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은 강남역, 화실은 압구정! 나 노났네, 노났어
서울
환하고 화려한 불빛 아래 빨주노초파남보 하늘에 떠 있는 무개 사이에 나타나는 빛깔보다 더 블링블링하게 진열되어 있는 사탕이며 과자이며 이름도 알 수 없는 간식거리가 늘어서 있었다.
저것은 무슨 빵인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빵들이 늘어서 있었고, 한입씩 먹어보라 권하는 점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특별한 날이나 집에 오던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란 매론, 바나나, 파인애플 그리고 이름 모를 열대과일들이 놓여있었다. ‘나 예쁘지. 맛있게 생겼지? 날 데려가 봐.’라며 우아한 자태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여기에 있는 사과나 배도 특별하고 맛있을 것처럼 보였다.
정신을 잃고 두리번거리다 나타난 푸드코트, 처음 보는 음식들이 늘어져있었다.
“엄마, 여기는 어뎌?”
“압구정 현대 백화점.”
여기가 말로만 듣고 엄마가 보는 여성중앙, 여성동아, 엘레강스, 레이디 경향 같은 잡지나 엘르나 마리끌레르 그리고 쉬즈에서 보던 그 백화점.
내가 그... 잡지에서나 보던 옷들을 팔고 연예인이나 부잣집 사모님들이 온다는 그 백화점 안에 있었다.
“우리 여기서 뭐 하는데.”
“아빠가 밥 먹고 가제.”
아빠는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여기다. 언능 와.”라며 손을 흔들며 우리를 불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벽에 붙은 글자를 읽어나갔다. ‘버버리’ 내가 아는 유일한 명품이 쓰여있었다.
“엄마, 여기 봐봐. 되게 비싼 가방 파는 데도 있네. 구경 가도 돼?”
“밥 먹고 생각해 보게.”
그리고 눈에 들어온 한 문구 ‘여성 캐주얼’ 분명 저곳엔 내가 좋아하는 청바지 브랜드가 있을 거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식당가로 들어섰다. 여기는 아래층과는 다르다. 왠지 엄마와 수다를 떨면 사람들이 쳐다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두리번거리는 게 들통나지 않게 눈동자를 슬며시 옮기고 고개를 살살 움직여 다른 곳을 쳐다보는 듯, 조용히 다리를 움직여 아빠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빠가 불고기 정식을 시켰다.
깔끔하고 다소곳해 보이는 유기그릇에 담겨 나오는 울긋불긋한 음식들이 너무 예뻤다. 높은 화로 같은 유기그릇에 불고기가 올라갔다. 식당에서 일하는 언니가 손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가며 고기를 구워 아빠 그릇에 놓아드리고 엄마 그리고 내 그릇에 올려주더니 인사하고 테이블에서 멀어져 갔다.
“어서 먹어. 아빠가 우리 딸 덕에 여기도 와보네.”
중학교 때 처음 가봤던 서울 큰집, 방학이면 큰 언니랑 명동에 있는 백화점 근처에서 놀았었고, 그러고 보니 전에는 부모님과 롯데 백화점을 갔었구나.
식사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버버리’ 구경하러 가고 싶다는 말은 못 하고 어색한 몸동작과 눈을 동글 거리며 있는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문 쪽으로 눈을 가까이 들이대고 쳐다봤는데 ‘옷’이다. 그것도 예쁜 옷이 걸려있는 층이었다.
아빠가 성큼성큼 엘리베이터에서 나간다. 엄마도 따라 내린다. 나도 얼른 따라 내려 앞으로 나섰다.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둘이 갔다 와.”라며 쇼핑을 싫어하는 아버지가 엘리베이터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지갑을 꺼내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요런 것도 예쁘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 나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같은 거 말고.”
난 두리번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엄마 저거.”
“저긴 뭐야?”
“저기 청바지 파는데.”
“너 청바지만 사도 되겠어?”
우리 엄마는 아빠와는 사뭇 다르다.
어려서 서당까지 다녀봤다는 고지식한 아빠와 살다 보니 속에 심어둔 숨통을 나를 통해 발산하는 듯 보일 때도 있었다. 특히 옷에 대해서는 더욱더 관대하다.
내가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끝나자마자 엄마는 나에게 구두를 사줬다. 어른들이 입고 다니는 브랜드에서 한 겨울에 가죽 치마와 짧은 미니스커트 정장을 사준 엄마였다.
그러나 신여성이 되고 싶지만, 마음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고지식한 남편의 아내였다.
난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는 구경을 못 했지만, 게스와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에서 청 원피스와 청바지, 셔츠에 점퍼 그리고 로퍼까지 사고, 리복에서 운동화와 티셔츠, 트레이닝복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들고 아빠에게 갔다.
왜 이렇게 늦었냐는 아빠의 큰소리가 차 안에서까지 이어졌지만 나쁘지 않았다.
백화점을 출발해 얼마 가지 않은 곳에 차를 멈추었다.
아빠, 엄마와 계단을 올라갔다.
화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원장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네가 서진이구나.”
“안녕하세요.”
“전공이 디자인이라고 했나.”
“네 맞아요. 디자인.”
“그럼 월요일부터 시작할까요? 아니면 오늘부터 시작할까요?”
엄마와 아빠가 날 바라보았다.
“월요일이요.” 나는 얼른 나서서 먼저 의견을 내밀었다.
“오는 길도 모르고 가는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라며 불쌍한 얼굴로 아빠와 엄마를 바라봤다.
“선생님이 알려줄 수 있는데. 오늘은 내가 데려다줘도 되고.”
큰일이다. 첫날부터 저 네모난 안경 쓰고 삐쩍 마른 원장선생님이 마음에 안 든다.
난 엄마의 손을 꼭 쥐고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그럼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거다.”라며 아빠가 단호히 말해줬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후다닥 하고 뛰어 내려왔다.
아빠, 엄마와 차를 타고 하숙집으로 가는 길...
“엄마 저거. 저거 압구정 맥도널드네.”
"엄마, 엄마, 저기 갤러리아 백화점."
엄마는 가는 길 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손을 꼭 잡고 웃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알까?
나를 데리다 놓은 강남역과 압구정이 20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 공간이라는 걸.
'사진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