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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 Mar 31. 2017

내가 만난 남자 - 카페 사장

12살 차이. 같은 띠. 그 남자는 나보다 12살이 많았다.


작은 편의점 하나 없던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가 생긴 날,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언니와 함께 카페에 들어섰다. 

카운터에서 커피를 내리던 젊은 한 남자. 

시원시원한 눈매에 밝은 오렌지 색의 스냅백을 거꾸로 쓴 그 남자는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 크지 않은 키였지만 단단해 보이는 덩치, 분명히 어디선가 운동 꽤나 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한 분위기에 잔잔하게 들리는 음악소리가

앞으로 나를 자주 방문하게 만들 것 같은 곳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두리번거리던 언니와 나에게 

오픈 기념이라며 작은 케이크 두 조각을 주는 그 남자는 이 작은 카페의 사장이었다.


방학을 맞아 아침마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렇게 집이랑 가까운 카페가 생기다니, 너무 좋다.


카페 사장인 그 남자는 언제부턴가 자꾸 나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었다. 

내가 한참 공부를 하고 있으면 주변을 왔다 갔다 하다가 

무슨 공부해요? 하고 물어보고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웃어버리곤 했다.

어느 날은 무슨 띠인지 물어보고는 혼자 흠칫 놀라더니 말끝을 흐리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나이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띠를 물어보네. 이상한 사람이야.


저도 같은 띠에요, 우리 열두 살 차이네요.

가방을 챙겨 나가려는데 한마디 툭 던진다.


연애를 할 때 특별하게 나이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기보다 12살이나 어린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당황하는 모습이 뻔하게 보였다. 

귀여워.


나는 한창 공부할 시기였고, 대외 활동이다, 어학연수다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거의 몇 개월을 카페를 지나치고 어쩌다 동네를 산책하다 마주친 그 남자는

어디서부터 뛰어왔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내 옆으로 다가와 오랜만이라며 인사했다.

뛰어서 그런 건지 여름이라 더워서 그런 건지 연신 땀을 흘리고 심장소리가 미세하게 들리는 듯한

그의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 식으로 몇 번을 마주쳤고, 언젠가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 그 남자를 보게 되었다.

어김없이 지나가고 있는 나에게 달려와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뜬금없이 말했다.


그런데 혹시 아세요? 예전에 제가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하하.

너무 좋아해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갑작스러운 여름날의 고백. 

그 당시엔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터라 

감정은 희미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꿈 많은 대학생이자 이제 꽃 피우는 성인인데, 

나이 많은 자신이 다가가기에는 큰 부담일 거라 생각했었다고.


좀 더 빨랐다면 난 그의 고백을 받았을 것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라 나이가 많은 그 남자와 오랫동안 함께 하게 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복잡 미묘한 순간이 지나고

이미 나에게는 그에 대한 작은 추억 조각들만 남아있다.


나는 용기 낼 것이다. 기회가 나타나면, 서슴지 않고.

두려워하면 놓칠 테니까.

지금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나를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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