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지나 Nov 23. 2015

기차여행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 낭만의순간들


When a landscape is described as romantic, this means that there is a tranquil sense of the sublime in the form of the past,or, what amounts to the same, of solitude, remoteness, seclusion. 


                                                                                                        -Johann Wolfagang von Geothe

                                                                                        <Sketchy, Doubtful, Incomplete Jottings>


어떤 풍경을 낭만적이라 말할 때, 이것은 과거의 형태를한 숭고함, 또는 이와 동일한 고독, 거리감, 호젓함의 잔잔한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라고 괴테가 말했다. 


대문호의 말이라 해서 진리는 아니지만, 이 짧은 구절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 여행 중 특정 도시를 여행하게 되는 시간만큼이나 기대하는 순간은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이다. '참으로 낭만적인 풍경이다', 중얼거리며 눈을 깜빡이는 찰나도 아까워하며 차창 밖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풍경을 그냥 옆에 두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도, 꾸벅꾸벅 졸며 놓칠 때도, 모두 좋다. 발음할 수 없는 역명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아무 감흥없이 출근을 위해, 또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기차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처음 보는 꺽다리 가로수와 이름이 궁금한 풀꽃, 꼭 기억하리라 다짐하지만 기차가 멈춰서고 짐을 내리며 잊게 되는 작은 교회가 있던 마을. 너무 빨리 지나쳐 그런 것일지 모르지만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드문 드문 나무와 섞여 심어 놓은 전봇대 말고는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시절의 장면.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나는 레일 위를 달리고 있고 풍경은 그 자리에 꿈쩍 않고있어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c)Gina Maeng

+프랑스 떼제베 TGV

기차에서 카페칸은 자주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역에 조금 일찍 도착하는 것을 좋아해서 역에서 아침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데 어쩌다 늦어져 출발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하면 커피 때문에 카페칸을 찾는게 전부에요. 정-말 잠이 안깨는데 기차에서 할 일이 많을 때만 가보는데 (커피맛도 그저 그렇고 가격은 카페의 배는 되니까요), 얼마전 다녀온 남프랑스 기차 여행의 차창 밖 풍경은 정말 예뻐, 카페칸의 큰 창문을 통해 마음껏 구경했어요.  


일정이 빡빡하지 않을 때는, 짐이 그리 무겁지 않을 때는, 그 다음 기차가 곧 올 때는 잠깐 정차하는 역에 내린다. 벤치에 앉아 다리를 쭉 뻗어 보고 자판기에서 오분, 십분을 소요하며 지갑 속 낯선 동전들을 뒤적거려 초코바도 하나 사 먹는다. 계획된 일정에서 딱 한 시간만 쓰고 다시 기차에 올라 타는데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따라솟구치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만든 계획을, 이미 여러 번 바꾸고 또 바꾼 계획인데도 진행 중에 갑자기 수정하여 단출한 시간을 보내는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바티칸박물관이라도 보자고 갑자기 기차에서 뛰어 내린 것도 아니라 어디 자랑할만한 대단한 무용담도 아닌데, 에펠탑을 처음 마주했을 때, 웨스트 엔드의 뮤지컬 표를 꼭 쥐고 자리에 앉았을 때와 견줄 수 있는 두근거림이다. 고독하고, 멀고, 소연한 그 과거의 숭고함을 펼쳐 놓은 풍경을 오롯이 마주하는 것은. 


그래서. 

낭만적인 여행지는 어디였는가, 하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심상은 열심히 달리는 기차의 창가 자리이다. 기차? 유레일? 하고 또 물어오면 덧붙인다. ‘응, 야간열차’. 그렇다. 낮의 기차보다 밤의 기차가 훨씬 더 낭만적이다. 아직 가스등을 쓰는 걸까 궁금하게 만드는 노오란 불빛으로 가득한 차창 밖 풍경은 두어가지 색의 흔들림뿐인데도 말이다. 낮보다 두 배로 천천히 달리는 야간열차는 불편할수록 좋다. 자다가 여러 번 깨어 뒤척이며 덜커덩거리는 기차 소리와 기분 좋게 흔들리는 움직임, 불편하게 몇 줄 읽다 덮을 정도로의 밝기만 제공하는 머리맡 조명, 그리고 흐릿한 창 밖 풍경을 차례로 한 번씩 감상한다. 


(c)Gina Maeng

+Paris, Gare de Lyon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다. '깼어?' 하고 윗칸에서 속삭이는, 바람 가득한 너의 목소리가 한 번 더듣고 싶어 일부러 대답을 않고. '자?' 하고 한번 더 물으면 아니 아니, 안 자. 몇 시쯤 되었을까, 배는 안 고파? 조심스레 오가는, 침묵에 가까운 나즈막한 목소리들이 있었으면. 언제 다시 잠들었는지 모르게 아침과 함께 역에 도착하고 조금 찌뿌드드한 몸으로 새로운 여행지를 밟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참으로 낭만적인 여정이었다고. 얼른 또 밤기차를 타고 싶다고. 


작가의 이전글 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