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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엔 스트레스가 상극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넣은 빨간 맛 푸실리 오일 파스타

by 서진

이른 아침 따뜻한 물 한잔.

이불을 정리하고, 기지개를 켜고 슬금슬금 몸을 움직여 줍니다.

이 닦고 세수를 합니다.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고민하지요. 먹고 이를 닦을 걸 그랬나….

하기야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사과보다 먹기 좋게 식은 사과가 편하니 깨끗이 닦아 식탁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포트에 물을 담고 끓입니다.


차가 들어있는 통들 앞에 서서 고민합니다. 오늘은 무슨 차가 좋을까? 보이차, 오룡차, 홍차, 백차, 철관음, 차 통을 열어 상태를 확인합니다. 아무거나 집어 꺼내 찻주전자에 넣으면 될 것을 괜한 시간 낭비를 하는 건 아닌지.


결국, 차 통을 정리하고 향을 피웁니다.

물이 다 끓었습니다.

결정해야지요.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 백차를 손으로 잘라 찻주전자에 담습니다. 물을 부어 잠시 눈을 감고 숫자를 셉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질 급한 내 손이 찻주전자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할 것이 뻔하니까요.


잔에 담아 한 모금 마셔 봅니다.

기분이 좋네요.

차 한 주전자를 다 마셨더니 사과가 뱃속에 들어갈까 걱정이 앞섭니다.

사과를 잘라 하나, 둘, 셋 먹다 보니 마지막 조각을 들고 있습니다. 역시 잘 먹는 나입니다. 사과 한 알 정도는 거뜬한 뱃속인데 괜한 걱정을. 성격, 어디 안 가네요.


매일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요. 하지만 오늘은 집안에서 종일 뒹굴뒹굴할 작정입니다.


습관적으로 손으로 무엇이든 만지작거려야 직성이 풀리는데,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책장을 만지작거려 봅니다. 안 읽고 어딘가에 올려놓은 것이 있을 것인데….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잃어버리고 두었던 책을 찾는 중입니다. 요기하나 있네요. 그래도 반은 읽고 올려두었군요. 그래도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역시나 손을 가만히 두질 않습니다.



이렇게 파닥파닥 움직이는 제가 5년 동안 13kg 정도 찌었더랬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1년 만에 11kg이 빠졌습니다.

뭐…. 특별히 이렇다 하게 다이어트를 하진 않았는데.


생각을 해보자면.

5년, 13kg 찌는 동안 지금보다 더 먹었나?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잘 먹어요.

지금보다 덜 움직였나?

오히려 지금이 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텃밭 만든다고 온몸을 대굴대굴 굴러가며 축을 쌓기에는 조금 덜 되는 돌을 주워 텃밭주위를 감싸주었습니다.

호환 마마 그리고 전쟁보다 무섭다는 중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쳤지요.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군일도 돕고, 그들과 자주 싸우기도 했지요.

장거리 출장은 어찌나 많았던지.

손에 쥔 것 없이 오지게 바빴습니다.

밤이면 다리를 질질 끌고 쭈구렁쭈구렁 할머니가 된 느낌이었어요.


그렇다면 지금에 비해 바빴던 그 5년, 살이 더 많이 빠졌어야 했는데...


작년, 봄이 다가올 무렵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담당 선생님과 상의 끝에 요리 수업을 닫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나의 몸통에 돌돌 감고 두 손에 단단히 쥐고 있던 아이들과의 끈을 놓았습니다.

요리 수업만 기다리며 쫑알대던 아이들의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서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미련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죠.

아이들에게 요리반이 폐쇄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나쁜 일은 쓰나미처럼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다발로 온다더니 진짜더라고요.


귀촌하고 오래오래 같이 살자던 동생과도 헤어져 살아야 할 날이 오고야 말았지요.

시골집에 늘어져 있던 나의 자리를 정리하며 혹시라도 내가 없으면 동생이 허전할까 싶어 조금 남겨 놓고 나왔어요. 그래도 같이 산 세월이 있는데 가끔은 들러봐야 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돌아갈 작업실에 쌓인 먼지를 치우고 풀지 못한 짐들을 하나씩 꺼내 제자리에 두었어요.

그리고 가방 하나 들고 차에 올라 남해 해안 길을 무작정 내달렸습니다.


목포에서 출발해 동해에 도착.

이렇게까지 멀리 가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가다 보니 그냥 가더라고요.

