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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손 끝.

언젠가 닮고 싶은

by 진아

누군가는 손끝으로 멋진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손끝으로 맛을 만든다.

우리 엄마는 손끝으로 '단정함'을 만들었다.


그녀의 손이 닿으면 어수선하던 공간이 마치 마법처럼 정돈된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깔끔했다. 가정주부였던 엄마는 매일 쓸고, 닦고, 정리하며 정성껏 집을 가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침에 어질러둔 책은 어느새 제자리를 찾고, 지우개 가루하나 없이 말끔한 책상이 나를 반겼다. 내 책상 말고도 언니와 남동생 책상까지 정리해야 했던 엄마는 가끔 '이젠 안 해준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엄마의 손에 의해서만 말끔해졌다. (가만 보고 있자니 답답하셨던 것 같다.)


그땐 몰랐다.

집에 먼지가 이렇게 자주, 그리고 많이 쌓이는 줄.

무엇보다 집이 이리도 쉽게 어수선해지는 줄은 더더욱.


아쉽게도 나는 엄마의 손끝을 닮지 못했다. 상경 후 혼자 살 때부터, 결혼한 지금까지도 내 손길이 닿는 공간은 무언가 엉성하다. 옷이 걸린 모습도, 책이 꽂힌 책장도, 침대 위 이불도. 엄마의 손이 닿았던 그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얼마 전, 태이 어린이집 방학을 맞아 청주에 계신 엄마에게 서울에 올라와달라고 부탁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지만 아이를 보며 일하는 건 도저히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기꺼이 올라오셨고, 그렇게 일주일 간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엄마 손 끝의 마법.

애써 모른 척 넘기던 어수선함이 순식간에 정돈됐다. 그 순간, 어린 시절 하교 후 마주하던 반짝이던 책상이 떠올랐다. 주방은 말끔해지기 시작했고, 태이가 놀다 어지럽힌 놀이매트는 어느새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1년 차 새내기 엄마는, 39년 차 엄마의 손끝을 그저 경이롭게 바라볼 뿐이었다.


어린 세 아이를 키워내는 것도 모자라 정성껏 집을 돌보던 그 정성. 엄마의 손끝이 만들어낸 단정함은 단순한 부지런함을 넘어 오랜 시간 쌓인 마음과 삶의 태도였다.


이제 나도 누군가의 엄마로서, 그 단정함을 흉내 내본다. 주방을 정리하고, 태이가 놀고 난 후 어수선한 매트를 정돈한다. 아직은 서툴지만, 언젠가 나도 태이에게 단정한 하루를 만들어 줄 수 있길 바란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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