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낭만.
한때 평생을 함께할 거로 생각했었던, 그 사람과
해가 지는 다리를, 손을 잡고 천천히 걸으며,
따뜻한 눈빛으로 서로의 눈을, 그리고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마음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 둘 사이로 석양이 가아득 쏟아졌던 순간.
아무 말 없이 그저 밤색의 눈과 헤이즐넛의 눈이 작아지며 싱긋 웃음 지으며
계속 맞잡은 손을 더 꼭 잡고 걸었던, 뉴욕의 눈부시게 빛났던 가을 어느 날.
우리 가족 모두 휘슬러 산 정상까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며 무서워하고 즐거워하고 떨려 하며,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웃으며 온전히 그 순간의 즐거움을 양껏 만끽한 그 상기된,
날씨까지 완벽했던 캐나다의 여름 어느 날.
할아버지 생전에 자신이 어렸을 때 배웠던 대로 대나무를 깎아 연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쪼그리고 앉아 할아버지의 거칠고 마른 손이 딱딱한 대나무를,
하늘을 훨훨 나는 연이 되는 과정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따라 했던,
그리고 아궁이에 둘러앉아 군고구마 몇 개를 툭툭 던져놓고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에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검은 재를 다 묻히며 호호 불면서 먹던 꿀맛의 고구마,
남해 그 겨울의 어느 날.
벚꽃이 만개하고 편백나무로 가득한 학교 캠퍼스에 엄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호수 위에 지어놓은 나무 데크을 걸었던 따뜻했던, 창원의 그 봄 어느 날.
과거의 이런 순간들이 현재의 내 감성을 만든 보석 같은 장면들.
요즘도 꽤 낭만 있는 일상을 살아간다.
아침 햇살 가득 머금은 단풍들 사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내 모습,
석양으로 오묘한 색으로 세상 화려한 모습으로 내 눈길을 끄는 서울의 가을 하늘과 상쾌한 공기.
가만가만 걸을 때 내 눈에 띄는 이쁜 나무들과 꽃들.
아빠와 별 얘기 안 하고 이런저런 이모티콘 기능을 써보며 눈물이 날 때까지 울며 웃는
1시간이 넘어가는 우리의 긴긴 통화.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까지.
모두 소중한 나의 낭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