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본가에 온 것은 아니지만,
내가 엄빠에게 찡찡거릴 거라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다정한 사람들의 호의에 둘러싸여 사는데,
나는 꽤나 종종 그것을 까먹는다.
일-집-일-집만 반복하던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던.
어제 서울역에서 짐이 많아 잠시 화장실 다녀올 동안
짐을 봐달라고 어떤 여성분께 부탁을 드렸는데,
돌아오니, 그분의 자녀인 세명의 똘망똘망하게 생긴
초등학생들이 예쁜 눈으로,
무슨 전시회에서 작품을 보호하듯
내 자리 주위로 경비를 슨 것처럼 세 명이
내 짐을 둘러싸 서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귀여움에 웃음이 활짝 났다.
너무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존대를 하며 얘기하니
큰 눈에서 자부심과 부끄러움이 함께 묻어 나와
귀여움은 배가 되었다.
나는 항상 창가석에 앉는 것을 좋아하는데,
3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종종 바깥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다.
이번엔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서 허리를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에
괜찮으면 창가자리에 앉아줄 수 있냐고 부탁했고,
나중에 알게 된 지금은 서울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지만
3년 정도 창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샌디에고 출신의 Matthew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제자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창원을 다시 찾은 그는
고맙게도 내 캐리어까지 내려주었고,
고맙다는 말을 대여섯 번은 반복한 것 같다.
기차역에서 나오니
멀리서도 나를 단번에 알아보는 아빠가 보인다.
내가 허리가 아픈데 나에게 와서 빨리 이 짐들을 가지고 가줘야 짓~!
이라는 찡찡이가 아빠를 보자마자 얼음이 녹아 그 안에
꽁꽁 감추고 있던 무언가가 봉인해제되듯이
아니면 디스크가 터져 나오듯이 (요즘 나는 모든 걸 허리디스크와 연결해 생각한다..ㅋㅋ)
찡찡거림이 터져 나온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늘 나를 데리러 오시고, 데려다주시는 걸 좋아하는 아빠는
껄껄 거리며 짐도 안 많네~ 하며
케리어와 가방을 턱턱 트렁크에 넣는다.
그 투박함에 나는 창원중앙역 내릴 때 그 상쾌한 공기만큼이나
기분 좋음을 선사받는다.
투박함과 다정함이 합쳐지면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낸다.
차에 따니 엉뜨가 이미 켜져 있고
의자는 뭐 이미 너무 따뜻하다.
그냥 넘어가지 않는 걸 알고 있는 찰나,
아빠가 얘기한다. 니 허리 아프다고 내가 엉뜨도 틀어났다아이가.라고
귀여움에. 자부심까지.
지금 글을 적으며 생각하니, 서울역 3명의 아이들과 겹친다.
아빠가 최고라고 고마움을 전하며
시시콜콜한, 내가 오늘 서울역에 오면서 탔던 택시기사의 끊임없는 이야기,
아빠의 이름을 가진 사람은 전국에 몇 명이나 될까, 등.
정말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누며 집으로 온다.
도로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차 안에서 아빠와 얘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자연스럽고 좋다.
9시 반이 넘어 집에 도착했는데,
내가 늘 저녁을 먹고 간다고 해도
엄마는 어떤 무언가를 늘 준비해 두신다.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아도
엄마가 그리웠던 마음을 담아
음식들을 입에 넣는다.
또 한입 먹기 시작하면 역시나 맛있다고 연발하며 먹고,
그럼 그걸 바라보던 엄마와 아빠는
결국 아빠가 사 온 망개떡과 내가 사 온 호두과자를 같이 하나씩 다 먹어보고는
2차 저녁 식사가 끝이 난다.
이것저것 챙겨 온 선물 같지 않은 자그마한 선물들을 늘어놓고
아빠와 똑 닮은 나는 자부심을 한껏, 그러나 대충 숨기며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야 하며 조잘된다.
그런 모습이 우리 부모님에게는 세상 귀여워 보일까.
코로나 때부터 시작된 트롯경연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본가에 갈 때마다 리플레이된다.
누가 잘했고, 누가 별로였다며
서로서로 내기를 걸기도 하면서
밤은 아주 빠르게 깊어간다.
허리가 아파
아빠한테 이것저것 부탁을 한다.
짐도 정리해달라고 하고,
방도 따뜻하게 해달라고 한다.
툴툴거리면서도
내가 딱 원하는 온도로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다.
폰을 보고 있으니
자거라~ 불도 꺼줄게~ 하면서 불도 꺼주고 가시고는
10분도 되지 않아 거실에서 쿨쿨 아빠가 숙면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도 잠이 든다.
집에 오자마자 좀 덜 아픈 것 같은 이유는
심리적으로도 내가 많이 약해졌었나 보다.
신체의 고통과 얽히고설켜 마음이 연약했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두 사람을 만난.
나는 내가 도움을 주는 것에는 익숙한데,
그만큼 도움을 잘 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허리가 아프기 전에 발톱을 깎아둘걸.
양말도 신기 힘들어하는 내가 발톱은 무슨.
그걸 어떤 타인이 깎아준다는 게 뭔가 너무 어색하고,
이상한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깎아주시겠다고 하는데
사실, 어릴 땐 다 엄마가 깎아주셨을 텐데.
이번에 가족 구성원들이 한 번에 우르르 아프면서
우리의 이름이 서로의 전화기록과
톡 창에 훨씬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걸 보면서 처음 피부로 느꼈다.
아. 이래서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하는 거구나. 싶다.
꿈같이 끝날 삶이라고 해도
하루하루 쌓여가는 건 지난하게 긴 과정이니까.
우리 모두는 강하면서도 연약한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