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길 위의 나침반: 조직의 지형을 읽는 법
문화 예술을 장르로 구분하는 것이 콘텐츠의 '가로 획'이라면, 조직 형태의 차이는 기획자의 커리어를 결정짓는 '세로획'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예술이 한 가지 옷을 입지 않듯, 모든 조직 역시 그 목적과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띠기 마련이다. 각 조직의 장단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구조를 찾아간다면, 이 험난한 길 위에서 겪는 마음의 흔들림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문화 예술 분야의 조직 형태는 크게 그 '목적'에 따라 구분된다. 첫째, 공익성을 추구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있다. 둘째, 수익과 사업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민간 기업이나 기획사가 존재한다. 셋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예술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기업 재단이 있다. 이 셋은 재정의 출처와 운영 방식, 궁극적인 목표가 확연히 다르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돈에는 '푸른 돈'과 '붉은 돈'이 있다고 생각한다. '푸른 돈'은 깨끗하고 청렴한 기운을 담아 공공의 목적으로 흐르는 돈이다. 공공기관의 예산이 그러하다. 그 돈의 출처는 곧 국민의 세금이며, 국민을 위한 문화 예술 지원과 사업에 쓰여야 한다는 명확한 의무를 지닌다. 반면 '붉은 돈'은 열정적이고 직관적이며, 상업적이고 노골적인 결과를 매출과 수익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 두 종류의 돈은 성격이 상이한 만큼, 그 사용 목적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면 반드시 탈이 나기 마련이다. 기획자는 이 돈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돈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리더'다. 어떤 리더가 조직을 이끄느냐에 따라 사업의 방향성은 물론,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리더의 신념과 선택은 돈의 목적을 바꿀 수도 있고, 한순간에 조직을 와해시킬 수도 있는 절대적인 힘을 지닌다. 공공기관의 경우, 리더의 임기는 짧게는 1~2년에서 길어야 5~6년 정도이며, 때로는 리더 자리가 공석인 경우도 발생한다. 이 구조의 장점은 리더 개인의 독단적인 영향력이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기관 자체의 본연적 성격과 역량이 더 단단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단점 역시 명확하다. 잦은 리더 교체는 프로젝트의 지속성을 방해하고, 담당 기획자들은 수시로 바뀌는 사업 방향성 속에서 혼란을 겪으며 힘들 수 있다.
반대로 민간 기업이나 기획사, 그리고 기업 재단은 리더가 바뀌는 일이 상대적으로 드물다. 물론 사전에 리더의 성향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대개는 입사 후 리더를 직접 겪으며 그들의 방향성과 자신의 신념이 일치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내가 타고 있는 배가 목적지가 다르다면 결국 낭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목적지는 같아야 한다.
그렇다면,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은 모두 공공기관에 속하니 리더의 성격이 같을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예술의 전당은 중앙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으로, 장관이 실질적인 리더이며 대상은 전 국민이다. 반면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 산하 기관으로, 시장이 리더이고 수혜 대상은 서울 시민이다. 모든 조직과 단체의 뿌리를 깊이 살펴보면, 그곳의 목적과 미션, 그리고 고유한 성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조직은 구성 형태에 따라서도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예술가가 중심이 되어 직접 창작 활동을 하고 운영하는 예술가 중심 단체가 있다. 오케스트라, 무용단, 극단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국립극단, 국립무용단, 서울시립오케스트라, 합창단 등이 그 예다. 이들은 매니지먼트의 성격이 강하다. 둘째,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다.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이 그러하다. 이들은 공간 운영에 집중하며, 예술가 중심 단체나 기획사와의 협업을 통해 대관 또는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작품을 소장하고 관리하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관객이 꾸준히 공간을 방문하고 애용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핵심 과제다.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세종문화회관, 마포아트센터 등이 이에 속한다. 셋째, 기획자 중심의 기획사가 있다. 예술 기획 경영을 통해 콘텐츠를 창작하고 판매하며, 비즈니스와 프로듀서 역할을 수행한다. PMC프로덕션, 신시뮤지컬 컴퍼니와 같은 공연 기획사가 대표적이다. 넷째, 특정 행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축제 협회 등이 있다. 부산영화제, 자라섬페스티벌, 서울재즈페스티벌 등이 그 예다.
나의 지난 20여 년간의 경험은 이 모든 조직 형태를 직접 겪어보는 여정이었다. PMC프로덕션에서 상업 공연, 특히 외국인 대상의 '난타' 공연을 통해 관광 산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수익과 사업성을 배웠다. 이후 공익적 사업에 관심을 갖고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공공기관인 국립정동극장에 몸담았다. 조직 구조에서 오는 안정감은 있었으나, 리더 교체에 따른 사업 목적의 잦은 변화는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연을 경험하고 싶어 KCMI와 같은 작품 중심 기획사로 다시 이동했고,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통해 작품에 대한 꿈을 이루었지만, 매출 압박이라는 현실적 무게 또한 실감해야 했다. 이후 대기업의 문화 예술 비전이 궁금하여 현재는 파라다이스 그룹의 비영리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이처럼 20여 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조직을 직접 경험하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가장 좋은 곳'도 '가장 나쁜 곳'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따라 '나에게 맞는 곳'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나 스스로 이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족히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선배의 작은 팁으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조직의 형태가 어디일지 미리 찾아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문화 예술 분야의 일자리가 비단 조직 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분야는 특정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유연하게 활동하는 프리랜서의 비율이 상당하다. 명확한 능력과 추진력이 있다면, 과감히 프리랜서로 홀로서기를 시도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그리고 내게도 그 경험을 전해주면 좋겠다. 하하)
[글/그림 신나]
Prolog: 문화 기획자가 뭔데? (feat. 어느 날 찾아온 후배 놈...)
Part 1. 진짜 이 일 하고 싶니?
왜 하필 문화 기획자? 딴 거 할 거 많잖아
예술, 정답이 없는 특별한 곳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2
혼자가 아닌 우리: 협업의 가치
여성 기획자로 살아온다는 것
문화 기획자의 파워루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예술가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해
예술가한텐 친구, 조직한텐 충신? 소통은 너무 어렵다
꼰대 되기 싫으면 눈치 챙기고, 요즘 트렌드 읽기
관객이 주인공이야
선배? 후배? 결국 '한 배' 탄 동지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