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기는 마음과 억울함
칼 융이 했던 말.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며,
우리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른다."
이걸 어렴풋이 깨닫게 된 건,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상황에 놓여 있긴 한데...
올라오는 감정의 결이 동일하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반 70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길고, 또는 짧은 시간에 나를 스쳐 지나갔고,
거기서 많은 추억과 생채기가 남았다.
사람 심리가 자연스럽게 좋은 것보다는 힘든 것을, 그리고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을 오래 기억한다.
나는 그 심리에 아주 충실히 따라가며 사는 한 사람으로서,
연말 평가 시즌인 만큼 내가 이번에 받은 평가와, 이 전에 모든 일련의 과정들.
그리고 그 속에서 항상 같은 결로 떠오르는 내 감정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회사생활을 신명 나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에게는 크게 의미 없는 일들처럼 느껴지는 업무들이 많고,
돌아봐도 지금까지 진행했던 많은 일들이 그랬다고 생각한다.
이런 걸 적절히 잘 숨기면서, 유도리 있게 사회생활을 하면 가장 best겠지만,
나는 종종 그렇게 하지 못해 무의미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경우도 많았다.
집도 정갈하게. 내 일상도 정갈하게 영위하고 있는 나에게,
회사에서의 업무는 가장 큰 portion을 차지하지만 나에게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어쨌든 올해 나는 과장 말년차로, 차장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 팀에는 나 말고는 다 부장님들이라,
연초에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하라는 업무를 잘 처리한다면 진급에 크게 무리는 없겠다.라고.
의미 없다고 치부되는 일들도, 결국에 내가 처리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지금 있는 팀의 팀장의 리더십과, 애매한 팀 포지셔닝으로 2명이 떠나갔다.
고스란히 그들의 업무는 나에게 흡수되었고, 팀장한테 우스개 소리를 빌러 진지하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계속 도움 요청하시는 거면 진급시켜줘야 한다고.
그런 내가 C를 받았다. 허허 참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가, 웃음이 나왔다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진급 대상자에게 몰아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지금 C를 받게 되면 추후 진급과 다른 곳으로의 이동에 제약이 걸린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걸 생각하니 배신감이 올라왔다.
그리고 덜컥 나보다 어린 대리/과장급들이 진급하고 나는 그대로 있는 걸 상상하고 쪽팔림 비스무리한 허탈감과 수치심도 들었다.
그들이 뭘 잘못한 건 없지만,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빼앗긴 것 같은 이 기분.
이 느낌은 익숙하다.
이 회사에서 특히 여러 번 겪은 일인데, 사실 내 안에 있었던 감정이 이 공간에서 유독 자주 올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것을 빼앗기고, 내 몫을 받지 못하고, 적게 받는 이 느낌.
처음 사업부에서 임원과 부딪치는 부분이 있었고, 그때 C를 처음 받았다.
문제가 많았던 결국 그다음 해에 그 임원은 잘렸지만, 나는 C를 한번 받은 적이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연말에 개인 성과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동료를 통해 알게 되었다.
너무 자존심이 상했고, 화가 났었다. 니들은 뭘 얼마나 잘해서. 담배를 같이 피우러 다니고, 회식을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도 그렇게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한심하게, 그리고 그것도 하기 싫어서 안 한 나 자신을 더 한심하게 바라보았었다.
그러고 사업부 이동을 했는데, 내가 이동한 이후에 성과급 체계가 변경되어 기존 사업부 성과급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졌다. 내가 이동한 새 사업부는 매출을 만들어내는 조직은 아니었기에,
나는 떠나온 것에 전혀 후회가 없으면서도 내가 '받을 수 있었던'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불속에서 괴로워하고 아까워했다.
작년에는 회사에서 연말에 주는 상이 있었는데, 내가 이동하기 전 팀이 대상을 받게 되었다.
