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by 류류류

가을비가 자주 내린다.

겨울도 그만큼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내일 출근길은 꽤 추워질 것 같다.


며칠 전 퇴근길에 비가 오기 시작해서 재킷을 뒤집어쓰고 집으로 왔는데, 옷이 젖었다.

이상하게 개운했다.


감기도 걸렸고, 찝찝하기도 했지만,

금요일이라서 그랬는지 비 오는데 우산 없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내 모습이 뭔가 자유롭게 느껴졌달까.


날씨 요정이라고 불릴 정도로, 날씨 운이 좋은 편인 나도 가끔은 예상치 못한 비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비 오는 날에는 아무래도 뽀송한 집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재밌는 것을 보며 뒹굴뒹굴하는,

가끔은 온몸으로 비를 맞았던 기억이 나에게는 더 강렬하게 남아있다.


무더운 여름밤 예전에 만났던 그 사람이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였다.


답답하다며, 갑자기 비를 맞고 싶다고 하는 그를 데리고 옥상으로 갔다.

비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여름밤이었다.

비가 피부에 닿는 촉감이 생각보다 무거웠고, 그만큼 상쾌했다.


옥상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우리 둘은 그 야밤에 집 앞 공원으로 갔다.

당연히 우산 없이.


저벅저벅 낄낄대며, 속옷이 다 젖을 때까지 비를 맞았다.

그의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씻겨나가길.

함께 있는 나의 버거운 마음도 후련해지길 바라며.


가능한 피해서 좋은 일들이 많지만,

살다 보면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일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럴 땐 그냥 우산을 집어던지고 그저 내 온몸으로 비를 왕왕 맞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젖어 버린 거, 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비를 맞는 것이 더 이상 두려워지지 않는 시점이 오고,

늘 그랬듯 비는 그치고, 해는 뜨고 또 지며, 달도 구름에 가려지든 아니든 늘 뜨고 지니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나도 태어나고, 자라다, 늙고, 죽음을 통해 사라지게 될 테니까.


쏴 아아아- 내리는 빗소리처럼 시원한 결말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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