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혼자 다 할 수 있다? 아니, 팀이 모여야 비로소 작품이 된다.
경력이 3년 차, 이른바 대리급에 이르면 우리는 흔히 ‘대리급 병’을 앓는다. 회사 일이 오롯이 자신의 어깨에 달린 듯 착각하고, 내가 없으면 당장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구는 때 말이다. 그만큼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하고, 어느 정도 인정도 받는다고 생각하니, 연봉이 한참 위인 팀장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해내는데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왠지 모를 억울함에 사무치기도 한다. 그래서 이직을 준비하거나, 쌓이는 불만을 해소하지 못해 방황하는 시기가 바로 이 대리급 시기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칭찬과 인정을 받으니 스스로가 제법 대단한 인물처럼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회사라는 안전한 품을 벗어나 사회의 냉정한 현실과 마주하면,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싸늘하고 비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후 새로운 직장을 찾아 이직을 준비하며 이력서에 지난 프로젝트들을 써 내려가다 보면, 문득 충격적인 사실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 어떤 프로젝트도 '혼자' 해낸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기획자라는 직업은 결코 홀로 완성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가끔 면접관이 되어 혼자서 다 해냈다고 주장하는 친구들을 만난다. 안타깝게도 그런 친구들은 기획자로서 중요한 자질이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일을 하면 할수록, 함께하는 동료와 파트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팀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은 물론,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내부의 팀원들뿐 아니라 외부의 파트너들은 든든한 징검다리이자 함께 빛을 만들어가는 한 팀이다. 하나의 기획이 빛나게 완성되려면, 이들 파트너의 능력과 각자 지닌 개성이 얼마나 조화롭게 어우러지느냐에 달려 있다. 기획자는 이 모든 요소를 아우르며 콘셉트와 구성을 만들고, 최적의 팀을 조직하여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이끌고 때로는 과감하게 밀고 나아가는 사람이다.
특히 파트너는 단순히 업무적 관계를 넘어 진정한 '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때는 업무 계약서에 갑과 을을 명기하며 돈을 주는 쪽이 갑, 받는 쪽이 을이라는 비대칭적 관계가 만연했다. 그러나 기획자가 매번 갑의 위치에 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을이나 병, 심지어 정의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허다하며, 몇몇 파트너에게만 일시적으로 갑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도 이러한 갑을 관계는 시대적인 변화와 함께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동등한 입장의 계약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기획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능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존재이므로, 파트너를 진정한 벗으로 대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자세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마음가짐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느냐가 결국 디테일의 차이를 낳고, 나아가 작품의 성패를 가른다. 나는 프로젝트의 단기적 성패보다 '사람을 남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물론, 이 견해는 모든 이에게 통용되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성공만을 지향하는 맹목적인 태도는 때때로 함께하는 동료나 파트너를 잃게 만드는 잔인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A dream you dream alone is only a dream.
A dream you dream together is reality.
혼자서 꾸는 꿈은 단지 꿈일 수 있으나,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 John Lennon -
그래도, 믿는다! 사람을 향하면, 결국 프로젝트는 기어이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다행스러운 것은 문화 예술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이 비단 잔인한 숫자 싸움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숫자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 예술의 성공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설령 당장의 프로젝트가 실패로 귀결된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배움을 얻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잃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함께 만드는 시너지의 희열을 맛보면, 헤어 나올 수 없을 매력에 빠진다. 결국 작품을 만든다는 것의 핵심은 ‘사람’이다.
[글/그림 신나]
Prolog: 문화 기획자가 뭔데? (feat. 어느 날 찾아온 후배 놈...)
Part 1. 진짜 이 일 하고 싶니?
왜 하필 문화 기획자? 딴 거 할 거 많잖아
예술, 정답이 없는 특별한 곳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2
혼자가 아닌 우리: 협업의 가치
여성 기획자로 살아온다는 것
문화 기획자의 파워루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예술가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해
예술가한텐 친구, 조직한텐 충신? 소통은 너무 어렵다
꼰대 되기 싫으면 눈치 챙기고, 요즘 트렌드 읽기
관객이 주인공이야
선배? 후배? 결국 '한 배' 탄 동지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