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축구선수의 길을 접은 아들, 그래도 의미 있는 길이었다.
우리 둘째는 또래들보다 많이 늦은 시기인 중학교 1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아들의 축구부 멤버 대부분은 빠르게는 유치원 때 아니면 보통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친구들이었다. 우리 아이는 대신 어려서부터 리틀 야구를 했으니 종목은 다르지만 어쨌든 일찍 운동을 시작한 건 비슷했다. 그러니 우리 애도 운동신경은 있는 녀석인 것이다. 내가 믿는 구석은 그것뿐이었다.
축구부에서 며칠 훈련을 받아본 아이는 생각이 많아진 듯 보였다. 축구라곤 방과 후에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좋아서 한 공차기가 전부인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 탓일 게다. 축구부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아들은 시작이 턱없이 늦었던 자신과 다른 친구들과의 갭을 줄여야만 하는 절박함을 느꼈던 것 같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앞으로 새벽에 개인 운동을 해야겠으니 새벽 4시에 깨워달란다. 그러겠노라 약속을 하고서 그다음 날 새벽 곤히 잠든 아들을 조용히 깨웠다. 몇 번을 흔들어 깨워도 눈뜨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진 아들을 도저히 계속 깨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번번이 깨우는 데 실패하고 며칠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진지하게 물었다.
“엄마 제가 성공한 축구선수가 되기를 바라세요?”
당연히 너의 영웅 호날두 같은 멋진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지 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그랬다.
“그럼, 새벽에 깨울 때 저를 안쓰러워하지 마세요. 못 일어나도 계속 깨워주세요. 습관만 되면 그 이후엔 혼자서 일어날 수 있어요. 지금 저한테는 새벽 운동만이 답이에요.”
진지한 결심을 담담하게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서 왈칵 눈물이 났다.
다음날부터 나는 독한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새벽 4시만 되면 무조건 아들을 침대에서 일으키고 미리 준비한 단백질을 탄 우유 컵을 입에 갖다 댔다. 그 차가운 단백질을 마시면 잠이 안 깰 수가 없었다. 단백질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켠 아들은 주저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새 축구공과 그 외 훈련도구들을 챙기던 아들의 모습이 현관문 밖으로 사라졌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갑자기 나도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 새벽에 아들 혼자 저 추운 바깥세상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던 거다. 바람이 쌩쌩 부는 강추위에 끄떡없을 정도로 무장을 하고는 아들이 평소 운동하던 장소로 따라갔다. 우리 아파트 단지 옆 정자가 있는 공터에서 아들의 개인 운동은 벌써 시작된 후였다. 나는 운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줄넘기를 하다 홀연히 나타난 엄마를 발견한 아들은 거칠어진 호흡을 몰아쉬며 말했다.
“엄마, 추우니까 어서 들어가 더 주무세요.”
살이 자꾸 쪄서 엄마도 운동이 필요해서 나온 거라고 둘러대고는 옆에서 뛰는 시늉을 했다. 아들 줄넘기하는 속도 따라잡기는 엄두도 못 내고 그냥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같이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 보니 땀이 나기 시작했다. 점퍼도 안 입고 트레이닝 차림으로 나가는 아들한테 잔소리를 했던 방금 전의 나를 떠올리니 그만 머쓱해졌다.
줄넘기 천 개를 다 마치고는 공으로 하는 리프팅 훈련이 시작되었다. 처음 축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솔이는 리프팅을 연속으로 5개도 못하는 아이였다. 과연 지금은 몇 개나 할지 궁금하다고 하니 아들이 그런다. “그렇게 궁금하면 엄마가 직접 숫자를 세어보실래요?” 그래서 입으로 소리 내서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오백, 오백 하나..... 구백구십구.... 천... 천백.... 지금 내 눈앞에선 믿기지 않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공과 아들의 두 다리 아니 온몸이 혼연일체가 된 것 같았다. 축구공은 아이의 어깨, 가슴, 배, 허벅지, 무릎, 발등 위로 가볍게 내려왔다 다시 위로 튕겨나가며 도무지 땅 위로는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놀라웠다.
언제 저렇게까지 연습한 거야. 축구부에 들어간 지 불과 몇 달이 되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리프팅은 오롯이 혼자 연습하는 게 아니던가. 천오백 개까지 세고는 내가 스탑을 외쳤다. 도대체 몇 개까지 가능하냐고 물었다. “제가 멈추고 싶을 때요.” 그 말끝에 아들이 신기한 걸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치 내 앞에서 묘기 대행진을 하듯이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리프팅을 하는데 공은 절대로 땅으로 떨어뜨리지 않는 게 포인트였다. 유명한 축구선수들이 광고할 때 보면 공으로 혼자서 묘기 부리는 장면을 자주 보는데 지금 우리 아들이 그걸 하고 있는 거다.
내가 물었다.
“솔아, 도대체 이걸 언제 다 연습한 거야? 다 너 혼자 연습했을 거 아냐? 그럴 시간이 있었어?”
“엄마가 축구하라고 허락해주신 그날부터 시간만 나면 공이랑 놀았죠. 호날두 축구영상들 찾아보면서 배웠어요. 처음엔 공 안 떨어뜨리고 5개 연속으로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계속하다 보니 이젠 공이 내 몸에 붙어있는 느낌이에요. 제 계획표에는 매일 줄넘기 2천 개, 리프팅 5천 개 하기는 기본이거든요.”
세상에... 이런 독한 녀석이 있나. 그 계획표대로 하루도 안 빼먹고 연습을 해왔단다. 축구 훈련 중간에 휴식시간에도 리프팅하며 노는 게 쉬는 거였단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네 축구부에서 리프팅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되었단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축구하라고 허락하길 잘한 것 같다. 이렇게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다른 길을 가라 했으면 아이가 얼마나 슬펐을까. 그렇게 좋아서 스스로 하겠다고 선택한 거니까 일단 해보자. 결과는 생각지 말고 과정에만 충실하자. 그렇게 즐겁게 열심히 하다 보면 어딘가엔 도달해있겠지.
그래, 아들아. 네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엄마는 너를 믿어볼게. 안쓰러워하지 않고 그저 응원만 할게. 가다가다 힘들어서 너 혼자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거든 그때는 꼭 엄마한테 말해주기다. 그때는 엄마가 너를 옆에서 조금 부축해줘도 되겠니? 네가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를 기다리며 엄마는 네 옆에서 너와 함께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을게. 지금 네가 선택한 길 위에서 다른 생각은 접어두고 일단은 후회 없이 재밌게 해 보는 거야. 그게 최선이거든. 지금 넌 아주 잘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거면 됐다. 지금처럼만 파이팅해보자.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자 저렇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아들을 보며 감사의 기도를 했다. 아니, 사실은 아들이 대견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