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을 만날 때면, 내가 꼭 해주는 말이 있다.
10년 차가 되어도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는 것. 나 역시 그랬으니 말이다.
한 번의 결정과 선택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결정으로 평생을 꼼짝없이 붙잡혀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충분히 다른 길을 걸을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
10년 차가 된다고 해서 '전문가'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선택의 갈림길이 더 복잡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몸으로 겪어 알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다음 걸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정도.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선택을 해 나가는 것이다.
20년째 이 길을 걷고 있는 나는 요즘, 어떻게 이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 또 이어갈지 고민한다. 특히 어릴 적 그토록 싫어했던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미 꼰대이다. 지난 시대를 살아왔고, 그 시간의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습관들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을 터. 이제 와서 벗어던져야 할 습관과 생각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배우고 인식해야 한다.
팀 회의에 들어갈 때면, 어리고 신입인 팀원들 못지않게 나 역시 긴장한다. 혹시라도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무의식 중에 '꼰대짓'을 하고 있지는 않을지 스스로를 살핀다. 새로운 아이템을 논의할 때는 준비한 아이디어가 요즘 트렌드와 동떨어진 것은 아닐지 염려가 앞서기도 한다. 그래서 트렌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게을리할 수 없다.
파라다이스문화재단에 브랜드 매니지먼트팀이 생겨나면서, 그동안 익숙했던 아트랩 페스티벌이나 전시 기획이 아닌, 관객과 소통할 새로운 채널을 기획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유튜브 채널이 바로 <앗, 케첩 Art, Ketch-up>이다.
https://www.youtube.com/@paradiseculturalfoundation
미지 PD와 나는 단 두 명으로 이루어진 작고도 완벽한 팀을 꾸려 우당탕탕 기획을 시작했다. 2024년 봄부터 시작된 <앗, 케첩>은 문화 예술 현직자들의 사무실 일상을 진솔하게 담아내며, 예술을 쉽고 재미있게 소통하자는 목표로 기획되었다. 채널을 오픈하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요즘 콘텐츠들이 워낙 자극적이고 예산도 많이 드는 탓에,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떤 콘텐츠는 혹 조직에서 허락받지 못할까 싶어, 작게는 사직서를 품에 안고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했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참여를 설득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직원들 개개인의 숨겨진 매력을 파헤치고, 수많은 트렌드 속에서 우리 채널이 작게나마 꿈틀대며 진입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매일 두세 차례의 회의는 기본이었고, 24시간 트렌드를 리서치하며 공유했다. 수천 번의 기획안을 쓰고, 롤모델로 삼을 만한 채널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도움을 구하고 자문을 받기도 수차례.
이제는 그래도 <앗, 케첩>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문화 기획자들의 숨겨진 열정과 노력의 과정을 소개하고, 화려한 예술의 무대 뒤편, 즉 사무실 안의 인간적인 일상을 공유하며 문화 예술 분야의 진정성 있는 소통 채널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유튜브 콘텐츠 채널 제작을 위해 얻은 세 가지 팁이 있다. 첫째, 국내외 문화 예술 분야의 트렌드 채널과 인기 유튜브 채널(롤모델)을 샅샅이 분석하고 그들의 '팬'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둘째, 채널을 제작하는 기획자와 영상 촬영 및 편집팀 간의 유기적인 소통을 위해, 기획자들 역시 영상 제작의 전 과정을 학습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리얼'을 리얼하게 담아내기 위해, 그리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자기 안의 부끄러움을 기꺼이 내려놓는 용기이다.
'꼰대'인 나의 진정성, 갓 입사한 후배의 진정성, 그 중간에서 고뇌하는 과장의 진정성. 자신을 애써 꾸미려 하지 말고, 불편하다고 피하지 말고, 대충 넘기려 하지 않는 태도.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되,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우당탕탕 예측 불가능한 위기와 현실에 기꺼이 맞설 때, 비로소 진정한 '트렌드'가 그리고 '진정성'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글/그림 신나]
Prolog: 문화 기획자가 뭔데? (feat. 어느 날 찾아온 후배 놈...)
Part 1. 진짜 이 일 하고 싶니?
왜 하필 문화 기획자? 딴 거 할 거 많잖아
예술, 정답이 없는 특별한 곳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2
혼자가 아닌 우리: 협업의 가치
여성 기획자로 살아온다는 것
문화 기획자의 파워루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예술가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해
예술가한텐 친구, 조직한텐 충신? 소통은 너무 어렵다.
꼰대 되기 싫으면 눈치 챙기고, 요즘 트렌드 읽기
관객이 주인공이야
선배? 후배? 결국 '한 배' 탄 동지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