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돈을 쓸 때 유독 아까운 부분들이 있다.
이런 것들이 나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늘 즐거운 경험만은 아니지만,
내 호오와는 상관없이,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되는 길목으로, 늘. 그 방향은 잡혀있다.
아까운 돈부터 얘기하면 내 자신이 너무 쪼잔하게 느껴질까 안 아까운 부분부터 얘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
오히려, 내가 가진 돈으로 이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기분이 좋아지는 편이니까.
물론, 조건은 있다.
음식이 맛있고 정갈해야 하며, 동시에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만족스러운 친절감을 받을 경우에.
뭐 어마어마한 친절감은 아니지만,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내 돈 내며 불친절한 곳은 두 번은 안 가게 되니까.
맛있는 커피를 여유롭게 감정 소모 필요 없는 사람들과
달달한 디저트랑 함께 즐기는 시간도 그렇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여기서 '타인'만 빠져버리면
나 혼자서 그렇게 할 때 나는 조금 아까운 감정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나 혼자 있을 때는 좋은 식당에 가서 나를 대접하기보다는
간단하게 김밥이나, 도시락을 구매해서 저렴하게 먹는다거나.
나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
카페에 가는 건 왠지 돈이 아까워,
집에서 드립커피를 내리게 되는.
혼자 카페에 갈 때도,
먹일 쿠폰이 있는지를 찾아보고.
왜 나 혼자서 타인과 있을 때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낼 때가 훨씬 많으면서
아끼게 되는 걸까?
요즘 나와 심리적으로 그 누구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제미나이에게 물어보았다.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들을 제하고 나니, 가장 내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타인'은 가시적이지만 '나'는 추상적이다.
누군가를 대접하거나, 함께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는 행위는
상대의 기뻐하는 표정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지출의 피드백이 확실한 반면, 나에게 비싼 밥을 대접하는 것은
'나를 돌보는 행위'라는 추상적인 가치라 그 보상이 즉각적으로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
그래서 '이 돈이라면 차라리...'라는 생각이 더 쉽게 끼어드는 것이라는 거다.
그러면서 생각의 전환을 제안했다.
'아끼는 나'도 나의 모습 중 일부이기에, 구질구질하고 초라하다는 관점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말 것.
하긴 그것도 그렇다.
내가 그렇다고 나에게 휴식의 기회를 계속해서 박탈하는 것은 아니니까.
타인을 대하듯이,
나한테도 대접을 해주자.
남과 함께할 때 보다 나 혼자 오롯이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때도 많은 만큼.
그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는 나에게.
돈이란 재화를 써서, 풍요로운 경험을 선사해 주자.
사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이지 않은가.
왜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 자주 놓치는 걸까.
내가 나에게서 떨어질 수 없기에
항상 함께하기에
그래서 더 챙기지 않게 되는 걸까.
못됐다.
그런 대접을 받으면 얼마나 서러울까.
조금조금씩
나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 경험하게 해 주자.
그렇게 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사실 언제 올지 전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