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by 신나
<Step by step!>



바닥을 굴러는 봤니? 구를 수는 있니?


진정으로 이 길에 발을 디딜 생각이라면, 먼저 질문 하나 던져보겠다. “바닥에서 처절하게 굴러는 봤나? 혹은 그럴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는가?” 후배는 내 질문이 엉뚱했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직설적이었는지,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업의 본질적 특성상 가장 요구되는 능력은 바로 '저 자세', 즉 겸손함과 바닥부터 기꺼이 임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강인한 체력'이다. 우리는 이곳을 대놓고 '노가다판'이라 부른다. 단순히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작업을 하는 사무직이 아니다. 현장에서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전력 질주해야 하고, 넘어지면 울 겨를도 없이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한다. 이 때문에 문화 기획자는 하나의 직업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때로는 기획자이지만 동시에 청소부, 안내원, 배우, 관객, 체조 선수, 달리기 선수, 때로는 아기 엄마처럼 끈기 있게 보살피는 존재였다가 잔 다르크처럼 불굴의 의지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어쩔 때는 경비원이 되고, 또 어쩔 때는 법리적으로 무장한 변호사가 되어야 할 때도 있다.


이것이 도통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지난 20년간 내가 경험한 이 직업은 이토록 다채롭고 때로는 모순적인 역할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래야만 하나의 기획이 안전하고 온전히 대중에게 선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업에 호기롭게 뛰어들었다가, 자신이 하는 일이 이토록 '하찮은' 것이라고 느끼고는 허탈하게 떠나는 후배들을 나는 수없이 보았다.


예를 들어볼까. 나보다 두 배는 건실한 배우를 보호하기 위해 무섭게 돌진하는 팬을 막아서며 몸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 100평 규모의 연습실을 매번 나 혼자 청소해야 하는 현실, 전시장 바닥에 들러붙은 껌딱지를 빨리 떼어내야 한다며 내 손톱으로 긁어내야 했던 굴욕, 내 잘못이 아님에도 내가 죄인이 되어 허리 굽혀 거듭 사과해야 했던 순간들… 이 모든 것이 내가 실제로 겪어온 일들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이 모든 상황은 한 편의 작품을 위한 과정 중 발생하는 지극히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할 따름이다. 좋은 공연이나 전시 작품을 성공적으로 올린다는 목표는 이 모든 고난을 감내하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목표를 향한 굳건한 마음가짐과 어떤 난관도 긍정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강철 같은 신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버텨낼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는 PMC프로덕션에서 3년 남짓 일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공연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 현장에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강력한 갈증이었다. 유학으로 영국 웨스트엔드나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가 아른거렸으나,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수중에 500만 원 남짓이 전부였지만, 주저하지 않고 무작정 뉴욕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뉴욕에 도착해서 두세 달간은 어학원을 다니며 '이제 어떡하지?'라는 막막함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가 뉴욕에서 장기 공연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무작정 공연장을 찾아가 죽치고 앉아 스태프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창 셋업이 진행 중인 분주한 현장에서 무대감독의 안내로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다. 소심한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청소라도 좋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돕고 싶습니다. 돈은 안 받아도 됩니다."라고 간곡히 말씀드렸다. 아마도, 그만큼 절실했던 마음이 모든 두려움을 삼켜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넉 달 정도 그곳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그 공연은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극장에 불이 나서 소방차가 들이닥치기도 했고, 배우가 다치면서 공연이 중단되는 일도, 예산 문제로 공연이 중도 막을 내리는 일도 벌어졌다. 이 모든 혼란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실로 값진 배움을 얻었다. 동시에 뉴욕 현지 스태프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었다. 서툰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사흘처럼 발로 뛰며 무수히 많은 경험을 쌓아 나갔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라나> 2008년 뉴욕 공연


예술이라는 우아한 작품 뒤에 우아한 기획자가 있다는 상상은 이제 지워라. 오히려 그 반대다. 대중의 감탄을 자아내는 멋진 작품일수록, 그 뒤에는 그것을 위해 처절하리만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준비한 기획자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바로 그 사실이, 작품에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기획자가 무대 뒤에서 고된 여정의 피로를 씻어내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할 마음이 여전히 꿈틀거리는가? 아니면 오히려 더 도전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제 자네만의 준비를 시작해도 좋다. 문화 예술이라는 분야는 정치, 사회, 교육, 과학, 기술 등 세상의 지극히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 어떤 분야에서 출발했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니 반드시 예술 전공자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는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학사 과정부터 줄곧 예술을 전공해 온 이들도 있지만, 비예술 분야에서 학사를 마친 후 뒤늦게 문화 예술 분야로 석·박사 과정을 밟는 이들도 상당하다. 평생을 이 업에 헌신하겠다는 신념으로 끊임없이 공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오는 이들도 매우 많다. 언어가 달라도 그림으로 소통하고 무용으로 대화가 가능한 분야이며, 한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의 문화가 영감이 되고 무대가 되기에 해외 경험을 쌓은 후 이 길을 시작하거나 도중에 다시 공부하러 떠나는 이도 다수다.


모두가 똑같은 경험과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일은 분명 매력적이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고된 시절을 겪고 나면 어느새 백조의 모습으로 변모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때의 경험은 백조가 힘겹게 휘젓는 물속 발길질처럼 보였던 지난 노력이 실은, 쌓아온 경력과 경험에서 우러난 지극히 자연스러운 '실력'이었음을 깨닫게 할 것이다.



[글/그림 신나]


문화 기획자의 인생큭큭장 ☞

<후배에게: 관객은 모르고, 예술가는 말하지 않는 것들>


Prolog: 문화 기획자가 뭔데? (feat. 어느 날 찾아온 후배 놈...)


Part 1. 진짜 이 일 하고 싶니?

왜 하필 문화 기획자? 딴 거 할 거 많잖아

예술, 정답이 없는 특별한 곳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2

혼자가 아닌 우리: 협업의 가치

여성 기획자로 살아온다는 것

문화 기획자의 파워루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예술가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해

예술가한텐 친구, 조직한텐 충신? 소통은 너무 어렵다

꼰대 되기 싫으면 눈치 챙기고, 요즘 트렌드 읽기

관객이 주인공이야

선배? 후배? 결국 '한 배' 탄 동지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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