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모급여를 버리는 셈 치기로 했다.
둘째 만수를 임신하고 양수검사를 마치니 어느덧 3월이 되었다. 그사이 18개월이 된 첫째는 이제 집에서 놀기가 더는 심심한지 매일같이 놀이터로 나가고 싶어 했고 어린이집 첫 등원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는 첫째가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입소 예약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신축아파트였는데 아파트 단지 안에 새롭게 지어진 어린이집에 꼭 아이를 보내고 싶었다.
주변에 어린이집은 주민센터의 한 층을 사용하고 있거나 구축 아파트 일층에 자리한 가정어린이집이거나 건물 하나를 통으로 사용하는데 연식이 오래되고 놀이터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아이를 단지 내 새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다.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보니 0세 반부터 운영되고 있었는데
0세는 9명 정원이었다. 어린이집 신청은 태어난 순서(선착순)와 부모의 맞벌이 여부, 형제의 수에 따라 점수가 매겨져 입소대기를 걸어 둘 수 있었는데 하반기에 태어난 아기 호랑이는 자동으로 선착순 순번에서 밀리게 되었다. 게다가 첫째였기 때문에 맞벌이였음에도 점수는 제일 꼴찌였다. 당시 나는 출산 후 1년 육아휴직을 한 뒤 복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린이집 0세 반에 꼭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더 속이 탔다. 남편은 일단 대기해 놓고 기다려 보자며 왜인지 우리 아기 호랑이가 우리가 원하는 어린이집에 꼭 다니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며 희망적인 소리를 해댔다.
그러던사이 11월이 되자 어린이집 확정이 났는데 보내고 싶었던 어린이집의 대기순번에 6번이라고 쓰여 있었다.
6번.. 아마 갈 수 없겠다 싶어 속이 상했다.
가고 싶었던 곳 말고 주변어린이집에도 대기를 걸어두었었는데 그곳들에 대기도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집이 우선 입소점수가 있어서 대기가 덜했던 지경이었다. (신혼부부 밀집지역에 살았던 지인의 아이는 대기가 108번이었다고 했다.)
0세 반 정원이 9명인 것이 원망스러웠다. 저출산이라며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해놓고 엄마가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환경이라니.. 저출산 정책이 산으로 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국가를 원망하고 있던 2월 말 갑자기 원에서 입소가 가능해졌다며 연락이 왔다. 앞에 6명이 입소를 보류하게 되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마 부모급여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됐다. 당시 나라에서 처음으로 부모급여라는 걸 지급했는데 이 금액이 꽤 컸다. 어린이집에 아기가 다니게 되면 보육료가 이 부모급여에서 자동 차감이 되는데 0세 반은 차감 금액이 총금액의 80% 정도로 컸다. 저출산 정책이 산으로 가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모급여의 덕을 봤다.
아기가 고작 6개월이었던 그 해 3월 입소절차를 밟았다.
역시 하반기에 태어난 나의 아기 호랑이는 0세 반에서도 가장 막내 월령이었다. 원에서는 분유도 먹여주고 이유식도 먹여준다고 걱정 말라고 했지만 8월까지는 육아 휴직기간이라 어차피 내가 집에 있을 건데 이게 맞나 싶었다. 복직 때문에 못 보낼까 봐 애가 탔는데 막상 보내려고 보니 이제 막 이유식을 시작한 아직 기지도 못하는 이 조그마한 아기를 어찌 보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부모급여 덕인지 행운인지 모르게 대기 6번이 입소가 가능해진 이 상황에서 입소를 보류했다가는 중간 입소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에 복직 시기에 아이를 보내려면 입소는 꼭 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부모급여를 버리는 셈 치기로 했다.
우선, 입소를 확정하고 아기는 보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기는 원에 가지 않았지만 매달 보육료는 부모급여에서 자동 차감이 되었고 매월 아기 최소 출석일 수에 맞춰서 현관에서 출석 체크만 했다. 어차피 매일 산책 나가는 길에 출석체크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9월 복직을 할 때에는 아기가 돌이 지나니 그때까지만 이렇게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