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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an 07. 2024

겨우 금주 7일 차, 이 증상은 알코올중독?

못난 글

2023년 12월 31일, 마지막 맥주를 마시고, 남겨진 맥주가 담겨있던 캔을 찌그러트리며 ‘Arrivederci, See you’가 아닌 ‘Ciao, Good bye’를 외치고 뒤돌아섰다.

    

두부와 나에게 맥주란, 우리를 묶어준 끈이었다.


5년을 귀촌해 두부와 살면서, 처음부터 ‘하하 호호’하며 살았던 것은 아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전설에 따르면’이라고 할 만큼 오래 전은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5년이면 마을이 생기고, 5년이면 마을이 없어진다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두부와 길동이 그리고 나는 5년을 같이 살며 맥주라는 놈을 끼워줬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와 나의 17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평탄한 날을 만들어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네가 나에게 잘해야 할 이유는 없다.’라는 나와, ‘나보다 언니 나이가 많으니까 그녀에게 맞춰 살아가면 나에게 잘해주겠지.’라는 두부가 안고 시작된 부담스러운 우리의 동거는 순탄치 않았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네가 나에게 잘해야 할 이유는 없다.’라는 나.     

“네가 어리다고 해서 내가 너의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으니,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는 일만 하면 돼.”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나보다 언니가 나이가 많으니까.’라는 두부.

‘어린 내가 이 정도 맞췄으니, 나이 어린 나를 맞춰줘야 하잖아!’를 속으로만 외치며, 맞춰준 정도를 내가 갚아주지 않으면 짜증을 냈던 두부.     


서로의 견해가 같지 않다는 걸 설명을 해도 이해의 간격은 좁아지지 않았다.      


'맥주'와 밥이 될 수 있는 안주를 가운데 두고, 두부의 마음을 끄집어내어 그녀의 입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두부와 대판 싸우고 찬바람이 집안을 휘이익 어색 어색, 휘이잉 어색 어색 몰아치고 있을 때 마주하게 된 술자리.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부야, 네가 나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네게 내가 맞춰야 하는 것들이야. 네가 좋아하는 일이, 네가 싫어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고 싫은 일이 될 수는 없는 거야.”

“난, 언니니까 뭐라도 해주려고, 사람들은 그러면 좋아하니까.”

“언니라고 맞춰줄 필요는 없어. 너도 나이 30이 넘었고, 결혼도 했었고, 우린 둘 다 어른이잖아.”

“사람들은 맞춰줘야 좋아하잖아?”

“두부야, 언니가 ‘넌 뭘 좋아해?’라고 물어보거나 ‘넌 뭘 싫어해?’라고 물어보면 너는 대답을 안 하지. 왜 말하지 않아?”

“물어봐야 알아? 어떻게 내 입으로 이건 싫고, 이건 좋아라고 말해?”

“응, 물어봐야 알아. 물어보지 않으면 상대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떻게 알지? 모르는데 어떻게 잘해줘? 그리고 말을 해야 알지 않겠어?”

“꼭 말을 해야 아는 건 아니잖아.”

“말을 안 하면 어찌 알아? 나도 가끔 날 모르겠는데. 내 배 속으로 낳은 울 아들 마음도 다 모르는데.”라는 남들이 보면 ‘나이를 먹고 뭐 하는 짓이야. 쯧쯧’ 혀를 차며 ‘눈치껏 대충 살면 되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 너랑 5년을 산 길동이 마음은 다 알아? 너 가끔 길동이 보면 답답하지?”

“길동이는 개잖아.”

“말을 안 해서 답답한 거야. 대화가 안 되니까. 우리는 사람 하자.” 맥주를 한 모금, 때로는 답답함에 벌컥벌컥 들이키며 지냈다.

지지고 볶던 우리의 생활에 점점 평화가 찾아왔고, 요즘은 살면서 가장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다고 맥주를 마시며 그녀는 이야기한다.    

 

장장 5년을 우리가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 숨을 쉬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생활에 걸림돌 되는 것들을 하나씩 치워 나가는데, 일조를 한 것이 ‘맥주’다.     

그런 ‘맥주’에게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이별을 통보했다.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입속에서 꺼내기 껄끄러운 내용의 말을 꺼내도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우리를 보며, 맥주 없이도 대화가 가능한 날이 왔다는 걸 알았다.

정말 5년이면 세상이 변하기는 하나보다.

    

그런데 문제는... 뭔가 허전하다.

금주라고 거창하게 말할 일은 아니지만, 겨우 7일이 지났는데, 뭔가 일을 빼먹고 지나간 것 같은 이 야릇한 기분은 뭘까?

사실 적어도 일주에 두서너 번씩은 상을 차려 맥주를 마셨으니. 그렇다면 한두 번은 마셨을 맥주를 걸렀다는 건데. 이렇게까지 허전할 수 있을까?

혹시! 알코올중독!     


다시 생각해 보자.     

그래 난 술로 대접을 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왔다.

술을 먹을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수많은 사람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하면서 본사에서 아니면 손님이 오거나 식사를 해야 할 때도 맥주, 소주, 막걸리, 동동주, 위스키, 코냑, 고량주, 와인 등 셀 수도 없는 종류의 술을 마셨었다.     


요리를 시작하고 음식과 궁합이 맞는 우리나라 전통 술을 비롯한 와인 등 술 공부하며 주량이 늘어났고, 소주 한잔이면 얼굴이 벌게지고 정신을 못 차리는 나의 식구들과는 달리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알코올이라는 종류의 각종 주류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인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한잔하지?”라는 말에 나는 “No.”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직업 특성상 주방에서 일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카페가 문을 닫는 시간에 퇴근해 직원들과 갈 수 있는 곳이라곤 술집이 전부였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럼 당연한 듯 맥주잔을 기울이게 됐고 그것은 습관으로 리 잡았다.

뜨겁던 주방에서 힘든 일을 끝내고 나서면 생각나는 ‘시원한 맥주’.

그렇게 25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 나는 힘든 날이면 ‘맥주’를 떠올린다.

‘맥주’는 나에게 보상과 같은 존재였던 거다.

그래 난 ‘맥주’ 의존증이다.  

   

잠시 앉아 맥주잔을 바라보았다.

‘맥주’를 보상의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가끔 만나면 반가운 친구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 결심했어. ‘맥주’와 친구로 지내보자.    

 

“맥주, 다음엔 시간 약속하고 즐겁게 만나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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