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를 끝내기 위해 윗세대들이 몇 번에 걸쳐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건만 끝내 쟁취하지 못한 민주화, 그 후로 오랫동안 서슬 퍼런 군부의 통치 하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국민들은 결코 잘 살 수 없는 나라. 오로지 자신들의 욕망만을 위해 존재하는 군부에게 모든 부(富)가 기울어진 나라. 53년간의 군사독재정권 하의 삶이라니…
2015년 총선거에서 NLD(민주주의 민족동맹)가 승리하며 봄이 찾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또다시 일어났다. 슬픈 나라, 슬픈 사람들… 이제 민주주의를 알아버린 젊은 세대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단다. 이번엔 끝장을 보겠단다. 그래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거리로 뛰쳐나와서 외치기 시작했다. 미얀마(‘버마’라고 부르고 싶다)의 얘기다.
젊은 세대는 의사표현방식도 저항 스타일도 달랐다. 군부가 총을 쏘면 일단 피했다가 잦아들면 다시 시위 장소로 집결하는 등 평화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멈춰 서서 동시에 엎드린다. 그리고 일제히 신발끈을 묶는다. 도로를 주행하던 자동차들이 동시에 멈추고 고장 났다며 차에서 내린다. 이처럼 자신들의 자유를 향한 의지를 능동적 연대를 통해 비폭력적으로 보여주는 미얀마 국민들의 모습은 숙연을 넘어서 뭉클하다.
누군가는 자유가 주어져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그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 귀한 걸 당연한 것인 양 무감하게 살아가는 나 같은 인간이 있는가 하면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그토록 처절한 삶도 있다. 자유는 진정 그들의 것이어야 한다.
대학 시절, 아웅 산 수 지의 연설 장면을 보고 마음속으로 응원했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이 당찬 리더가 미얀마 국민들과 함께 민주화를 이뤄내길 바랐다. 훗날, 미얀마의 무슬림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 앞에서의 침묵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그의 나라와 국민을 위해 기도한다. 부디 ‘8888 항쟁’에서 쏘아 올렸던 불꽃처럼 다시 타올라 미얀마에도 진정한 봄이 찾아오기를.
며칠 전, ‘시위대를 쏘지 말라’며 미얀마의 군경 앞에 무릎 꿇은 수녀의 뒷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저항하다 죽을 각오로 임하는 시위대들은 자신의 몸에 혈액형을 새겨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도 남긴단다. 이 숭고해서 눈물겨운 투쟁 속에서 그들이 ‘제발 살아남기를’…
어젯밤에 이산하 선생님의 시집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당신의 시집엔 하나도 없다던 그 단어, 시인이 차마 담지 못했던 그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린 걸까. 그들에게 한 가닥이라도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그 한 줄기 빛이 사라지지 않기를 허공에 빌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