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주인공이야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by 신나
<I’m behind you all the way!>


무대 위 찬란한 불빛이 배우에게 쏟아지는 순간, 우리는 그 빛을 따라 시선을 고정한다. 그러나 만약 기획자가, 특히 브랜딩을 책임지는 문화 기획자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진정한 주인공은 배우가 아니라 바로 그 자리의 관객이다.


기획자는 관객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고, 작품을 통해 느낄 감각과 감정의 경험들을 섬세하게 설계한다. 공연 중 암전 되어 어두운 장면에서도 기획자는 무대 대신 객석의 움직임과 숨소리에 귀 기울인다. 작품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공연장으로 들어서는 길부터 나서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연출하며, 안내하는 스태프조차 잠시 배우가 되어 관객이라는 주인공을 맞이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화 기획자는 철저하게 관객의 경험을 위해 깊이 몰입하고 애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박칼린 연출의 <미스터쇼> 작업을 함께할 때였다. 오직 여성만이 입장 가능한 작품이었기에, 여성 관객들을 위한 더 섬세한 경험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미스터쇼>는 여성의 숨겨진 본능과 내면의 솔직한 판타지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버라이어티 쇼로, 19세 이상 여성만 입장 가능한 환경과 유쾌하고 관능적인 무대 연출이 특징이었다. 당시 브랜딩과 홍보를 맡으면서, 키비주얼 이미지와 헤드카피, 관객의 드레스코드 설정부터 공연장 전체의 향을 개발하고, 로비 음악을 고르고, 특별한 굿즈를 기획했다. 맘껏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만들고, 맥주 브랜드와 협업하여 공연 후 펍과 레스토랑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관객들이 하루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관객들의 만족스러운 눈빛에서 감동을 받다가도, 아쉬운 표정을 보면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했던 시간이었다.

박칼린 연출 <미스터쇼> 공연 이미지 & The Booth 맥주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이미지

한 작품이 만들어질 때,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핵심 대상'을 설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대상이 명확하고 뾰족할수록, 그들의 취향과 일상을 더 깊이 파고들어 작품과의 만남과 경험을 더욱 촘촘히 설계할 수 있다.


2017년에는 세계적인 동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첫 라이선스 어린이 뮤지컬 <신비한 놀이터>를 진행했다. 이때의 핵심 관객은 바로 3세~7세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공연을 보기 전부터, 그리고 보고 난 뒤에도 반복해서 즐길 수 있도록 뮤지컬 넘버마다 유튜브 영상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 뮤지컬의 진정한 매력은 역시 음악이지! 아이들이 신나게 따라 부르고 춤추며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당시 어린이 공연 분야에서는 색다른 경험 콘텐츠로 회자되었고, 조회수가 20만을 훌쩍 넘기며 우수 사례로 남았다.

앤서니 브라운의 체험 뮤지컬<신비한 놀이터> 공연 포스터, 공연 이미지, 유튜브 콘텐츠 이미지


19세 이상 성인을 위한 공연,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공연. 이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정동극장에서 1997년 '전통 예술 무대'로 시작하여, 2008년 전통 뮤지컬 <미소>로 개편되었다. <미소>는 한국 전통 예술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작품으로, 오픈런 공연으로 약 70만 명의 관객을 유치했고, 전용관을 개관하며 국가 브랜드 공연으로서 외국인 관람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워낙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객들이 찾다 보니, 일반적인 관람 매너의 기준으로만 소통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조심해야 할 행동이나 표현들을 익히고, 언어를 넘어 각국의 문화를 섬세하게 공부하며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했다.

정동극장 전통뮤지컬<미소> 공연장면

연극의 세 가지 필수 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이라고 한다. 이는 곧 관객이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어떤 관객이, 어느 순간에 함께 하느냐에 따라 같은 작품도 매번 다르게 숨을 쉰다.


가장 멋진 관객은 작품을 온전히 느끼고, 기꺼이 흠뻑 빠져들 준비가 되어 있으며, 열린 마음을 지닌 이들일 것이다. 그래야 무대와 객석 사이를 흐르는 찌릿한 감동의 순간을 함께 맞이할 수 있다.


문화 기획자들은 오래전 바로 그 감동의 순간을 가장 먼저 경험했던 관객들이었다. 나 역시 그렇다.





[글/그림 신나]



문화 기획자의 인생큭큭장 ☞

<후배에게: 관객은 모르고, 예술가는 말하지 않는 것들>


Prolog: 문화 기획자가 뭔데? (feat. 어느 날 찾아온 후배 놈...)


Part 1. 진짜 이 일 하고 싶니?

왜 하필 문화 기획자? 딴 거 할 거 많잖아

예술, 정답이 없는 특별한 곳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2

혼자가 아닌 우리: 협업의 가치

여성 기획자로 살아온다는 것

문화 기획자의 파워루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예술가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해

예술가한텐 친구, 조직한텐 충신? 소통은 너무 어렵다.

꼰대 되기 싫으면 눈치 챙기고, 요즘 트렌드 읽기

관객이 주인공이야

선배? 후배? 결국 '한 배' 탄 동지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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