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한지 공예가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물고기 작가님의 도자기 공방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한참 전시 준비라 지저분한데 미안하네.”라며 눈웃음을 주시는 선생님이 반가웠어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소아 선생님이 서진 씨 얘기 많이 했어요. 요리한다며? 전에 우리 쪽 일도 했었다던데 어떻게 요리하게 된 거예요?”라며 커피를 내려 줬습니다. 작은 도시에 살아서 그런지 서로 알고 있는 지인들도 겹치고, 살아온 환경도 비슷한 탓인지 이야기는 시간과는 관계없는 분위기가 이어져 좋았고요.
“밥 먹고 가요?” 전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죠.
“선생님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저도 한때 예술가를 꿈꾸었던 사람이라, 밥 먹을 시간조차 아깝다는 작가들의 마음을 알기에, 그녀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먹여 보내야지. 나도 먹고.”라며 앞치마를 벗고 탈탈 터는 선생님의 도시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인심 좋은 아줌마다움에 놀라웠죠.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저는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지쳐있는 데다, 어머님 병간호로 힘든 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 저를 언제나 밝은 얼굴로 맞아주시고 작업실 한쪽 편을 내주신 선생님이 좋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살고 있던 집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선생님 작업실에 놀러 가기 시작했었습니다. 한지 작가님 작업실이나 다른 작가님들 작업실에서도 그렇듯, 커피 한잔 테이블에 올려놓고 물고기 만드는 작업을 도와드리며 이야기 삼매경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죠. 그리고 흙을 만지며 지친 저의 마음도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일만 시키네?” 하며 내손을 끌고 소파에 앉히고, 우아한 다완이 전시된 테이블 위에 곱게 빚은 도자기 잔을 올려 커피를 따라주었어요. “아휴~ 일도 쉬엄쉬엄해야지.” 커피를 마시다 손을 주무르며 “에고고고 요즘은 손가락이 말을 안 들어. 나도 이제 늙었나 봐. 내 고왔던 손이.”하며 선생님은 털털하게 웃으셨죠. 소파에 털썩 앉아 “어머 서진아. 내 손 좀 봐 어떻게 하니.”라고 손을 바라보다 머리를 매만지며 “나 머리 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지? 놀러 가고 싶다.” 하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 같았어요.
그래도 손은 멈추지 않고 물레를 돌리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자기를 만드는 흙과 물레가 선생님의 전부인 것 같았습니다. ‘천직’이라는 말을 절로 나오게 하는 분이셨죠.
드디어 선생님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작업은 마무리되고, 물고기들이 태어났습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물고기들, 그녀는 저린 손을 주물러 가며 자리를 찾아주었습니다.
전시 오픈,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서자 저의 몸이 멈추었습니다. 대신 저의 마음이 자유를 찾는 물고기들과 함께 떼를 지어 날아올랐어요. 저 안에는 제가 접어야 했던 꿈을 꾸는 물고기도, 제 희망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고기도, 저의 아픔을 담고 가는 물고기도, 저를 위해 기쁨을 매달고 오는 물고기도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제 눈에 들어온 선생님, 물고기 떼 한가운데서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물고기 작가’님에게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저런 맛에 복대로 허리를 감싸고 손가락 마디를 주물러 가며 힘든 작업을 계속하시겠죠.
이렇게 저에게 또 하나의 친구가 생겼고,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도자기가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젠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녀의 성격을 닮은 맑고 화사한 뽀얀 하얀색 접시에 음식을 담아 손님들에게 대접하면, 제 마음이 맑아지고 음식이 화사해집니다. 밝고 귀여운 빨간색 포인트가 들어간 그릇은 제 음식이 왈츠를 추듯 경쾌해졌습니다. 자유롭게 굴곡진 그릇에 음식을 담으면 제 마음도 자유로운 감성을 갔을 수 있었죠. 선생님의 작품에 담긴 저에 음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좋았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마음을 주고받으며 지냈던 시간이 벌써 9년이나 지났네요. 그동안 여행도 같이하며 삶의 고단함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남쪽 끝에 귀촌하였고 선생님은 세종으로 작업실을 옮기셨습니다. 이젠 자주 만나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죠. 그래도 일부러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이번에 만난 그녀의 건강이 걱정됐습니다. 허리가 아파 누워계신다는 선생님이 갑자기 찾아온 저를 위해 자리를 차고 나오셨습니다. 손마디가 저린다면서도 커피를 내려 주시고, 드시라고 사간 무화과를 깎아 오히려 저를 먹이려 하십니다. 그 마음이, 몸이 아프다 해서 어디 가겠습니까.
"쌤 나 보니까 허리가 안 아프지?"
"응. 안 아파. 좋아."
저를 걱정하는 그녀에게 우리 집 텃밭 이야기, 동네 할머니 이야기 그리고 가르치는 학생들 이야기로 마음을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장애인 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며 여전히 그녀의 마음은 밝고 소녀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얼굴이 밝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그녀는 작품이 아닌 대중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할 시대에 대한 푸념과 걱정이 섞인 말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에서 생산자가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제 마음이 아파지더군요.
그래도 한결같은 선생님, 탐나는 그릇들이 전시되어 있고, 작업하던 작품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으며, 가마 안에도 빼곡히 있네요. 하지만 그중에도 눈에 들어온 구름 위에 앉은 물고기. 사실 선생님 작업실을 찾게 되면 물고기를 찾게 됩니다.
나에게 그녀는 ‘물고기 작가’이시니까요.
그녀의 마음이 담긴 물고기들이 다시 날아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스러운 빨강, 새초롬한 노랑, 깊은 바다 파랑, 녹음을 그리워하는 도시의 초록, 화려한 보라색 화려한 물고기도 한자리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