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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킴 Aug 06. 2021

아스라이 떠오르는 얼굴

다시 쓰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이다. [파우스트] 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한국의 괴테 전문가 전영애 서울대 명예 교수다. 몇 년 전, 혹독한 삶 속에서 지독한 자기반성과 예민한 감각으로 시를 써 내려간 시인의 집을 따라가며 기록한 에세이를 통해 선생님을 만났더랬다. [시인의 집]을 다 읽은 날 밤, 잠들지 못해 독백하듯 써 내려간 메일에 답장을 주신 인연으로 그다음 날 여주의 ‘여백 서원’으로 무작정 달려갔었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말없이 꼭 안아주셨다. 마치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어둑한 골목을 지나 내 집에 돌아와 안기던 엄마의 품처럼 참 따뜻했었다. 


선생님에게 글은 언제나 일단 삶을 감당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이었단다. 버거운 삶에 짓눌릴 때면 시인들이 써 내려간 시구들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셨다고. 선생님은 시인이 걸었던 곳에 발자국을 얹어보면서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셨던 거다. 밀도 높은 사유 속에서 탄생한 그 아름답고 겸손한 문장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내 마음은 이미 위로받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선명하게 자기를 돌아보는 방법이 글쓰기임을 배웠다. 


나와 선생님의 인연은 그 [시인의 집]에서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책 향기가 물씬 나던 멋진 서재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말을 좋아한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시며 귀한 것을 보여주셨다. 1808년도 [파우스트] 초판본이었다. 200살이 넘은 나이의 [파우스트]는 누렇게 빛바랜 낡은 모습으로 비단 보자기에 고이 싸여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는 행복감이 얼마나 컸었던가. 선생님은 그 당시 독·한 대역 출간을 위해 [파우스트] 번역 작업 중이시랬다. 그 연세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열정에 사뭇 숙연해졌던 기억. 나중에 독일 ‘괴테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오셔서 우리 집을 찾아주셨을 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로 바꾸게 된 계기를 들려주셨더랬다.


우리는 모두 좌절과 방황을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간다.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할 때마다 내게 힘을 주던 문장이었다.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방황’ 그 자체가 바로 우리가 노력하고 있음을 반증한다는 의미로 혼자 추측할 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방향성을 잃지 않으며 계속 나아갈 수만 있다면 흔들리며 가는 인생도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이렇게 나만의 해석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건 아닐는지. 


괴테 역시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능동적 사유와 연구, 그리고 창작으로 극복하며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나간 인물이 아니던가. 어쩌면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을 저 한 문장에 담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엔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수많은 좌절을 겪으며 눈물 흘려야 했던 그 자체가 이미 큰 발전이고 성장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 문득 내 책장에 꽂혀있는 그 노란색 [시인의 집]을 다시 꺼내 읽고 싶어 졌다. 선생님께서 시인이 걸었던 곳을 함께 걸으며 조심스레 그 위에 당신의 발자국을 얹어보셨듯이 나도 여기에 선생님의 흔적을 살짝 남겨두고 싶어 졌다. 고르고 보니 하필 카프카가 언급된 부분이다.ㅎㅎ 선생님은 [시인의 집]에 예외적으로 카프카를 넣어야만 했던 이유가 문학을 카프카를 통해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또다시 둘러보는 나의 어수선한 삶. 거기 누운, 마흔한 살 생일을 바로 앞두고 죽은 카프카보다 나는 이미 더 살았다. 그렇건만, 언제나 번잡하게 겉돌기만 했을 뿐 무언가 정말 중요한 것은 아직도 시작도 못한 듯 어수선한 나의 삶을 통렬하게 되돌아본다. 남은 것이라도, 이제라도, 쏟아부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인가에.(155~156쪽)』


이 구절을 다시 읽다 보니 나도 왠지 나의 삶을 다시 한번 통렬하게 되돌아보고 이제라도 무언가에 쏟아부어야 할 것만 같다. 꼭 그리 해야 할 것 같다. 문득 오랜 시간 뵙지 못한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이 순간 내 마음은 다시 여백 서원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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