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오는 길.

by 지오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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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었다. 아니 꼭 떠나야만 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우리 둘째 솔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제가 축구선수로 성공하기를 정말로 바라세요?”

“당연하지. 너의 영웅 호날두처럼 멋진 선수가 되면 참 좋겠다. 그치?”

“그럼, 새벽에 깨울 때 저 안쓰러워하지 마세요. 제가 못 일어나도 계속 깨우세요. 습관만 되면 그 이후엔 혼자서 일어날 수 있어요. 새벽에 개인 운동을 안 하면 어릴 때 축구 시작한 애들과의 갭을 메울 방법이 없어요. 엄마가 도와주셔야 해요.”


개인 운동을 나가게 새벽 4시에 깨워달라는 아들의 청 들어주는 걸 번번이 실패하고 있던 참이었다.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차마 깨우지 못하고 이불만 덮어주고 나오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 며칠간 그런 마음 약한 엄마를 묵묵히 보고만 있던 아들이 안 되겠던지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아이답지 않은 단호한 말투에서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순간 눈물이 왈칵했다.


축구를 너무 늦게 시작한 탓에 축구부에서 적응하느라 고전하던 아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행복한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 시작이었다는 얘기다. 축구를 늦게 시작했어도 경쟁이 아닌 그 자체를 즐기며 푸른 구장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기를 바랐다. 내 진심의 8할은 그랬다.


그래서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면 그다음 목적지는 독일이었으면 했다. ‘전차군단의 나라’, ‘축구의 종주국’ 독일은 축구선수로서의 아이 미래와 직결되는 기회의 땅이자 행복한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외부로 드러난 명분 말고 내가 떠나려는 또 다른 이유는 내 안의 심연에 꽁꽁 숨겨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어제와 같은 오늘, 그저 오늘의 연장선일 뿐인 내일이라는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쉼표 없는 무한질주 속에서 번 아웃된 상태였다. 열심히 살아봤자 미래가 지금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그런 희망 한 가닥 걸치지 않은 마음인 채로 하루하루를 떠밀려가고 있었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고 그곳은 독일이어야 했다. 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던 독일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한낱 허망하게 스러질 나만의 꿈인 줄만 알았던 독일로의 이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성년자인 둘째를 축구 에이전시를 통해 먼저 독일로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 혼자만 뒤따라가서 아들 케어하며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더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결국 온 가족이 함께 독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을 보고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했다. 지금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 그 위험한 불확정성에 굳이 도전하느냐는 것이다. 소심한 내가 왜 그리 무모하게 밀어붙이는지 그들은 의아했으리라. 내 안에 그런 힘이 잠재했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결정이었으니까.


지금은 알 것 같다. 왜 그토록 떠나야만 했는지... 그 길은 나에게 이르기 위해 가야만 했던 내 인생 레이스의 필수코스였던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내 행복이 가짜였음을 증명할 방법이 그 길 말고는 없었다. 내 선택은 항상 옳다고 믿어주는 사람들 속에서 무늬만 행복한 여자로 살았던 내 결혼이 완벽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기 위한 길이었다.


독일로 이주하기 전 6년 동안 우리는 주말부부로 살았다. 남편이 지방에서 회사를 다녀준 덕에 아이들 사춘기는 무탈하게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행복한 가정에 태어났음에 감사하면서 아이들은 잘 커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남 보기에도 화목한 하자 없는 가정이었다. 그냥 그렇게 현상 유지하며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지금 나는 다 가진 여자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최소한 인생의 반환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온전한 가정이 해체되는 일은 안 일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애초에 내가 독일을 가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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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닫힌 방’이라는 희극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통해 사르트르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인간 실존에 대해 천착했던 사상가답게 인간으로 하여금 ‘내가 나로 사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려 했음이라. 온전히 나답게 사는 것의 어려움을 역설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타인으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기준 속에 갇히는 것, 즉 ‘나’라는 존재의 실존이 부정당하는 그때가 타인이 내게 지옥이 되는 순간이다. 그 지옥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되돌아보니 나를 타인이라는 지옥에 가둔 강력한 사건은 결혼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만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었던 나는 내 인생에 ‘남자’라는 변수를 상정하지 않았다. 누구나에게 당연한 결혼이 내겐 이변이었고 파격이었다. 내 인생의 이력서가 ‘결혼’으로 채워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뭐가 옳은 선택인지 그 순간 알아챌 수 있다면 삶이 너무 무미건조해지려나? 그래서 인간에게는 시행착오라는 아픈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삶이 주어진 걸까.


결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인생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바로잡지 않았고 체념한 채 내 삶을 운명인양 받아들였다. 힘들었지만 잘 살아내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남편은 아티스트들이 갖는 태생적 예민함에 불우한 어린 시절이 더해진 탓에 마음이 다친 사람이었다. 그이 안에 살고 있는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자 했는지를 잘 알기에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남들은 쉬이 보지 못하는 그이의 또 다른 면이 나를 그 오랜 세월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이가 가여웠고 나만 참으면 다 괜찮을 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이의 불행이 우리 아이들에게 대물림되는 게 너무 무서웠다.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야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게 다인 줄 알았다. 그 인고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전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행복에만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내 어리석음이 인정 욕구라는 강력한 욕망과 만났기 때문은 아닐는지. 사실은 자존감 낮고 자존심만 높았던 이 못난 성향이 나답게 사는 걸 방해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힘든 삶을 지속한 건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렇다. 내게는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세상의 눈이 두려웠던 것이다.


사르트르가 말했던 타인의 지옥에 그렇게 스스로 갇힌 나는 조금만 나 자신을 사랑했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인생 플랜에 없었던 독일행이 나를 자각하게 했고 거기서 실패한 내 인생이 건강한 뉘우침을 주었다. 내 생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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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후회는 없다. 그 시간도 분명 내 삶에서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중요한 순간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 생의 많은 부분을 채워줬던 그 아픈 조각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없을 테니. 슬픔은 사랑을 하는 대가란다. 그러니 내 마음이 슬프다한들 뭐 그리 대수겠는가(그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인생은 의외로 참 멋진 구석이 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아 허방을 헤매던 그 와중에도 어떤 방법으로든 가르침을 주니 말이다. 그건 바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는 거다.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이 정적...


나의 생에 가끔씩, 느닷없이 찾아오는 선로이탈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다시 일상적 삶에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속삭임이 공기의 미세한 떨림으로 내게 전해져 온다. 많이 낡았고 자주 슬프게 하는 그런 세상이지만 그래도 그것과 마주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지금 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마주 보듯이 이 세상도 그렇게 끊임없이 바라봐야 함을 가르쳐주는 듯한 이 정적이 참 좋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저기서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HAPPY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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