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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an 11. 2024

얼렁뚱땅 만든 뜨끈뜨끈한 '매생이, 굴, 떡국'

못난 글

콧속 안과 입천장 사이에 무언가 들어있는 듯 답답한데 코를 풀어도 나오지는 않고, 목이 아프지는 않은데 간질간질한 상태가 조그만 새털같이 자그마한 물체가 살랑살랑 흔들어 대는 느낌이다. 감기인 듯 감기 같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 지 하루, 이틀, 사흘하고 며칠이 지났다.


보통이면 어질어질 멀미하는 기분과 같이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팽그르르 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증상을 시작으로 콜록콜록 마른기침 몇 번 하면 ‘감기가 왔구나.’하고 돌려보낼 채비 한다.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땀을 흠뻑 흘리고 푹 자고 일어나 따뜻한 차 몇 잔을 마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멀쩡해야 하는데. 이번 감기는 예사롭지 않을 것 같다.     


‘몸을 따뜻하게 보해줄 시원하게 뜨끈한 국물이 필요한가? 그래 감기엔 따뜻한 국물이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스치고 지나간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냄비가 없다. 에고고 바지락을 넣고 끓여 놓았던 배추 시래깃국이 없다. 그제, 없던 입맛을 달래려 밥을 넣고 데워 꾸역꾸역 억지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딱! 먹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다시 포트에 물을 올리고 루이보스 차를 꺼내 티폿에 넣는다. 뜨거운 물 넣고 우려낸 루이보스 차를 한잔에 목안 간지러움이 사라진다. "역시  따뜻한 국물이 필요해."

식탁에 앉아 뭘 해 먹나 고민에 빠졌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기도 하고 건강관리도 하는 편이라 수많은 주위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려 고생하는 사이에서도 살아남았었다.

재작년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드는 축제에 참여해 부스 안에서 여러 사람과 스쳐 가면서도 멀쩡히 잘 버텼다. 행사를 마치고 커다란 고무 대야에 음식물이 꼬질꼬질하게 묻은 하얀 행주를 손빨래하고 삶고, 아이들 앞치마와 조리복까지 빨아 정리하고 나서,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고 쓰러져 잠자리에 들었다. 심상치 않은 증상에 ‘코로나 자가 키트’를 꺼내 검사를 했다. 역시 그냥 몸살이었다.


처음 감기를 심하게 앓았던 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가? 6학년이었던가? 머리가 깨질 듯 아파져 오고 토악질까지 하는 기침을 쿠울럭 꿱 꿱, 쿠울럭 꿱 꿱하며 바가지를 옆에 두고 이부자리에 누웠다가 일어났다가를 반복했었다. 그 와중에 “학교에 안 가도 된다.”라는 말을 듣고, 병결이라는 글자를 생활기록부에 넣었지만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왔었다.

출근도 안 하고 병원에 같이 가준 아빠가 감기로 병원에서 이따만한 주사가 내 엉덩이를 꾹 찔러 울고불고하는 나에게 군것질 종합세트를 품에 안겨준 것이 마냥 좋았었다. 동생들이 없는 집에서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땀이 난 내 머리를 쓸어주던 엄마 손길이 어찌나 좋았는지 계속 아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의 첫 감기.     


그때는 따뜻한 엄마 아빠의 손길이 있어 뜨끈한 국물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이젠 내 몸을 내가 관리해야 하는 처지에 오니 속을 달래줄 따뜻한 음식이 필요한가 보다.


‘그래 움직여야지.’

허리를 제쳐 펴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발바닥에 무게를 싣고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는데 팔이 흐느적거린다. 팔을 주무르고 손을 펴서 바라봤다.

‘더 아프면 너만 고생이다. 일단 먹고 힘을 내! 서진인 할 수 있어.’

몸에 힘을 주고 씩씩하게 걸어 주방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매생이를 꺼냈다. 흐르는 물에 담가 녹기를 기다렸다.

떡을 담가 놓는다.

매생이가 녹으려면 한 시간은 지나야 할 것 같아 얼른 따뜻한 이불에 들어가 누웠다.

집이 작아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너무 좋다.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알람이 울리는 걸 보니 1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녹은 매생이를 약수에 담가, 한 올 한 올 씻고 싶었지만, ‘얘야 이럴 땐 대충 해도 된단다.’라며 셀프 최면을 걸며 이물질이 없는지 확인만 하고 채반에 담아 옆에 놓았다.


탱글탱글한 굴도 소금을 푼 물에 넣어 살살 만져가며 혹시라도 굴 껍데기가 없는지 확인하고 휘리릭 살살 씻어 채반에 담아 놓았다.


매생이와 굴에 남은 물기가 빠지길 기다리며, 마늘을 찧고 다지고 파도 송송 썰어 놓았다.     


일단 냄비에 물을 붓고 찧고 다진 마늘을 넣는다.


물이 끓으면 조선간장과 젓국을 1대 1로 넣어 간을 한다. 일반적으로 간을 할 때보다 약간 심심한 맛을 내는 것이 주 포인트. 매생이와 굴에서 올라오는 짭조름한 맛에 대비해야 한다.


후추도 넣어주고 다시 끓기 시작하면 물을 뺀 떡을 넣은 다음 매생이 투하.


매생이를 살살 흩트려준다.     


매생이와 굴은 오래 끓이면 생생한 맛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맹 육수부터 끓여 시작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으며 바닷가에서 자란 우리 엄마가 내가 끓여준 매생이굴국이 맛이 있다고 인정해 준 뒤로 고수하고 있는 방법이다.    

 

또다시 끓어오르면 굴을 넣는다.


모든 재료가 들어간 국이 끓어오르면 마지막으로 파를 넣고 뚜껑을 닫아 뜸을 살짝 들인다.   

  

역시 나의 시간 개념, 밖에 차 소리가 나고 물이 벌컥 열리며 “언니, 나 왔어. 몸은 괜찮아?”라며 들어오는 동생.

“콧속이 답답해.”

그나저나 내 감기도 그렇지만 행여 동생에게 내 감기가 옮겨 갈까 걱정이다.

“대충 먹지 뭐 해?”

“매생이 굴 떡국. 따뜻한 국물이 땡기네.”

“언니도 나이 먹으니까 국물이 땡기는거야.”

“너는 30대 중반인데도 국물을 좋아하면서, 그럼 넌 전생을 기억하는 거야?”

“그런가? 매생잇국은 미운 사위 끓여주는 거라는데.”

“너 시집가면 안 끓여줘야겠네. 우리 두부 데려가는 분께 잘해줘야지.”    

 

그릇에 ‘매생이 굴 떡국’을 담고 참기름을 휘리릭 둘러서 후후 불어먹는다.

“언니 맛있어. 작년에 먹었던 ‘매생이 굴전’ 생각난다.” 비린 걸 좋아하지 않는 동생도 잘 먹으니 됐다.

“다음에 장 보러 가면 매생이 사 오자.”

뜨거움이 매생이 사이에 뭉쳐져 한 그릇을 비울 때까지 따뜻했던 ‘매생이 굴 떡국’이 내 감기를 녹여 주는 기분이다.     


그래 잘 먹고 올겨울도 아프지 말고 잘 이겨나가자.

내일은 또 뭘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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