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by 류류류

내 마음속 가장 깊숙하고 따뜻한 공간. 고향.

20대 초반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 동물은 죽을 때가 다 되어가면 자기가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길 바라는지, 연어는 왜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알을 낳고 죽는지, 왜 어른들은 고향을 그렇게 그리워하는지.

회귀본능은 왜 생긴 것일까.


우리는 생명이 없었다가, 주어진 생명을 붙잡고 100년 남짓을 살아가다, 생명이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죽음으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일까.


KTX역에 서울행 기차가 들어온다. 빠르게 멈추는 기차의 창문으로 여러 개의 내가 비추었다 사라진 다를 반복한다. 나는 어떤 것으로부터 회귀하고자 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번에 내가 겪었던 일들을 고향에 있었을 때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마음만 가득가득 아파하실 걸 알기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의 짐을 나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그렇다고 내 마음의 짐이 가벼워질 것 같지도 않았고.


같이 맛있는 걸 해 먹고, 사 먹고, 디저트와 커피를 곁들여 함께 마시고 먹고, 함께 걷고, 웃고.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롯이 나 혼자 있는 공간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왔다.


아빠가 기차 타기 전 따뜻한 차를 사주셨다. 그래서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목을 축이며 기차를 기다려 좋겠다. 생각했는데 짐을 역 안까지 들어다 주시곤, 내가 항상 인사할 때 포옹을 하는데 그렇게 항상 또 어색해하시면서도 나를 반쯤 안아주고는 비즈니스 파트너처럼 악수도 청하며 손을 꼬옥. 잡아주고는 약간은 급한 걸음으로 주차 카메라에 찍힐까 봐 걸음을 재촉하는 아빠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저 바라보았다.


해외에서도 타지에서도 어디서든 잘 산다라고 생각하던 내가

문득

'나는 연약한데, 아빠 없이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흔들린다.


어제저녁부터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부터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반찬을 다 만드신다.

손이 빠른 엄마가 한가득 싸준 음식과 식재료를, 아빠가 테트리스 하듯이 보냉백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주신다. 그 음식의 무게가 심장 무게처럼 속이 꽈악 차 있어 무겁게 느껴진다.


모르는 풍경들이, 익숙하게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 아빠에게 물었다.

무언가 빼앗기고, 못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아빠는 말씀하셨다.

그건 상대적인 거니까.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을 보라고.

그게 잘 안되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아빠는 웃으며 대답하신다. 모르겠다고. 사람이라 그게 참 힘들다고.


애써 조금 더 밝게 웃으며 화제를 돌린다.


틈틈이 걱정되는 부분들을 부모님에게 아이한테 가르치듯 여러 번 얘기한다.


서로가 서로를 애정하는 이곳. 고향에서

나는 아픈 마음을 안고 찾아가, 마음의 위로를 한긋이 받고 돌아간다.


내일부터는 혼자서. 내 입장을 얘기하고, 부딪칠 수 있는 예측가능한 상황에 심장이 뛴다.

얼굴도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아빠가 한 말이 또 생각난다.

'다 지나간다.'


본가에서 오랜 사진첩을 꺼내 들었을 때 그 안에 있던 내 어린 모습이 지나간 것처럼.

지금. 이 힘들고. 억울하고. 분노스러운 마음도 평생 함께 머물진 않겠지.


요즘 마음에 약해져서일까. 내가 타지에서 뭐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시드니에서 이런 생각이 들 때 한국으로 돌아왔었는데.


한 치 앞도 모르는 내 삶 속 일상이, 어떻게 지나가게 될까.


지금 바라보는 바깥 풍경처럼, 약간은 차갑더라도 평온하기를.

아니라면 엉망진창이라도, 아주 약간은 따뜻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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