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모든 시작이 그러하듯, 시간은 우리를 후배에서 선배의 자리로 옮겨 놓는다. 그저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이들이다. 지난 몇 년 사이, 내 위로 남아 있는 선배들은 줄고, 이제는 후배들이 주위를 채우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선배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천천히 헤아려 본다.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잘하는 것보다 부족한 것이 더 많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 부족함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마음 하나로, 나의 경험을 조심스럽게 글로 옮긴다.
처음에는 이 시간이 그저 흘러 쌓인 경험일 뿐인데, 마치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하려니 부끄러웠다. 멋지게 포장할 수도 없고, 있는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 더 나은 도움이라 믿으며 두 눈을 질끈 감고 이 선배의 '잔소리'를 쓰고 있다.
경력 3년 차 즈음이었을까, 내가 하는 일이 문득 하찮게 느껴지던 순간이 찾아왔다. 작고 미미한 '번아웃'이었을 것이다. 딱히 내색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선배가 커피 한 잔을 권하며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호등에는 불이 세 개잖아. 빨강, 초록, 노랑. 그중 빨강은 이미 멈춰버린, 손쓸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해. 초록은 물론 순조롭게 나아가는 상태일 테고. 그럼 노랑은 뭘까? 그건 '경고등'이야. '나 지금 힘들어요!' 하고 신호를 보내는 거지. 그러니 다음에라도 괜찮으니, '저 지금 노랑불이에요' 하고 이야기해 줄래?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나는 이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때로는 후배들에게 다시 들려준다.
선배의 자리에서 섬세하게 관찰하면 후배의 마음을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각자의 삶과 일이 바빠지면 놓치기 쉬운 감정들이 있다. 서로가 솔직하게 표현할 때에야 비로소 가장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내게는 그래서 그 '노랑'이 참 중요하게 남아 있다. 그때 그 말을 해준 선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2025년 <아시안 팝 페스티벌>을 진행했을 때였다. 우리 팀에 예상치 못한 급한 일이 생겼던 적이 있다. 하루 만에 준비하기는 도저히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팀원 모두가 늦은 밤까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았다. 몸과 마음은 지쳤지만,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찾아오는 짜릿한 통쾌함은 팀워크만이 줄 수 있는 묘미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치맥으로 그 기쁨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와 후배의 역할이 과연 다를까?
나는 선배는 '준다(Give)', 후배는 '받는다(Take)'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신뢰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선배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후배에게 더 넓은 기회를 만들어 주며, 무엇인가를 '받으려 하지 않는' 배려를 건넨다. 후배는 그 기회를 자신만의 것으로 채워나가고, 선배의 경험이라는 소중한 정보를 받아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 서로가 이 신뢰의 끈을 놓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가 탄 배는 정확한 목표를 향해 안전하고 멋지게 항해할 수 있다.
나는 이 분야에서 길을 걷는 몇 안 되는 선배들을 보며 말없이 응원한다.
부디 오래도록 이 자리에 남아달라고.
나 역시, 후배들에게 더 많은 것을 건넬 수 있는 선배로 오래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글/그림 신나]
Prolog: 문화 기획자가 뭔데? (feat. 어느 날 찾아온 후배 놈...)
Part 1. 진짜 이 일 하고 싶니?
왜 하필 문화 기획자? 딴 거 할 거 많잖아
예술, 정답이 없는 특별한 곳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2
혼자가 아닌 우리: 협업의 가치
여성 기획자로 살아온다는 것
문화 기획자의 파워루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예술가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해
예술가한텐 친구, 조직한텐 충신? 소통은 너무 어렵다.
꼰대 되기 싫으면 눈치 챙기고, 요즘 트렌드 읽기
관객이 주인공이야
선배? 후배? 결국 '한 배' 탄 동지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