여행 철이 아니라 길도 한산하고 가다가 들른 민박집이나 펜션은 저렴하게 나와 있어 금전적 부담도 덜어서일까. 밥도 해 먹고 도시락도 싸서 마음에 드는 곳에 차를 멈추고 쉬엄쉬엄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생각도, 같이 살던 동생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렇다고 외롭다거나 누군가 보고 싶다는 마음의 허전함도 없더군요.


어느 등대 공원 밴치에 앉아,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를 보던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우울증!’

친구에게 전화하고 동해에서 서울로 달렸습니다.


“나 우울증?”

친구 왈 “우울증인 사람은 자기가 우울증이냐고 안 물어본다더라. 내가 더 우울해. 나 혹시 우울증?”

내가 살이 찌는 동안 힘겨운 일이 많았던 친구의 얼굴을 가만히 훑어보았습니다.

“너 우울증 아님. 그냥 네 뜻대로 되지 않아 화난 거 같음.”

친구가 웃더니 “네 얘기를 왜 나한테 해”하고 웃습디다.


34일을 친구가 랜트해 준 Air B&B에서 지내고, 떠나기 전날 “나 내일 내려간다.”라는 아쉬운 말을 전했습니다.

"끝나고 한잔?"

"OK"

친구 카페 냉장고 구석에서 곰삭은 김치를 꺼내 들고 숙소에 왔습니다. 김치는 물에 씻어 적당한 크기로 잘라 냄비에 넣었습니다. 마트에서 사 온 돼지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고 각종 양념이 없어 후추를 치고 청양고추를 잘게 다져 넣은 후 낮은 불에서 천천히 볶았지요. 두 재료에서 맛을 끌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다음, 팩 끝부분을 잘라 친구가 좋아하는 사골국물을 부어 은근히 끓여 술안주를 만들었습니다.


“후추만 넣고?”

“사골국물이 짜. 물 조금 넣었어.”

“내려가면 뭐 할 거야?”

“취직하려고, 암 생각도 안 하고 시키는 일만 하려고.”


친구는 가끔 그때 먹었던 김치찌개 생각이 난다고 말합니다.


취업 준비하고 출근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6시 전에 일어나 항상 마시던 시원한 물이 아닌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시고, 씻고 얼굴에 스킨로션을 발라준 뒤, 자른 사과 한쪽이라도 입에 물려줍니다. 출근하면 시작되던 선배들의 텃세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받았던 스트레스에 비하면 별거 아니더라고요.

그저 일하고 퇴근하고 밥을 차려 먹고, 자기 전에 요래 저래 몸을 뒤틀어 요가와 스트레칭이 짬뽕된 자세로 뒤뚱거리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렇고 그렇게 지내던 언젠가부터 “요즘 얼굴이 피네. 뽀얘지고.”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지요.

그저 인사겠지 ‘이 나이에 얼굴이 피면 얼마나 피고, 원래 타고나기를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내가 뽀얘지면 얼마나 뽀얘지겠어.’라며 흘려들었습니다. 그러다 혹시나 하고 행하는 도전! 작아서 못 입었던 옷을 몸에 끼워 넣었는데 쑥쑥 들어가더군요. 얼른 체중계에 몸을 올렸지요.


오. 마. 나.

70kg을 향해가던 제 몸무게가 59kg까지 내려와 있는 겁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56~57kg을 유지하려 애쓰는 중입니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면 산천에서 텃밭 가꾸고 아이들 가르치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을 겝니다. 하지만 속을 뒤집어 보자면 몇십 년을 개인으로 살다가 거의 20년 차이나는 사람 둘이서 한집에서 살았으니 좋은 날보다 의견대립이 많았던 날이 많았지요.

나날이 일취월장하는 아이들 요리 실력에 감탄하는 횟수는 늘어가지만, 예산은 풍족하지 않고 선생님들의 무관심에 힘들었었지요.


돌이켜보면 몸의 힘듦보다 마음의 힘듦이 저를 더 힘들게 했는 듯합니다.


역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인가 봐요.


아무튼, 지금은 제가 밥을 꼭 챙겨줘야 할 사람이 없어 혼자서 편안히 찬거리 걱정 없이, 매 끼니를 나의 몸과 생활 패턴에 맞게 만들고 섭취합니다, 거기다 빨래 더미가 줄어 매일 빨래를 안 해도 되고, '혼자 늘어놔봐야.'라고 늘 생각하지만 주방에 있는 시간이 많아 청소는 이틀에 한 번. 돌봐주고 산책시킬 강아지도 고양이도 없어요.


