸 일을 나도 해 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거대한 출판사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도 없을 것 같아서다. 이는  ‘승차’가 가능할 수 있다면, 구태여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나 자신이 못내 쓸쓸하고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에 대한 주목은 계속된다. 부디 주류 이상의 파워를 창조해, 모두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던져주길 바라는 '하나의 응원'이기도 하리라.


흔들리는 자의 글쓰기는 이렇게 계속된다. 추신하듯, 일면도 없는 김경희 작가에게 안부를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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