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로 풀어보는 재미있는 고사성어 이야기
2년 전인가? 그해의 사자성어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 뽑혔던 게 기억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라는 말 많이 들었봤을 게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바로 그 성어 말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했던 교수는 국제외교 무대에서 비속어와 막말을 해놓고 기자 탓과 언론 탓, 무능한 국정운영의 책임은 전 정부 탓을 한다고 지적했더랬다. 누가 그랬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뿐인가. 언론의 자유는 탄압하면서 자유를 외쳐대는 기만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런 취지에서 한 해의 사자성어라는 영예를 안은 바로 그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한자풀이를 보자.
도둑 적(賊), 되돌릴 반(反), 멜 하(荷), 몽둥이 장(杖)
딱 보니 한자가 아주 간단한 건 아니네. 이건 둘둘 나누는 게 좀 어색할 듯하다. 우선 ‘적(賊)’은 ‘도둑’ 일 거고, ‘반(反)’은 원래는 ‘되돌리다’는 동사로 많이 쓰이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도리어’라는 뜻의 부사용법으로 이해하면 쉽겠다. 그리고 ‘하장(荷杖)’에서 ‘하(荷)는 ‘메다, 짊어지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뒤에 오는 ‘몽둥이’라는 의미의 ‘장(杖)’과 어울리게 ‘들다’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참고로 이 단어에는 ‘꾸짖다’는 뜻도 있다는 사실. 그러니 뒤에 몽둥이만 아니라면 ‘성내다, 꾸짖다’로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한자 설명이 좀 길었지만, 결론은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뜻이렷다. 즉 적반하장(賊反荷杖)은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인 거다. 이 성어를 중국어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한국성어’라고 떡 하니 표시되어 있는 거라. 그렇다. 이 단어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이고, 중국어에서는 완전히 똑같은 게 없다.
대신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仁祖) 때의 문학평론집이라 알려진 <순오지(旬五志)>에 적반하장에 대한 풀이가 나온다. 이 책은 학자이자 시평가((詩評家)였던 홍만종(洪萬宗)이 국문학의 가치에 대해 논한 것으로, 시작한 날부터 끝마친 날까지 겨우 십오일이 걸렸단다. 그래서 책의 이름을 <순오지(旬五志)>라 했다고. ‘순(旬)’이 ‘열흘 순(旬)’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을 <15지(十五志)>라고도 부른다네.
<순오지((旬五志)>를 보면,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賊反荷杖以比理屈者反自陵轢)’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잘못한 사람이 죄송하다고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을 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쓸 수 있는 사자성어로는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있겠다. ‘주인과 객이 바뀌어 손님이 외려 주인 행세한다’는 뜻이다.
사자성어 말고 적반하장과 비슷한 우리말 속담도 쌔고 쌨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말도 있지. 조금 생소한 표현이지만 ‘문비(門裨)를 거꾸로 붙이고 환쟁이만 나무란다’도 있다. 문비(門裨)가 뭐냐고? 정월 초하룻날 나쁜 귀신을 물리치려고 궁문(宮門)이나 협문(夾門) 또는 사가(私家)의 대문에 붙이는 화상(畵像)을 그리 부른단다.
우리 일상에서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이런 적반하장의 경우는 참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이 사자성어가 이토록 익숙하지 않겠나. 우리 사회에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성어를 쓸 일은 줄어들 텐데… 그렇다. 우리가 사회에서는 이런 표현을 쓸 일이 없어지고. 그렇게 서로 므흣하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