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로 풀어보는 재미있는 고사성어 이야기
어리석을 우(愚), 어른 공(公), 옮길 이(移), 뫼 산(山)
우선 한자풀이부터 해보면, ‘우공(愚公)’은 문자 그대로는 ‘어리석은 어른’ 정도? 여기서 ‘공(公)’은 사람 이름에 붙이는 말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니 ‘우공’은 그냥 사람 이름으로 해석하도록 하자. ‘이산(移山)’은 ‘산을 옮기다’의 뜻이다. 그러니까 전체 의미는 ‘우공이 산을 옮기다’가 되시겠다. 산을 옮긴다고라? 우공이 그랬다네. 그렇다. 이 성어는 우공처럼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결국 큰 성과를 거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옛날 옛적에 북산(北山) 아래쪽에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살았더랬다. 나이가 아흔 살쯤 되었을까. 그의 집 앞에는 엄청 높은 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단다. 그것도 태행(太行) 산과 왕옥(王屋) 산 이렇게 두 개나 말이다. 그러니 통행이 여러모로 불편했을 테다. 그렇다고 우짜겠노. 그냥 살아야지. 산을 상대로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면, 우공 할아버지는? 방금 말했잖나. 산을 옮겼다고. 진짜?
어느 날, 노인은 가족들을 다 한데 모았다. 그리고 하는 말이…
“우리 힘을 합쳐 저 험준한 산을 깎아서 길을 저쪽으로 터보자.”
아내는 이 야트막한 산 하나도 어찌 못할 힘으로 저 큰 산을 뭘 어쩌겠다는 거냐며 뭐라 뭐라 했지만, 그래도 이 집 식구들 참 착하기도 하지. 그날부터 우공은 그의 아들손자들 중 짐을 질 수 있는 셋을 데리고 산에 올랐다지 뭔가. 돌을 깎고 흙을 파서 저~쪽 해변가로 한 번 옮기는 데만 1년? 아고야. 그러니 옆집 과부네 일고여덟 살짜리 아들 녀석이나 돕겠다고 촐싹대며 달려왔지 이웃 사람들은 죄다들 우공네를 비웃으며 한 마디씩 했단다.
“왜 그리 어리석소?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사람이 산 위의 풀 한 포기나 움직이겠나. 그걸 언제 다 옮기겠다고. 참나…”
“당신들 생각은 어찌 그리 고루하오. 내가 다 못하면 우리 아들이 있는데 뭔 걱정이오. 아들이 손자를 낳을 거고, 그 손자는 또 아들을 낳을 텐데. 그렇게 대대손손 이어가며 옮기면 되지.”
이 말을 듣고 이웃사람은 할 말을 잃었지만, 하늘에 계신 천제(天帝)께서는 그의 정성에 감동했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그 두 산을 다른 데로 옮겨주었다지. 우공 가족들은 이제 편안하게 집 밖 출입을 할 수 있었겠네. 잘됐다. 정말.
그렇다. 누군가는 우공 할아버지가 참 이름대로 사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찌 그리 우둔하고 어리석냐고 말이다. 학창 시절, 한문 시간에 이 고사성어를 배웠을 때 난 어떤 느낌이었나를 떠올려봤다. 잘 기억나질 않는다. 나도 저이들처럼 우공을 비웃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희생>이라는 영화 속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수도원에 늙은 수도승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글쎄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산에 심고는 제자에게 나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일 같이 물을 주라고 했단다. 제자는 또 착하게도 매일 아침 산에 올라 나무에 물을 주었다지. 그렇게 3년을 하니까 결국 그 나무에 온통 꽃이 만발했다네?
감독은 이 옛날이야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까. 그렇게 끝없이 노력하면 결실을 얻는 법이라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늘 꾸준하게 의식과도 같이 뭔가를 한다면 세상은 변하게 될 거라고?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일지도. 죽은 나무에 매일 물을 주듯 간절하게 소원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면 말이다.
우공의 낙관적인 뚝심도, 그 늙은 수도승의 강한 믿음도 꼭 누구의 지지를 받을 필요는 없으리라.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지만 꼭 해낼 수 있으리라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 믿음이 내 일상의 루틴이 되어 꾸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가 알겠나? 그렇게 작은 노력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날 산이 옮겨지고 고목에 꽃이 피듯 그런 기적이 내게도 찾아올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