누가 옆에서 험담하거나 의견이 안 맞으면 맞설 만도 한데, 이젠 별일 아닌 것에 힘들어하는 그들을 안쓰러워 "아, 그랬어요. 미안해요. 괜찮을 거예요."라고 답합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살들이 심심했는지 어느 순간 떠나고 보이지 않더이다. 다이어트 비스름한 것을 해도, 온몸을 굴려 땀을 빼도 아랑곳하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마음이 가벼워지니 몸이 가벼워지고 얼굴에 밝은 색이 돌아오면서 이젠 사람들이 이뻐졌다고 하나 봐요.

호호호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니었는데, 어찌 그리 버둥거렸는지.


아쉽게도 아직 뱃살이 남아있지만 요 부위는 운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집에서 조금 더 요가인지 스트레칭인지 모를 나만의 몸부림을 더 해보다, 안되면 남의 손을 빌리려 합니다. 생각 같아선 복싱이나 검도, 태권도, 뭐 이런 격투기 같은 걸 배우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서.

휴~


생각이 많았나 봅니다.

뱃속에서 꾸룩 꼬르륵 소리가. 배가 고프네요.


오늘은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넣은 빨간 맛 푸실리 오일 파스타'를.


. 짭조름하게 소금을 넣고 끓인 물에 푸실리를 삶아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탄력이 있는 상태의 파스타로 삶는 걸 좋아하지만 제 주위 분들은 조금 더 삶는 것을 원하더군요. 그렇다면 푸실리가 휘청거리도록 삶아주세요.

(새송이를 푸실리 크기보다 조금 크게 자릅니다. 볶으면 푸실리보다 작아집니다.)

. 주황색 파프리카는 반으로 갈라 씨와 꼭지를 제거한 후 씻어 물기를 제거합니다. 푸실리 크기로 잘라주세요.

. 빨갛게 익은 토마토도 씻어 물기 제거 후 네 조각으로 자릅니다. 꼭지 쪽 하얀 부분은 잘라 버려 주세요. 새송이 두 배 정도로 자릅니다.

. 마늘은 편으로 썰어 놓습니다.

. 양파는 껍질을 까고 씻어 물기를 제거한 뒤 마늘 편과 같은 크기로 잘라줍니다.

- 달군 팬에 먼저 새송이를 볶아주세요. 노릇노릇하게 볶아지면 새송이 담겨있던 그릇에 담아줍니다.

(개인적으로 약간 갈색이 나오도록 센 불에서 볶아 고소한 맛이 나는 상태를 좋아해서 따로 볶아냅니다. 마늘이나 양파와 같이 볶으면 타버립니다.)

- 약불로 줄여 팬을 올립니다. 뜨겁지 않은 온도에서 먼저 마늘 편을 그다음엔 양파를 넣고 투명해지고 달큼한 향이 날 때까지 볶습니다.

- 불을 센 불로 올려서 볶은 새송이와 파프리카를 넣고 팬을 돌려줍니다. 아니 팬 안에 들어있는 재료가 뒤섞일 수 있게 팬을 움직여 줍니다. 아니면 나무스푼이나 뒤집게 숟가락 같은 도구로 뒤적여 잘 섞어줍니다.

- 후추를 넣어줍니다.

(페페론치노를 넣거나 칠리 플레이크, 핫 파프리카 가루를 넣어 매운맛을 주어도 좋습니다.)

- 파프리카가 서너 번 뒤적여진 팬에 토마토를 넣어 섞어줍니다. 그리고 나무스푼으로 토마토를 눌렀을 때 으깨지만 중간 불로 줄이고 익은 푸실리를 건져 팬에 넣어줍니다. 그리고 푸실리 삶은 면수 두어 숟가락 넣습니다. (만약 토마토의 육즙이 많다면 면수는 안 넣어도 됩니다.)

- 면수가 짭짤하고 토마토가 잘 조려졌으면 소금은 넣지 않아도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싱겁다면 소금을 넣어주세요. (간은 본인 입맛에 맞게.)

- 단단한 토마토라면 파프리카를 넣기 전에 먼저 볶아 주세요.

- 저는 토마토 씨 부분을 빼지 않지만 신맛이 싫으시다면 빼고 하셔도 됩니다.

-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치즈 올리고 엑스트라올리브 오일 넣어 토마토 즙과 잘 섞이도록 뒤적여 줍니다.


쥬시한 빨간 맛 푸실리 파스타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녁엔 간단한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입맛 돋우는 토마토, 달걀 볶음에 주황 파프리카를 추가해 먹을 작정입니다.



아~ 오늘은 따뜻한 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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