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사회생활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가장 알 수 없는 영역은 '소통'이다.
사람과 상황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전하고, 상대방의 뜻을 받아들이는 모든 과정이 일률적일 수는 없을 텐데. 똑같은 문장 하나를 건네더라도, 예술가와 스텝, 회사 직원 저마다 다른 해석과 방식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 다름이 빚어내는 오해 앞에서 기획자는 가끔 자신이 법정에 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검사의 날카로운 분석을, 변호사의 끈기 있는 옹호를, 때로는 판사의 냉철한 판단을 오가야 할 때.
특히 조직 안에서는 회사 직원이자 기획 PD로서, 예술가들과는 눈높이를 맞춘 수평적 대화를, 조직 내부에서는 보고와 승인을 위한 수직적 소통을 동시에 해내야 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무사히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 수직과 수평을 넘나드는 설득의 과정이 끝없이 이어진다.
소품 하나를 들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전시에 꼭 필요한 물건이 왜 필요한지, 충분히 더 좋은 것을 찾아봤는지,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까지 꼼꼼히 문서로 만들어야 한다. 그 문서가 팀장님, 부장님, 사장님께로 차례로 올라가며, 마치 게임 속 챌린지를 통과하듯 층층이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컨펌 하나를 받기 위해 자료를 100번 넘게 고친 적도 있었다.
이처럼 녹록지 않은 소통의 길에서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 할까.
첫째, 나 대신 상대방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
내 입장을 먼저 이해시키기보다, 상대방의 상황을 온전히 상상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 같지만, 사실 가장 큰 에너지와 섬세함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다. 설득을 위한 소통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불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뿐이다. 그 상상이 어려울 때는, 가까운 사람의 얼굴을 그 상황에 대입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좋아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우호적인 입장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둘째, 반감 대신 호감을 품어보는 용기.
때때로, 내 취향과 추구미는 물론이고 모든 면에서 결이 다른 상사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런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면, 솔직히 좀 곤란할 것이다. 만나서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느껴질 때. 이때 필요한 것은 '반감을 잠시 내려놓는' 연습이다. 그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잠시 리셋하고,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작지만 빛나는 장점을 찾아본다. 반감을 안고 시작한 대화는 될 일도 틀어지게 만들곤 한다. 호감 어린 시선으로 시작하는 대화는 상대의 마음 문을 여는 조용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사실, 굳이 타인을 미워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고,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어딘가 분명히 있을 그 장점을 먼저 발견하려는 작은 색안경을 써보면, 의외로 내 마음이 훨씬 평화로워지곤 한다.
셋째, Give and Take의 섬세한 균형.
수천 번 제안서를 쓰고도 모든 시도가 성공하지는 않았다. 절반은 성공, 절반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중요한 원리는 'Give and Take'였다.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진정으로 이득이 될 지점이 어디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내가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좋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은 위험하다. 상대를 현혹하여 나만 이득을 취하려는 욕심은 내려놓아야 한다. 서로가 정말 필요한 것을 'Take'할 수 있는 방법을 진심으로 고민하여 제안할 때, 비로소 최선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결국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진정성'이 깔려 있다.
진심으로 상대를 마주하고, 진심을 건넬 때만 소통이라는 섬세한 다리가 놓일 수 있다.
소통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쉽게 해내려 하지 않는 편이 어쩌면 더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글/그림 신나]
Prolog: 문화 기획자가 뭔데? (feat. 어느 날 찾아온 후배 놈...)
Part 1. 진짜 이 일 하고 싶니?
왜 하필 문화 기획자? 딴 거 할 거 많잖아
예술, 정답이 없는 특별한 곳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2
혼자가 아닌 우리: 협업의 가치
여성 기획자로 살아온다는 것
문화 기획자의 파워루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예술가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해
예술가한텐 친구, 조직한텐 충신? 소통은 너무 어렵다.
꼰대 되기 싫으면 눈치 챙기고, 요즘 트렌드 읽기
관객이 주인공이야
선배? 후배? 결국 '한 배' 탄 동지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