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아기와 함께 보드라운 책임감이 입주했다.
조리원에서의 2주는 평안했다.
코시국에 아이를 낳아 남편이 조리원에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주말에만 남편이 함께 있었고 나머지 기간에는 혼자 몸 회복에 집중했다.
잘 먹고 잘 쉬고 있으니 2주의 시간은 훅 지나 있었다.
여름 반팔 원피스를 입고 입원해서 조리원으로 온 나는 조리원 퇴소날 시원한 초가을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세 식구네.
둘이서 알콩달콩 소꿉장난같이 살았던 집에 아기와 함께 보드라운 책임감이 입주를 했다. 우리의 일상은 달라졌다. 일어나고 자는 시간, 먹는 시간이 달라졌고 아기를 케어하기에 입는 옷도 가까운 거리의 외출도 고민하게 되었다.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틀이 아기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게 된 것이다. 아기를 맞이하며 내가 엄마를 잘할 수 있을까?? 잠시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내 손을 꼭 잡으며 “콤이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옆에 있잖아. 우리 함께 잘 키워보자.”라고 말하는 남편이 내 정신을 번쩍 깨워주었다.
지인이 집에 돌아오면 꼭 산후조리사를 쓰라고 당부했는데 우리는 쓰지 않았다. 우리 집에 누군가 남이 상주하는 것이 싫었고 내 살림에 손을 대는 것도 아기를 나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 손에 맡기기도 싫었다. 친정과 시댁의 도움도 일절 받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하는 육아를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아기는 처음이었지만 연애 6년 결혼 7년 차였던 나와 남편은 첫날부터 2인 1조의 눈부신 팀워크를 발휘했고 그 때문인지 둘이 같이 하는 신생아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행복했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은 출퇴근이 조금 유동적이어서 오전 9시쯤 출근해서 오후 5시 반쯤 퇴근하였다. 나는 그 사이 2-3시간에 한 번씩 수유와 트림을 시키고 아기가 자면 집안일을 하고 유축을 했으며 아기가 깨어있는 시간에는 조금 놀아주면 되었다. 이후 남편이 퇴근하면 모든 것을 함께 했다. 함께 저녁준비를 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치우고 함께 아기를 씻기고 함께 아기와 놀았다. 이렇게 밤 12시까지 남편이 함께 해 주었고 오전에 또 출근하는 남편은 잠을 자야 하기에 이후 새벽 수유는 내가 담당했다. 하루도 힘들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아기와 남편과 함께하는 행복한 이 시간들이 너무 좋을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매우 높은 남편의 육아참여도와
유니콘 베이비였던 첫째의 덕이었다.
아기 호랑이는 현생에 찾기 힘들다던 “유니콘 베이비“였다.
조리원에서부터 목을 가누더니 잘 먹고 잘 잤다. 조리원에서 다른 아기들이 크게 울어도 옆에서 잠만 잘 자주던 순한 아기. 잘 먹기도 했지만 게워내거나 토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 잘 자는 것 같았다. 깨어있으면 방긋방긋 웃었고 배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에도 짧게 울었다. 이마저도 불편함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는 아기였다. 배부르면 자고 그 흔하다는 칭얼거림이나 잠투정도 없는 아기. 첫째 호랑이는 생후 65일경부터 7-8시간 통잠을 자 주었다. 그래서 나는 100일의 기적을 모른다.
누군가 그랬다.
유니콘 키운 엄마는 육아 훈수 두지 말라고.
정말 그랬다. 첫째가 두 돌이 되어서 둘째를 출산할 때까지 나는 육아가 체질인 줄 알았다. 육아는 힘든 건 없었고 아기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행복하기만 했다.
내 아기가 유니콘 인 줄은 알았지만 유니콘 중의 상 유니콘인 건 둘째를 낳기 전까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