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시력이 좋으셨던 부모님이
어느 순간, 가까운 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폰을 저 멀리 두팔을 쭈욱 뻗어 보시기에
안경을 맞춰 드렸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이제는 자신에게 맞는
색과 디자인을 제법 잘 고르신다.
몇 달에 한 번씩 뵙는 부모님은
내 삶의 빠른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감기 되어 있다.
그래서 아쉽다.
조금 더 잘 해드릴걸,
조금 더 예쁘게 말할걸,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할걸,
하고 늘 돌아오는 KTX 안에서 후회한다.
안경 너머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 보인다.
여러 개의 안경 뒤로 보이는 풍경은 같은데,
그 안경을 쓴 사람과
완전히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갑자기 사무치게 외롭다.
다행이다.
지금 쓰고 있는 안경으로
붉은 눈시울도 가려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