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거기에 시까지 걸려있다면... 마당 여기저기를 거닐며 바람과 함께 수를 놓고 거기에 걸린 시 한 수 한 수 읽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갈 것만 같다. 상상만으로도 근사하다(상상 쟁이 빨간 머리 앤이 있었다면 기가 막힌 문장들로 멋들어지게 표현했을 텐데).
농부로 살아가는 삶의 틈새를 빼곡히 채운 시 읽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산문집으로 이 세상에 왔다. 나이 쉰에 문창과에 입학해서 시와 소설을 공부한 ‘시 읽는 농부’는 평소 좋아하던 시를 당신 삶의 이야기로 덧입혀서 마당에 내걸었다.
책 읽는 내내 아버지를 향한 작가의 애틋한 그리움에, 서로를 믿어주는 부부의 다정한 사랑에 나의 목울대가 덩달아 뜨거워졌다. 나태주 시인이 추천의 글에서 쓴 것처럼 ‘글은 일생’이었다. 자식들을 위해 온 생을 바친 노모를 보며 당신 또한 자식 위한 짐을 지고 가리라 다짐하는 그 진심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농부의 삶을 보았다.
우리가 살아온 경험치가 모여서 시가 된단다. 글을 통해 들여다본 그의 삶 자체가 시더라. 시가 곧 인생이었더라. 그가 내건 시들이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가 그것을 증명해주지 않던가. ‘지혜지(智)’자에는 왜 ‘날일(日)’자가 밑에서 받치고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단순한 ‘앎(知)’이라는 지식에 질곡의 나날들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지혜가 되고 삶이 되고, 또 글이 되고 시가 되는 게 아닐는지.
비를 품은 키 작은 하늘 벗 삼아 나선 길, 꽃향기 가득한 마당을 머릿속에 그리며 진주를 찾았다. 서울에서 진주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찾아가는 그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농부가 몸으로 쓴 삶의 시를 만나러 설렘을 안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그 자체로 행복했다.
말하는 재주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공상균 시인의 얼굴에는 사람 좋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문득 사람이 그리워 찾아가면 반갑게 차실을 내어줄 것만 같은 그런 푸근함이 좋았다. 오래 숙성된 쑥차의 깊은 향기로 먼 길 잘 왔노라 맞이해주는 듯해서 참 따뜻했다.
북토크를 통해 시인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다 보니 그 길 끝 지리산 자락에는 달빛 도서관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언젠가는 도서관을 열겠다는 꿈을 꾸는 시인에게는 또 하나의 작은 꿈이 있단다. ‘동화’를 쓰는 것이란다.
문득 달빛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빨간 머리 앤을 떠올려 본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씩씩하게 견딜 수 있게 한 힘은 바로 앤이 가진 풍부한 상상력이었다. 시인의 꿈을 응원하고 싶어 졌다. 제2의, 제3의 앤이 나올 수 있도록 희망적인 동화를 써주실 테니까. 그리고 믿는다. 그 동화를 통해 상상력을 키운 아이들은 불행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거고, 그 값진 삶의 모습들이 또다시 아름다운 시가 되어 우리의 고단한 마음을 어루만져 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