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일인칭 단수
작년 연말부터 계속해서 집에만 있던 나에게,
내 안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나를 아끼는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였다.
집에만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밖으로 나가라고. 별일 없더라도 바깥으로 나가 있으라고.
그래서 나왔다.
어젯밤, 금요일 밤엔 보통 2,3시까지 폰을 보다 잤을 텐데,
요새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11시에 인터넷 선을 과감히 뽑아버리고는
불을 다 끄고 누워 가만히 명상을 하겠다고 하다가 잠들어 버렸다.
잠이 들 때, 내가 언제 일어나도 뭐라 하지 않고 잘 잤다고 해주겠다고 설렁설렁 약속하고 잤다.
스을쩍 눈을 뜨니 10시 반 정도 되어있었고,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잠들었나 보다
12시가 다돼 가서야 눈을 떴다.
어익후~ 주말에 코오 잘 잤구나 :-) 라며 내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나에게 잘 잤다고 토닥거려 준 게 거의 처음이지 싶다.
나한테 그렇게 해준 사람은 단연 엄마와 아빠였는데,
아빠는 항상 놀리는 말투로, '해가 중천에 떴는데 우리 딸순이는 이제 일어났네~' 라며
나를 보고 웃으시고는,
그 말을 듣는 엄마는 '주말에 푹 자면 좋은 거다 잘했다~ 점심 같이 먹자'라는
말로 항상 그 대화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 대화가 창밖에서 가아득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과 함께 뭉쳐져
추운 겨울 날의 내 마음을 덥혀준다.
어쨌든, 밖에 나갈 때 내가 나를 이쁘게 보고 싶은 마음에 일어나서 깨끗이 씻고,
화장도 하고, 안경도 벗어던지고 렌즈도 끼고 나왔다.
내 마음인지, 신기하게도 꾸미고 나간 날에는 나도 상대와 눈을 더 마주치고,
더 친절하게 웃으며, 그렇기 때문이겠지만, 상대도 나에게 더 친절하고, 더 따스하다.
따뜻한 커피를 시키고, 블루베리 베이글도 함께 시켰다.
집에서 가져온 귤 두 개와, 계란 두 개를 까먹으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일인칭 단수'
20대 때까지만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거의 다 읽어보곤 했는데,
오랜만에 읽는 그의 책은, 내가 오랫동안 알던 사람의 말투를 듣는 것처럼,
특유의 읽기 너무 쉽고, 묘사가 눈에 훤하게 그려지는 그의 필체가
정겹다.
왜 요즘엔 예전만큼 책을 읽지 않았는지 후회가 될 정도다.
사실 물리적인 시간은 그때만큼 많은데 말이다.
어쨌든, 그 책에서 이 질문이 적힌 걸 보고,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서문이 길었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에서 버드가 한 말.
"서른네 살에 죽는 게 어떤 일일지, 한번 생각해봐."
그래서 그걸 생각해 보려고 노트북을 켰다.
지금 나는 인도와 도로를 바라보는 창가자리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광경을 바라본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아직은. 죽지 않은 사람들.
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의 옷차림에서부터, 걸음걸이, 표정, 그리고 주름에서
그들이 살아온 모든 역사를 슬쩍,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하게 진열하고 있는 거니까.
서른네 살에 죽었다면, 내가 2년 전에 죽은 건데.
그럼 엄마의 정년퇴직에 맞춰 우리 가족 모두가 북미여행을 하기 전에 죽은 것이고
35세 이상이라 소개팅 앱 가입이 거절되기 전에 죽은 것이다.
그전에 죽었다면,
내가 만났던 (나와 비슷하게) 고만고만하고 내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연애만 하다
세상을 하직한 거고,
점점 운동과 관리로 내 몸을 아끼는 법을 꽤 체득하지 못한 상태로 죽은 것이다.
내가 죽게 된다면, 지금까지 모아뒀던 약간의 돈은 다 어떻게 처리하게 될까.
갑자기 그런 걸 정리해둬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돈으로 내가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과,
갈 수 있었던 많은 곳들을, 물론 지금 딱히 막 가고 싶은 곳은 없다 할지라도,
생각하며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연인들과 부부가 내 눈앞에 많이 지나간다.
아직 어린 사람들과, 이미 늙은 사람들도 지나간다.
키가 큰사람과 작은 사람,
화장이 진한 사람과 맨얼굴인 사람.
몸이 밖으로 보이게 불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웃는 사람. 찡그린 사람. 염려하는 것 같은 사람.
영등포 역 주위라, 여행으로 설레는 표정을 한 사람들도.
불닭볶음면 컵을 커피컵처럼 들고 어디론가 가는 두 명의 청년들도 보인다.
모두가 주말이기에 삼삼오오 바쁘게 움직이는 토요일 오후 2시.
그 공간에 나도 유리 하나를 두고, 몸은 가만히 앉아있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세계적인 작가가 쓴 글을 읽고,
바깥을 보고, 내 안과 대화도 하며,
이렇게 보내고 있다.
아직 죽지 않아 나쁘지 않다는 것.
물론 34살 이후에,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셀 수 없이 나를 스쳐갔지만,
결론적으로 그 모든 것은 지나갔고
나는 지금 이 카페에 앉아
이렇게 남들과, 나를,
2년 전보다는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과거, 현재, 미래가 한 번에 존재한다'라는 관점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시공간'의 일부이며, 모든 순간이 '이미' 존재한다는 건데,
결국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현재인 이 찰나인 것처럼,
나에게는 결국 '영원한 현재'만이 실재하는 것이다.
사실, 날짜와 시간은 크게 중요치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오롯이 이렇게 차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할 뿐.
물론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지.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완만한 것이기도 해.
자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프레이즈와 마찬가지야.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시에,
한 없이 잡아 늘일 수도 있지.
동쪽 해안에서 서쪽 해안만큼 길게ㅡ
혹은 영원에 다다를 만큼 길게.
시간이란 관념은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어.
그런 의미로 보면, 나는 하루하루 살면서 죽어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도 실제로 맞는 진짜 죽음은 철저하게 무거워.
그 전까지 존재했던 것이 갑자기 통째로 사라져버리지.
완전히 무無가 되어버려.
그리고 내 경우, 그 존재는 나자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