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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an 22. 2024

나는 참 잘 먹는다

못난 글

엄마의 뱃속 작은 집에서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조그만 몸이 생겼고 팔과 다리가 그리고 눈, 코, 입, 귀가 만들어졌다.

커진 몸뚱이는 엄마의 아기집을 박차고 뛰어나가 쌓여있던 배설물을 배출하고 다시 엄마가 리미티드에디션으로 만들어준 우유를 먹었다.

몸에 걸친 조그만 헝겊 데기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영양이 풍부만 음식을 얻었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 행복했던 시간이 머릿속에 남아있어서인가 나는 먹을 때, 든든한 포만감 오는 소소한 행복감을 얻는 것 같다.    

 

친구들은 “네가 해주는 집밥이 먹고 싶어라며 먹는 이야기로 남쪽 끝부분에 사는 날 찾아준다.

“뭘 먹고 싶은지 말을 해봐”라는 나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친구가 거의 없다.

“맛있는 거? 네가 만들어준 거” 정도의 대답이 대부분이다.


나를 찾아온 지인들은 멋들어진 진수성찬이 차려진 밥상이 아니라, 단지 포근한 집에서 이야기할 친근한 사람과 하얀 쌀밥이 됐든 걸쭉한 국수가 됐던 김치 한 사발 놓고 마주 보는 식사 시간을 ‘집밥’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맛있는 밥이라???    


일요일, 약속이 있어 밥을 먹으러 나갔다.

이 집 음식이 그리 맛이 좋은 음식이 아닌데, 오늘따라 음식 간이 잘 맞고 조리 정도가 훌륭해 동생 두부와 나는 마주 보고 “오호!”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고개를 돌려 젓가락과 숟가락을 움직였다.


그런데 문제는 같이 먹는 사람, 예의상 자리한 식사자리라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음식을 바라보고 ‘맛있는데 안 들어가.’라며 젓가락과 숟가락을 움직여 봤지만, 겨우 내 앞에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금요일, 매주 보던 김 선생님을 한 달 만에 보게 돼 들뜬 마음으로 식당으로 출발했다.

이날의 메뉴는 주꾸미·삼겹살볶음.

서해와 남해에서 많이 잡히는 주꾸미는 알이 가득 찬 봄이나 야들야들 부드러운 맛을 주는 가을에 많이 먹는다.

바닷가에 위치한 이 지역도 봄이 되면 식당마다 주꾸미볶음이 한철이라 여름과 겨울엔 잘 먹지 않는다.


그런들 어떠하리,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데.

밥, 네 공기를 철판에 넣어 볶아 닥닥 긁어먹고 아쉬움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다.   

  


두부가 조용히 “음식은 맛보다는 누구랑 먹느냐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것 같아.” 라고 한다.

나도 이 말에 100% 찬성이다.    

 

그래도 맛있으면 좋으니까.

이제 밥 할 준비.     

냉동실에 큰 자리를 차지했던 팔뚝만 한 보리굴비를 꺼낸다.

녹차 대신 중국 홍차 그리고 생강과 마른 탱자를 넣어 불린 뜨물에 굴비를 넣는다.

말랑말랑하게 잘 녹은 보리굴비를 채에 건져 물기를 말려준다.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궈 채소 오일을 두르고 따뜻해지면 보리굴비를 올린다.

노릇노릇하게 구워낸다.

불을 줄이고 뚜껑을 덮는다.

잠시 후 뚜껑을 열고 손으로 보리굴비를 톡톡 두드려본다.

안쪽이 부드럽게 익은 정도가 되면 다시 강한 불로 돌리고 바싹 익혀낸다.     

하얀 쌀밥에 따뜻한 보리차를 부어 함께 먹는다.    



주말 동안 건하게 먹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지나간 주말을 생각해 본다.  

즐거운 식사도 있었고, 체하지 않은 게 다행인 밥자리와 노력 중이지만 아직 비린 음식을 잘 못 먹는 동생 두부가 보리굴비를 힘들어하며 일그러진 얼굴로 저녁을 먹는 날도 있고-.


함께한 사람들과 먹었던 음식이 나에게 웃음을 주고 추억이 되어가는 신기한 일을 이야기로 정리해 보고 있다.

     

먹는 생각을 해서인지 배가 고프다.

“뭘 먹지?”

주말 동안 건하게 먹었으니 오늘 점심은 간단히.

데운 잡곡밥을 스테인리스 양재기에 담고 노른자를 터트린 달걀 프라이와 텃밭에서 뽑아온 무로 만든 생채를 담고 생채 국물을 두 숟가락 넣어서 참기름 없이 비벼서 한입.


음~

가볍다.

개운하다.

간단하다.

설거짓거리가 몇 개 안 된다.

배부르다.   

  

혼자 먹어도 맛있으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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