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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Oct 14. 2023

개가 사람을 산책시키는 방법

못난 글

새벽 1시 30분

쌀쌀한 농로를 맨다리가 드러난 원피스에 얇은 재킷을 걸치고 허둥지둥 나섰다.     


새벽 1시 30분 전, 오후 18

산책에서 돌아온 길동이를 두부가 들어 안자

‘깨개갱깽깽 깨개갱 깨개개갱 깽깽깽’ 자지러지는 소리가 났다.

얼른 길동이를 안고 있는 두부를 보고, 다시 ‘꽤갱 깽깽 꽤갱’ 소리를 내며 ‘살려줘.’라는 듯 쳐다보는 길동의 얼굴은 평안했다.

“쟤 왜 저래?” 난 두부를 바라봤다.

“몰라 산책 잘하고 왔는데.”

다리를 만져도 ‘깨갱’ 몸을 만져도 ‘깨개갱’ 머리를 쓰다듬어도 ‘깨개갱’

“슬개골이 빠졌나?”

“두부야 내려놓아 봐.”

길동이가 냅다 달려 내게로 왔다.

“멀쩡한데. 밥 줘봐.”

한 그릇 싸악 비운 길동이

“멀쩡한데.”

두부와 나는 안심하고, 저녁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섰다.     


마침맞 동물병원 원장 사모와 약속.

“멀쩡한 거 같은데요. 길동이가 워낙 엄살이 심하잖아요.”

“그렇지! 연기가 쩔어.”

우린 그간 있었던 길동이의 만행을 이야기하며, 아무래도 두부가 농락을 당하는 거라고 그녀를 약 올렸다.

그렇게 키웠던 강아지 얘기와 산천에서 사는 잡다한 이야기를 하며 4시간을 떠들었다.     


새벽 1시 30분 전, 23시   

마지막 산책을 신나게 나선 길동이를 보고 안심했다.

산책에서 돌아온 녀석은 멀쩡했다. 발 사이를 따라다니고, 간식을 달라 애교를 떨며 잘 놀았었다.

오랜만에 쉬는 날이어선지 두부가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어, 내일 텃밭 정리하고 손님맞이 음식을 준비하려면 자야지. 잠자리에 들어가는 두부를 따라간 길동이가 또다시

‘깨개갱깽깽 깨개갱 깨개개갱 깽깽깽’ 자지러지는 소리를 낸다.


두부가 나를 부른다. 얼른 달려가 봤다.

“무슨 일이야?”

“몰라 또 그러는데. 언니가 쓰다듬어줘 봐.”

“길동아, 이리 와봐~”

얼레 이 녀석 사타구니 쪽을 만지니 깨갱거리며 내 손을 빠져나가려 한다.


우리 길동이로 말하자면, 두부와 내가 따로 있으면 우릴 모아놓고 머리를 들이대고 엉덩이를 부벼대며 만져달라고 난리를 치는 녀석이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이라도 할라치면 다리를 툭툭치고 ‘내려와 나랑 놀자.’라는 듯 고양이 눈을 하고 갸우뚱거리며 애교란 애교는 다 부리는 녀석이다.

한 20분 손으로 만져주다 지쳐, 뛰듯 발 놀이를 20분 정도하고 다시 손으로 만져주다, 내가 지쳐 누우면 그제야 제집으로 돌아가는 녀석.


오마나! 그러고 보니 우리는 왜 이렇게 놀아주는데도 살이 안 빠지지?    

 

캔넬로 쏙 들어간 길동이의 상태를 보기 위해,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홍삼 영양제로 유인했다. 문밖에 앉아 들어오지를 않는다. 사료는 안 먹어도 간식이라면 미친 듯이 뱅글뱅글 도는 놈이 겁먹은 표정으로 간식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곤 다시 제집으로 들어가 학대받는 강아지처럼 눈치를 보며 안쪽 구석에 콕 박혀있다.

두부와 나는 길동이 집 앞에 웅크리고 앉아 길동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기 맛이 나는 개껌을 집 앞에 놓아줬다. 뒷다리는 집안에 걸치고 앞다리와 몸통을 내밀고 오독오독 잘 먹는다. 그렇다면 속이 안 좋은 건 아닌데.


“두부야, 너 자다가 길동이 눌렀냐?”

“아니 저 녀석이 날 누르면 눌렀지! 난 아니야!”

“그런데 왜 저래? 자다 발로 찬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러더니 점점 수그러드는 목소리로 “설마... 내가 그랬을까?”

“치매인가? 바둥거리며 입질하디?”

“입을 가져다 대려고는 했어, 그래서 만져주기가 그래. 벌써 치매일까?”

“일찍 오는 애들도 있으니까. 병원에 가야 하나? 똥 쌌어?”

“아침에 싸고 저녁엔 안 쌌어.”

마주 보고 얘기하던 우린, 이제야 알았다는 듯 일어나 나갈 채비 했다.     


새벽 1시 30분

하네스를 보더니, 집으로 들어가려는 품새가... 다시 기어 나오는 길동이에게 하네스를 채웠다.

집 밖으로 나와 주저앉아 길동이를 바라봤다. 살살 다가오더니 쓰다듬어달라 머리를 들이미는데 멀쩡하다. 도대체 길동이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두부도 다가와 길동이를 쓰다듬는데 깨개대지  않는다.

걸어가는 길동이의 뒷모습, 긴장감으로 굳은 꼬리를 하고 슬금슬금 우리의 눈치를 보며 걸어간다. 저 녀석 보통 때는 꼬리를 살랑살랑 치며 냄새를 맡고, 안 나오는 오줌을 꼭꼭 쥐어짜며 싸야 하는데, 똥 자리 찾을 때처럼 잔뜩 긴장하며 종종 걸었다. 산책 코스를 정하는 농로 사거리가 나오자 고민도 없이 좌회전한다.


“아까 우회전했었는데…. 이 길도 가고 싶었나?”라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저시끼 똥 마려운 거 아니었어! 오늘 길동이 누구 만났어?”

“아침에 방울이랑 두부 만나서 놀았는데.”

“길동이 다른 애들이랑 못 놀게 해. 애들한테 또 뭘 배워온 거야!”

그렇다! 우리 길동이는 강아지 유치원을 다니면서 사료 뱉는 법을 배워왔고, 두부 가슴팍을 누르면 산책하러 간다는 걸 알아 왔다. 그것뿐이면 다행이게, 사시나무 흔들리듯 떨면 불쌍해 보인다는 걸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에게 써먹었다.


“아무래도 길동이 연기에 우리가 농락당한 것 같은데.”

“설마….”

30분을 걸으며 온 동네 개들을 다 깨우고, 똥은 안 싸고, 집 앞에 도착하자 꼬리를 흔들기 시작하더니 들어가자고 재촉한다.


우린 추운 몸을 녹이고, 길동이는 평온한 얼굴로 집에 누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추정 나이 13~5살 길에서 온갖 풍파를 겪고, 두부와 10년째 살고 있다.

“길동아, 새벽에 산책하러 가도 좋으니 치매 걸리지 말고, 아프지 마.”

나쁜시끼 잘도 자네.  

   

새벽 3시

두부와 , 왔던 잠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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