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의 얼굴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회사 점심시간에 팀 과장님들과 밥을 먹다가 체할 뻔했다. “승주 대리, 그거 봤어? 압구정에 있는 치과 교정 사기 사건. 거기서 투명교정을 한 사람이 지금 앞니로 국수도 못 끊는다더라” 그러자 다른 과장님이 맞장구를 친다. “나도 봤어. 진짜 심하던데. 이벤트로 일단 사람들을 잔뜩 끌어 모으고, 치료는 페이닥터들이 대충 하고. 어, 그러고 보니 자기 교정하고 있잖아. 어디서 한다고 했지?” 순간 당황스러움에 말까지 더듬거렸다. “저, 그 치과 같은데요. 압구정에 있는 투명치과”
실제 기사를 찾아보니 그곳이 맞았다. 교정 피해도 각양각색이었다. 5년간 교정을 해도 이가 붙지 않고, 오히려 부정교합에 치아 신경까지 손상되는 등.피해자 수도 어마어마했다. 사실 나도 그동안 찜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교정상담을 하러 갔는데 상담실장이란 사람이 썰을 너무 잘 풀었다. “이 투명교정은 저희 병원만의 특허상품이에요. 철사 대신 투명한 틀을 끼워 교정을 시키죠. 요즘 춘절을 맞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40% 할인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살짝 끼워드릴게요”
지금 생각하면 ‘중국인, 춘절’이란 단어에서부터 낌새를 느꼈어야 했는데 그땐 정말 몰랐다. 일단 ‘가지런한 이를 갖고 싶다’는 내 욕망이 너무 강했다. 그러니 이것이 화려한 영업력이라 생각했지, 사기의 시작이라 판단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화술을 뒷받침해주는 번듯한 건물과 인산인해의 환자들이라니. 이렇듯 한 사람의 간절함은 그럴듯해 보이는 마케팅과 만나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듯 사기의 얼굴은 의외로 과감하고 또 세련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신을 차릴 기회는 온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진심의 결여’가 바로 그 신호이기 때문이다. 치과를 방문할 때마다 내 담당 의사들은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이전 선생님은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하셨습니다”를 기계처럼 통보했다. 원장선생님을 찾았지만 온통 페이닥터 뿐이었다. 진료도 성의가 없었다. 대충 치아 상태를 체크하고 본을 떠서 다음 투명교정 장치를 준비하는 식. 불안한 마음에 물었다. “교정은 잘 되고 있나요?” 그러자 그들이 답했다. “제가 교정 전문의입니다. 절 의심하시나요?”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그만큼 ‘권위에 호소하는 것만큼’, 그리고 ‘그 영역에 내가 무지한 것만큼’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도 없으니까. 사기의 얼굴은 그만큼 허술한 듯 견고하다. 그래서 이후로도 그 치과에 갔다. 와중 다행이었던 것은 “여기서 제일 오래 근무한 선생님이 누굽니까?”를 물어 장치 교정으로 바꾼 사실이었다. 때문에 발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정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사기 병원’이란 그 단어를 밥을 먹다 체하듯 접하기 전까지는.
사기의 대책을 논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기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요즘의 깨달음이다. 서둘러 교정 전문의가 있다는 타 병원들에 전화를 걸었다. “투명교정 사기 이슈가 있는 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검진예약을 신청하고 싶어요” 그러자 열에 다섯은 이같이 말한다. “병원을 옮기시겠다고요? 그럼 처음부터 새로 하셔야죠. 그런 병원에서 제대로 했을 리가 없어요. 돈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발생할 겁니다. 장치 교정 최하 가격이 400만 원이고…”
처음엔 가만히 들었는데, 들을수록 기막혔다. 의사와 만나기도 전에 ‘공포에 호소’하며 돈부터 운운하는 실장들이라니.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진심이 터져 나왔다. “지금 저는 사기를 당해 전화를 한 겁니다. 이가 괜찮은 상태인지 알아보려고요. 그런데 지금 위로 대신 비용부터 얘기하면, 제가 그 병원에 가겠습니까?”, “… 뚜뚜뚜” 물론 상대는 어느 순간 전화를 끊었다. 길 잃은 양 좀 유인하려 했는데, 갑자기 정신을 차린 거냐며 기분이 꽤 나빠졌겠지.
하지만 이 같은 ‘사기의 얼굴’이 더욱 선명해지는 이유는, 그들과 정 반대의 이들이 존재해서다. 지인의 소개를 받고 간 치과에서 난 어떤 선인을 봤다. “전 교정 전문의는 아닙니다만, 양심적인 선생님을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실제로 그분은 매우 친절했다. “다행이네요. 교정의 90%가 잘 진행됐어요. 마무리 정도는 충분히 도와드릴수 있습니다” 이렇듯, 어떤 선인의 곁에는 또 다른 선인이 있다.
이후로도 내겐 지인들의 심심한 위로 문자, 추천 병원 리스트가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많은 피해는 입지 않았다고 그들을 달래며 또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급한 불을 끈 뒤로는 피해자들이 모여 있다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을 구체적으로 들으며 (돈만 받고 치료는 엉터리로 해서 사기를 쳤던 원장이, 그 병원을 폐업하고 새로운 병원을 오픈한 것) ‘사기의 얼굴’은 변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들었던 팟캐스트의 정신 심리학자 왈, "범죄자들이 언론에 나올 때, 왜 얼굴을 가리는지 아세요? 놀랍게도 약 30% 정도는 재범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얼굴이 노출되지 않아야 또다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엔 제발, 이 사기의 얼굴이 더 이상 가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가 빠졌다, 벌어졌다, 혹은 신경 자체가 죽었다는 많은 이들의 부작용은 그들의 '치아 상태' 이야기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무심함과 비례해 더욱 영악해진 사기의 현주소다. 갈수록 뻔뻔해지는 사기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