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로 풀어보는 재미있는 고사성어 이야기
며칠 전 서재에 꽂혀있던 단테의 <신곡> 천국 편을 다시 펼칠 일이 있었다. 베아트리체와 단테의 해후 장면을 확인하려고 말이다. <신곡>은 이탈리아의 시인 알리기에리 단테가 기록한 지옥, 연옥, 천국에 관한 상상 기행문이다. 그 어마어마한 상상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던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단테의 문학을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백퍼 공감한다. 모든 문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을 테니.
근데, 왜 갑자기 단테의 신곡이냐고? 음… 오늘의 사자성어로 대답을 대신해야 할까 보다. 바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다. 나에겐 이 표현이 지옥과 거의 동의어처럼 느껴진달까. 심한 참상을 형용하는 이 말은 전쟁이나 큰 사고로 많은 사람이 참혹하게 죽고 다쳐서 울부짖는 것과 같은 양상을 묘사할 때 쓰는 성어다.
언덕 아(阿), 코 비(鼻), 울부짖을 규(叫), 부를 환(喚)
아비규환(阿鼻叫喚)은 우리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주 회자되는 사자성어일 듯싶다. ‘아비(阿鼻)’는 한자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추측이 안 돼서 찾아보니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역이란다. ‘아(阿)’는 무(無)를, ‘비(鼻)’는 구(救)를 가리키는데, 결국 이 말은 ‘전혀 구제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규환(叫喚)’은 한자로는 ‘소리 지르다, 울부짖다’ 정도 될 듯한데, 이 역시 산스크리트어 ‘raurava’에서 유래했단다. 8대 지옥 중 4번째 지옥을 가리킨단다. 아하, 이렇게 탄생한 성어였구나. 그러고 보니 아비규환이라는 사자성어는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의 합체였네?
불교에서는 8대 지옥이라는 게 있다. 그중에 아비지옥과 규환지옥도 있나 보다. 아비(阿鼻)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구제 방법 없음’이니 고통의 ‘간격이 없다’는 뜻으로 더 유명하더라. 그래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했다지. 이쯤에서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게다. 죽지 않고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공간으로서의 무간지옥으로 이르는 길인 ‘무간도(無間道)’, 바로 영화 ‘무간도’다. 양조위 유덕화 주연의 무간도, 다시 한번 봐야겠다.
규환지옥은 ‘누갈’이라는 음역이 있다는데, ‘고통에 울부짖는다’는 뜻으로 ‘규환’으로 의역했다지. 이곳에는 전생에 살생, 질투, 음탕, 절도 등을 일삼은 자들이 떨어지는 곳이란다.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빠지거나 불이 훨훨 타오르는 쇠로 된 방에 들어가 뜨거운 열기의 고통을 받게 된다고. 아,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이러니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라고 했겠지. 만약 지옥이 정말 존재한다면 꼭 그런 모습일 것 같은 거다.
지옥을 여행하던 단테는 그 불쌍한 영혼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지 않나. 단테는 그렇게 모든 사연에 다 귀 기울여주고 자신의 첫사랑 베아트리체 눈 속의 눈부처가 되어 천국으로 들어간다. 단테의 천국행은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말이다.
‘눈부처’란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눈에 내 모습이 비치는 거다. 이것은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봐야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상대가 눈을 피하면 눈부처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사람 간의 신뢰를 나타내는 하나의 징표로 사용하지 싶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눈에서 눈부처를 보았다. 단테는 그렇게 첫사랑의 눈 속에 담겨 천국으로 들어갔나니.
고통으로 울부짖는 참상을 묘사하는 아비규환을 얘기하다 눈부처까지 나올 줄이야. 그러고 보니 단테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거구나. 새삼 단테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정적에 의해 몰락하고 심지어 추방당해 유랑생활을 하던 와중에 저 <신곡>을 냈다잖은가. 위대한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아무튼, 오늘은 사자성어 ‘아비규환(阿鼻叫喚)’ 자체는 너무 고통스러운 표현이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그 아름다운 ‘눈부처’로 끝내노니, 내 맘대로 면죄부 받은 걸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