거기서 2분기까지 일을 하다가 온 나로서는, 내가 진행했던 업무를 받은 사람이 상을 받는 걸 지켜보면서
애꿎은 그에게 분노감을 가졌었다. 하필 그걸 취합하는 업무를 새로운 팀에서 맡게 되어
임원에 마음에 드는 사람은 모두 수상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고,
거기에 당연히 없는 내 이름을 여러 번 찾아보면서.
그러고 6,7년이 지난 올해 또 C를 받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나에게 말을 건다. 빼앗기는 무의식이 있으니 나를 좀 봐달라고.
그 일들에서 외부의 분노 대상을 찾아 나서지 말고, 내 안에서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좀 살펴봐 달라고.
나에게는 3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어릴 적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내 동생에게 많은 걸 빼앗겼다고
느꼈던 감정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 막내니까. 니 동생이니까 잘 챙겨줘야 한다며
빼앗긴 사랑만으로도 억울한데 거기에 책임감을 내 가슴에 덕지덕지 발라주던 부모님.
엄마 아빠와 얘기하며 함께 울며 서운함을 많이 해소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문장을 쓰는 내 눈에서는 물이 나온다.
조금은 해소된 것 같아 보이고 싶어,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재빠르게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잔잔한 한강의 물결과, 하얀 눈으로 덮인 공원, 그리고 저 머얼리 눈에 덮여 있어도 조용한 북한산까지.
마음을 들여다볼수록, 마음은 왜 이제 왔냐며 수십 년간 부리지 못했던 투정을 부리는데
내 온 마음과 몸이 그걸 받아들이는 데 버겁다고 느끼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환영의 마음으로 싱긋 웃으며 그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난 요즘, 그리고 아직, 없다.
결국 대롱대롱 달려있던 눈물이 광대 쪽으로 흐르려고 한다.
뭐 이왕 흐를 거 와르르 흘러라 싶은 마음이 든다.
울면 어떻고 안 울면 어떤가. ㅅㅂ 뭐 어쩌라고. 괜찮다. 괜찮아.
윗 문장을 쓰자마자 눈알과 맡닿아 있는 눈 전체에서 갑자기 촉촉함이 느껴진다.
괜찮다. 괜찮아. 다 괜찮아. 모든 게 다.
이번에 유독 사기를 당한 내 돈도, 평가를 안 좋게 받아 받지 못하게 된 내 성과급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내 돈', '내 성과급'이라는 나의 것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에게 오지 않을 때 나의 무언가를 잃은 느낌.
사실 돈이 란 건 주인을 옮겨 다니는 건데, 나는 왕왕 더 갖고 싶은가 보다.
이렇게 빼앗기는 감정에 마음이 많이 흔들리는 걸 보면.
이런 나를 위로해 본다.
빼앗고 빼앗기는 인생을 살면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리고 나를 좀 워워시켜도 본다. 나의 이 날 선 감정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길 바라보면서.
아니다, 지금 내 감정이 이런데 무슨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걸 고려하고 자빠졌냐.
그냥 빼앗긴 이 마음을 알아주는 수밖에.
빼앗겨서 억울하겠다고. 지금까지 빼앗긴 많은 것들에 대해 바라보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았던 거 미안하다고. 계속해서 바라봐 주겠다고. 억울해도 괜찮다고. 빼앗겨도 괜찮다고.
순수함은 상대적인 악함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2가지 일들이 나한테 생기고 나는 내가 남에게 일을 시키고 평가를 좋지 않게 주고,
내가 파산할 걸 알고 마지막에 기존 고객과 신규 고객들에게 몇억의 돈을 받아낸 사람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당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을 속이는 편에 서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난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괜찮다.
이 또한 또 지나가고, 몇달 후엔 창원에서 올라온 지방 사람인 내가 서울에서 코베인 스토리와,
이 회사에서 너무나도 여러번 (이젠 진정 지겹다...) 나를 바라본 경험이었다고 말할 날이 오겠지.
마음이 롤러코스터 같은 요즘, 인내를 힘겹게 손에 잡아 들고 그런 날이 오길, 바래본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되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