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by 신나
<Dance wirh me?>

모든 백조가 똑같이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마치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들이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가듯, 예술 역시 그렇다. 문화 예술 기획자는 때로 이 다채로운 장르들을 종횡무진 넘나들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장르에 천착하여 그 심연을 파고들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각 장르가 가진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문화기획자로서 일잘러의 출발점이다.


예술의 큰 줄기는 대략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미술만 해도 그렇다.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을 아우르는 순수 미술이 있는가 하면, 디자인, 시각디자인, 공예디자인과 같은 응용 미술이 존재한다. 음악 또한 클래식, 국악, 재즈, 실용음악 등 그 스펙트럼이 넓고, 무용은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등으로 분류된다. 공연 예술은 연극, 뮤지컬, 서커스, 그리고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


자, 이토록 많은 장르가 과연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우리가 만나는 모든 장르는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 특징은 곧 '일하는 방식'의 차이로 직결된다. 업계의 분위기도 다르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기획자도 모두 제각각이다. 오죽하면 관객들조차 그 성향이 판이하게 다르니, 이곳이야말로 '다름'이 지배하는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미술 분야에서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가 기획자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반면 공연 쪽에서는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의 'PD(Producer/Director)'가 기획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 보면, '순수 예술'이라 불리는 장르는 전통적인 방식을 그 근간으로 작품을 만들어간다. 발레나 한국무용, 클래식과 국악이 대표적일 것이다. 똑같은 발레 공연이라도 발레리나의 해석에 따라, 동일한 악보의 연주라도 연주자의 역량에 따라 다른 무대가 탄생하는 섬세한 다름이 바로 순수 예술의 매력 아니겠는가.

한편 우리나라 전통예술은 계승되는 문화적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사사를 받거나 뿌리를 어디에 두는지가 중요하며, 이는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문화적 책임감까지 이어나가는 장르의 특징이다. 물론, 전통 예술의 현대화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시도 또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술은 회화, 조각 등 전통적인 방법에서 출발하여 결국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가는 '개인 작업'이 매우 중요한 장르다. 미디어아트는 전통적인 방식에 현대 기술을 접목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새로운 흐름이다. 미술 전시는 운영 주체에 따라 비영리 미술관이 되기도 하고, 작품의 상업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갤러리를 통해 진행되기도 한다. 기획자는 주로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 주력하게 된다.


대부분의 예술 행위가 미술관, 공연장, 전시장에서 이루어진다면, 때로는 도심의 거리나 광장이 무대가 되는 '축제'도 있다. 공연 예술 축제, 음악 페스티벌, 영화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축제는 한 번에 여러 예술가를 만나고, 최신 트렌드를 배우며, 축제 자체가 주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장이다. '축제'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렘과 에너지가 느껴지듯, 이를 기획하는 이들의 에너지 또한 축제와 다를 바 없다.

최근에는 미술관에서 무용 공연이 펼쳐지고, 전통 공연이 콘서트 현장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는 등,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문화 예술 기획자에게 더 큰 눈과 더 넓은 사고를 요구하는 시대적 변화의 한 단면이다.


디자인을 전공했던 나는 자신의 작업이 중심이 되어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 익숙했다. 즉, 미술 분야는 '혼자만의 작업'이 중요하다고 믿어왔다. 그런 작업 스타일에 익숙했던 나에게 처음 공연계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혼자서는 결코 올릴 수 없는 공연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적응하는 것은 실로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100여 명의 스태프와 관계자가 모여 만든 공연은 모두 '한마음'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하나의 무대'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가 끝난 후 올라가는 길고 긴 엔딩 크레디트를 보며 '설마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들었을까?' 했던 의문은 직접 겪어보고 나니 분명한 사실이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공연을 진행했을 때, 그 섬세하고 치밀한 제작 과정은 나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다. 라이선스 뮤지컬인 만큼, 영국의 스태프들이 직접 한국에 와 오디션부터 무대 제작, 소품 준비, 연습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무대 소품 하나를 위해 몇 시간씩 붓으로 칠하며 실제보다 더 진짜처럼 만들어내는 그들의 장인 정신이었다. 해당 소품이 등장하는 장면은 저녁이었고, 객석에서는 사실 잘 보이지도 않을 거리였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작업하는 스태프가 100명이 넘게 모이니, 작품은 그 자체로 더 위대한 '작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 이미지 (좌) 2015년도 포스터, (우) 무대 이미지>


공연은 '현장 예술'이라는 특성 때문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플랜 B는 물론, 배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대체할 배우의 역할까지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속성을 지닌다.

결론적으로 문화기획자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협업,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하는 치밀한 플랜 B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 이는 처음부터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몸으로 부딪히고, 고정관념을 깨부수면서 만들어가는 '실전형 능력'이다.


어떤 장르를 열렬히 선호하여 뛰어들 수도 있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처럼 흘러 흘러 어떤 인연으로 이 분야에 진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토록 다양한 장르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어떤 장르에서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지, 혹은 새로운 도전을 감행할 수 있을지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글/그림 신나]



문화 기획자의 인생큭큭장 ☞

<후배에게: 관객은 모르고, 예술가는 말하지 않는 것들>


Prolog: 문화 기획자가 뭔데? (feat. 어느 날 찾아온 후배 놈...)


Part 1. 진짜 이 일 하고 싶니?

왜 하필 문화 기획자? 딴 거 할 거 많잖아

예술, 정답이 없는 특별한 곳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2

혼자가 아닌 우리: 협업의 가치

여성 기획자로 살아온다는 것

문화 기획자의 파워루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예술가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해

예술가한텐 친구, 조직한텐 충신? 소통은 너무 어렵다

꼰대 되기 싫으면 눈치 챙기고, 요즘 트렌드 읽기

관객이 주인공이야

선배? 후배? 결국 '한 배' 탄 동지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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