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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07. 2023

동생 ‘스파크’가 ‘벤츠’를 긁었습니다

못난 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지요.

우린 둘이 사는데도 바람 잘 날이 없네요.

아니 길동이랑 노랭이까지 넷이라 그런가?     


식탁에 앉아 수업 관련 리서치를 하는 제 앞에 앉더군요.

이제는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며 도와달라더군요. 제가 뭘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봤지요. 같이 수영장을 다니자는 겁니다.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왜냐고요?     

 

몇 년 전에 수영을 가르쳐달라는 두부의 부탁을 받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가르쳐주는 대신 제가 좋아하는 마블 시리즈 수영모를 세트로 샀습니다. 난 스파이더맨, 두부는 캡틴 아메리카. 동생은 수경에 수영복도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서너 번 간 것 같아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더니 흐지부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죠. 또 그런 불상사가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차라리 다른 걸 생각해 보라고요. 그래도 다니겠다는 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는 왜 다니기 싫었냐고 말입니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고민 끝에 안 다니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녀석이 글쎄, 뱃살을 빼고 싶어 배영을 배우려는데, 자유형부터 해야 한다며 발차기만 줄기차게 시키는 제가 미웠다네요.

수영장 비용을 대겠다. 자유형부터 열심히 배우겠다. 밥도 먹으라는 대로 먹겠다며 졸라대는 통에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밤마다 집에서 작업하던 가내수공업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디데이가 왔습니다.

하지만 내 동생님이 까맣게 잊고 계셨더라고요. 느지감치 오신 두부가 지금이라도 가자며 보채기 시작했더랬죠. 일단 준비한 샌드위치를 하나 먹이고 수영복을 가지러 제 작업실로 출발했습니다.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동생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는 겁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주차하다 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어허! 그 잠깐 사이에 날벼락이 떨어졌더라고요.

동생 ‘스파크’가 ‘벤츠’를 긁었습니다.     


횡설수설하는 동생에게 차주에게 전화는 했는지, 보험회사엔 전화했는지 물어봤어요. 다행히 차주에게 전화는 했더라고요. 그런데 보험회사에 왜 전화해야 하냐고 물어봅니다. 이 아일 어쩔까요. 사고가 처음인 동생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듣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입구에서 아이가 튀어나와 피하려다 긁었다네요. 동생이 볼 때는 살짝 긁힌 정도의 가벼운 사고라 괜찮을 거로 생각하지만 ‘벤츠’라 어쩌냐고 합니다. 그러더니 날 쳐다봅니다.

안 그래도 외제 차만 지나가면 얼어버리는 그녀가 ‘벤츠’를 긁었으니 정신이 없을 만도 하죠.


그때 ‘벤츠’ 차주가 나오더라고요.

나오자마자 어두운 밤인데도 아래쪽에 찌그러진 부분과 까맣게 긁힌 자국만 보더라고요. 그리고 딸로 보이는 아이가 “엄마 차는 왜 항상 여기가 이상해요.”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벤츠’ 차주가 범퍼를 고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이런다고 하더라고요. 이 말인즉 벌써 한번 수리를 했고, 또 한 번 도로 턱이나 돌 같은 차가 다닐 수 있는 주차장이나 도로에 있는 단단한 것에 긁혔다는 것이었죠.

두부가 ‘스파크’로 ‘벤츠’를 아래에서 위로 들어 올려 긁었다면 가능한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뒤늦게야 두부가 정신을 차리고 보험회사에 신고하더니 ‘벤츠’ 차주에게 집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는 겁니다. 전 어이가 없어서, 사고를 낸 분과 사고를 당한 분께 사진은 찍었냐고 물어보고, 어떻게 된 건지 살펴보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제가 차를 살펴보고 있는 사이에 정신없던 두부가 보험회사와 얘기해 공업사를 정하고 연락을 드리겠다며 ‘벤츠’ 차주를 집으로 들여보내는 겁니다.     


아무리 10년이 다 돼가는 벤츠라 하더라도 사람 잘 못 만나, 수입차 랜트에 긁힌 스크레치라도 범퍼를 간다고 하면 장난이 아닐 건데, 두부는 대물 10억까지 들어놨느니 상관없다며 갑자기 큰소리를 치네요.

그러는 사이 보험회사에서 왔습니다. 역시 그분도 같은 생각, 윗부분은 동생이 긁은 게 확실하지만, 아랫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죠.     


일단 정리된 상황을 차주에게 설명했더니 ‘벤츠서비스센터’에 보낸다고 하네요.

더 황당한 건 두부입니다. “언니, 왜 얘기가 달라지지?”

“네 차가 아무리 오래된 중고라도 벤츠라고 생각해 봐. 너도 지금 여기저기 연락해서 물어보고 있지? 저기도 그럴걸.”

“저런 건 얼마나 해?”

“아마 중고로 샀으면 500부터.”

그리고 문자가 옵니다. ‘탁송하겠습니다.’

“보험회사에 맡기자. 운행 중 사고 난 게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하자. 사람 안 다친 게 어디야.”     


수영장은 포기하고 집으로 와, 둘 다 소화제를 먹었습니다.     


다음날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왔네요. 탁송도 안 된다. ‘벤츠’ 차주와 협상도 본인이 하라는 담당자의 말에 보험회사에 전화했습니다.

그러나 바뀐 담당자도 여전히 같은 말이더군요.

“이런 일 처리해 달라 보험을 든 겁니다! 다시 담당자 바꿔주세요.” 큰소리로 화를 내고, 다시 보험회사에 연락해 컴플레인하고 나서야, 두부의 손을 떠났네요.

“언니 사람들은 왜 조용조용 얘기하면 안 들어?”

“엉킨 밥 먹어서 속이 엉켜서 그래.”     


아무래도 지인의 말처럼 온천여행 가서 푹 담그고 와야겠습니다.

“두부야 온천 갈까?”

“그러자. 11월 말까지 다 끝내고, 12월 초에 꼭 가자.”    

 

앞으로 이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


https://brunch.co.kr/@ginayjchang/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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