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세상을 꿈꾸다.

by 지오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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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한자랑 친했다. 아빠가 매일 몇 자씩 가르쳐주신 덕분이다. 한자를 제일 멋지게 쓰는 사람을 꼽으라면 내게는 단연 우리 아빠다. 할아버지가 공책을 안 사주셔서 땅바닥에 작대기로 써가며 한자를 익히셨단다. 그렇게 열악한 상태에서 연마하신 실력은 어메이징 하시다.


아빠로부터 배운 한자는 초등학교 들어가 내 일기장 안에서 고스란히 살아났다. 문장에 내가 배운 한자를 하나씩 집어넣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매일 일기장 검사를 하셨는데 그때마다 한자가 들어간 내 일기를 친구들 앞에서 읽게 하셨다. 중1이 되니 국어담당이셨던 담임선생님은 매일 조회시간에 천자문을 두 글자씩 칠판에 써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불시에 천자문 시험을 보셨고 엉겁결에 나는 교장선생님 이하 모든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천자문 암송까지 하게 되었다.




어릴 적 그런 좋은 기억들은 지금의 내 전공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중문학을 공부하고 한중 통번역을 공부하고 중국어 문법을 연구하는 언어학까지… 한자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게 된 것도 시작은 아빠와의 한자공부였다. 대학에서 논어 맹자 등 사서삼경을 읽고 중국의 여러 고전들을 접하면서 수많은 좋은 문장을 배웠다. 특히 재미있는 고사가 들어간 사자성어에는 인생살이에 적용할 수 있는 너무 좋은 가르침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 많은 성어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인생의 모토로 삼고 싶은 단어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맹자에서 나온 이 말은 현대인 사이에서 ‘공감’을 얘기할 때 많이 인용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그 사람에 대한 ‘공감을 넘어 이해’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역지사지’를 ‘배려의 미학’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생각해본다.


새파랗게 젊은 사장이 ‘역지사지’할 수 있다면 아버지뻘 되는 60대 말단 과장을 향해 과연 막말로 갑질을 할 수 있을까? 가장의 무게로 하루하루 버티며 그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과장님에게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게 되지 않을까. 힘없고 가여운 어린 딸아이의 무섭고 두려웠을 입장이 되어본다면 설사 피를 나누지 않은 계부라 할지라도 그토록 가혹하게 아이를 학대할 수 없으리라.


이 세상에 착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판타지는 아직 깨고 싶지 않다. 현실은 그게 불가능하다 말할지라도 이 희망을 담은 마음마저 포기해버린다면 이 세상은 정말 빛을 잃고 암흑으로 뒤덮일 것만 같아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이렇게 작은 노력을 해나가다 보면 느리더라도 조금씩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헛된 꿈일지라도 계속 꿔보고 싶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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