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는 이틀 다 나갔으니, 꽤 빡빡하게 휴일을 보냈다.
일요일 저녁은 다음날 출근할 생각에 쳐지지만,
이상하게도 월요일 오전 회사에서 루틴한 업무를 해나갈 때 느끼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사실 뭐 묘할 것도 아닐게,
오늘은 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지 3876일 째니까.
환산해 보니 약 10년 6개월. 10년 하고도 반년을 여기에 다니고 있으니.
그렇게 본다면, 일요일 저녁에 쳐지는 것도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말이다.
그건 왜 또 그렇게 거부감이 늘 올라오는 건지.
이것도 익숙한 루틴 같은 건가.
1월도 벌써 3분의 2가 지나갔고,
난 몇 년 전부터 새해의 상쾌한 다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시큰둥하기보다는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고나 할까.
올해 꼭 이뤄야 할 일.이라는 것보다는,
그저 오늘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더 중요도를 둔다.
그래도 가끔 자기 계발서를 보면서,
내가 너무 목적 없이 그냥 사는 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올라올 때도 있다.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연간, 월별, 주별, 그리고 하루하루의 잘게 쪼개진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것.
그렇게 거꾸로 오진 않지만,
내 한 주 세워둔 계획을 보면, 어느 정도 방향성은 잡혀있다.
꾸준히 운동하고, 피부과 시술을 받고, 스피치 수업도 들어보고, 병원도 가고,
그 사이사이 맛있는 요리도 해 먹고,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과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하고.
늘 지켜지지는 않지만 매일 밤 마지막은 명상으로 마무리하고.
이런 하루하루들이 모여
내가 지금보다 더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것을 안다.
주위 사람처럼, 수치화해서 딱.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슬렁슬렁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나한테 알맞다.
사원 때, 과장이 나한테 내가 무언가를 배우는 데 조금 오래 걸린다는 피드백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속으로 발끈했다.
그때 내 관점에서는, 자기가 더 업무 쳐내는 거 느리면서 무슨 개소리인가.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근데, 그 사람이 맞았나 보다.
나는 스파르타식으로 수치화된 목표를 정해놓고 거기로 요이땅! 하고 달려가라고 하면
오케이 알겠습니다! 하고 앞만 보고 달려 나가지 못하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달려 나가지 않는다.
우선 말이 된 나는 가만히 서서 생각한다.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가 원하는 모습의 사람이 되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될 건지, 내 마음에 거부감은 올라오지 않는지. 등등
그렇게 출발선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긴 다리를 또각또각 움직이며, 한 번씩 말이 한숨 쉬듯 푸우우우우- 입에서 바람을 빼면서.
그러다 설렁설렁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선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멘텀이 붙는 건 36년 동안 쌓인 경험으로 피부가, 근육이, 뼈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 중간에 가면 속도를 더 낸다.
지금까지 이만큼 했기에, 반정도 남짓 남았을 때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즈음에.
그렇게 끝까지 달린다.
물론 달리다 만 목표들도 아주 많다.
나는 그 정도 달린 것에 만족하며 이 정도가 내 목표였다. 하고 쿨하게 그 레인을 떠난다.
할 것은 많고, 내가 재미있는 것(그것들은 100% 내가 잘하는 것들이다)들이 100년도 못 살 내 인생에
가득가득 넘쳐날 것이기에, 나는 그것들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내 취향을 찾아, 지금까지 오랫동안 하는 활동들을 나열해 보니, 마음에 든다. 나와 결이 꽤나 맞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드는 컬랙션이라고 할까.
요가. 산책. 러닝. 필라테스. 독서. 작문. 명상.
이번 주 월요일도 이렇게 시작했다.
묘하지만 묘하지 않은 안정감 속에서
익숙한 내 계획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금세 또 다음 주 월요일이 찾아오겠지.
그럼 나는 또.
오늘처럼.
이렇게 반복하는 거고.
내 컬렉션이 계속해서 정교화되고,
나에게 딱 맞는 커스텀화가 된다.
그 과정이, 난 꽤나 마음에 든다.
내가 이뤄내 온 성 같다고나 할까.
그 성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창가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는 내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한파로 밖은 춥지만, 그 성은 지금 모든 게 만개하는 봄이다.
그래서 괜히 따사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