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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단백질 요리

홍합 & 순두부

by 서진

오랜만에 맑은 날이다.


나는 빨래를 돌려놓고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굳이 친구와 약속이 있어 나가려는 것은 아니나, 일주일이 넘도록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엔 멀건 하늘과 센 바람이 밖을 떡하니 버티고 있어 나가기 싫었었다.

차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았다.

시동을 켜고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와 좌회전, 우회전, 직진 그리고 라운드 바를 돌아 큰길이 보이는 도로에 섰다.

우회전? 좌회전?


조수석에 놓인 빨간 시장바구니.

분명 나의 손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버릇처럼 장바구니를 가지고 나왔을 것이다.

‘그래, 결정했어!’라 다짐하고 좌회전.


내가 사는 곳에서 빠르면 3~40분쯤 걸리는 곳에 강진군에 있는 로컬 마트로 결정했다.

겨우, 머리까지 감고 얼굴에 연지곤지 바르고 가는 곳이 로컬상점이라 해서 어이없다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산촌에서 갈 수 있는 쇼핑센터는 읍 중심가에 있는 공구백화점, 종합식자재마트, 하나로마트 그 외 로컬상점 정도이다.


‘그렇다고 옆 마을까지 간다고.’

내가 사는 시골 로컬상점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우리 군엔 미안하지만, 강진 로컬 마트에 가면 손두부를 판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콩 요리.

김치찌개보다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콩이 들어간 밥, 콩 조림, 콩국수, 콩가루가 들어간 나물, 비지찌개, 각종 두부류, 콩이 들어간 떡, 콩 샐러드 등, 깨보다 동부가 든 송편이 좋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화창한 날, 안 갈 이유가 없다.

뻥 뚫린 4차선 도로도 있지만 난 동네 동네를 지나 빨리 가지 않아도 되는 꼬불꼬불 길을 선택했다.

차창을 내리고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푸르른 길을 지나간다. 가끔 지나가는 차들이 나를 추월할 때면 속도를 확인하고, 조급할 것 없는 나는 적정속도를 지켜가며 너른 하늘과 맞닿은 세상을 바라보며 가고 있다.


아무런 잡생각 없이 가고 또 가다 보니, 오랜만에 강진 ‘백운동 정원’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나의 뇌를 간지럽혔으나, 집에 돌려놓은 빨래를 따뜻한 햇볕에 널고 싶다는 마음이 이겨 버렸다.

마트에 들어섰다.

우선, 순두부를 사겠다는 일념으로 카트를 끌고 두부 판매대 앞에 다다르는데, 저기 보인다.

순. 두. 부.

‘아, 품절이 아니다.’ 일찍 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순두부를 쓰러지지 않게 잘 세워두고 두부도 한모 집어 들었다. 여러 개 사서 가면 좋겠지만, 지역에서 소량으로 생산하는 손두부라 그런지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아 짧은 시간 안에 먹을 수 있을 만큼만 구매하는 편이다.


이제 여유롭게 전통 먹을거리 코너를 돌고 돌아, 카트에 대파, 표고버섯, 상추, 오이, 파프리카, 마지막으로 완두콩을 담고 과일 판매대에서 참외와 사과를 한 봉투씩 담아 카트에 담았다. 수박을 사면 좋으련만 저 큰 수박 하나를 다 먹을 자신이 없어 멀뚱멀뚱 바라만 보다 수산물 코너로 발을 돌렸다.

원래 갑오징어만 사서 올 생각이었지만 조개 코너에 있는 홍합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 오늘은 손이 가는 대로 사지 뭐.’라며 제철인 갑오징어만 구매해야 하거늘 겨울이 제철인 홍합을, 산란기라 씨알도 작을 터라는 생각을 접었다.


‘괜찮아, 괜찮아, 홍합 하나 정도 더 산다고 아무 일 없어. 열량 적지, 지방 적지, 단백질은 많지, 칼륨이 많아 갱년기 여성들에게 좋지.’

‘내 몸에서 타우린을 원하나.’

철 지난 홍합 한 팩을 사면서 오만가지의 생각에 빠진 내가 우습다.

갑오징어 한 팩, 홍합 한 팩을 카트에 담고 얼마 동안 마트 안을 돌아다녔는지.

내 머릿속은 온통, ‘이럴 줄 알았으면 토마토소스를 냉동실에서 꺼내 녹여 놓고 나올 걸 그랬나?’, ‘이왕 대파를 샀으니 대파 흰 부분만 넣고 만들까?’, ‘아니면 채수를 내어 끓여 먹을까?’, ‘홍합 파스타를 만들까?’, ‘홍합을 삶아 조갯살만 발라 수제비를 끓일까?’ 온통 홍합요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내 머리에 가득했다.


홍합 본연의 맛만 보자.

‘대파 당첨!’을 외치며 빠른 걸음으로 계산대로 향했다.


자~ 이제 집으로 출발.

과속방지턱을 살짝 넘는데 장바구니에 담긴 기다란 대파가 쓰러져 장바구니가 넘어졌다. 음료수병이 데구루루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뭔가 찜찜한 이 느낌!

두루마리 화장지를 사지 않았다. 집에 서너 두루마리 남았는데….

다른 건 안 사도 꼭 사야 하는 물건인데, 두부보다 먼저 카트에 담았어야 했는데.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집 앞 슈퍼에 들려 가야겠다.

집에 들어와 재빠르게 홍합과 대파 그리고 순두부는 싱크대에 나머지 음식 재료는 냉장고와 베란다 바구니에 넣는다.

세면대에서 깨끗이 손을 닦는다.

장갑을 낀다.


홍합에 묻은 이물질과 족사 제거 후 깨끗이 씻는다.

커다란 볼에 물을 담고 소금을 넣어 풀어준다. '짭짭한 맛이 나나요?' ‘네.’

홍합을 볼에 넣고 쟁반 같은 것으로 볼을 덮어준다.

그리고 혹시 모를 이물질이 홍합이 뱉어낼 때까지 기다린다.


대파, 색이 변한 줄기 끝부분은 제거하고 몸통과 줄기를 구분에 나누어 씻어 놓는다.

마늘, 딱딱한 꼭지 부분을 제거하고 씻어 놓는다.

양파, 노란 껍질을 제거하고 씻어 놓는다.


...


기다리려니 벌써 손가락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빨래가 다되었다고 세탁기도 울고 전화기도 울어댄다. 깨끗하게 삶아진 빨래를 쫙쫙 펴서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으니 보기 좋다.

거실로 들어온다.

꼼지락대는 손가락을 서로 맞잡고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포트에 물을 끓인다.

차를 한잔 마신다.

읽다 만 책을 뒤적거린다.


오마나! 벌써 1시간이 지나버렸네.



Impepata di Cozze

홍합요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요리 중 하나다.

이번 요리는 대파를 이용해 만드는 ‘홍합요리’다.

‘릭, leek’이라는 서양 대파, 우리나라 대파 몸통 같은 것을 반으로 가르고 총총총 가늘게 썰어 요리하는데, 릭이 없으니 대파로 대체.


- 해감 된 홍합을 두어 번 헹궈 채반에 담아 놓는다.

- 마늘, 편으로 썰어 놓는다.

- 양파, 마늘과 같은 크기로 썰어준다.

- 대파, 몸통 부분만 사용한다.

- 높이가 있는 팬을 준비한다. = 바닥 두께가 제법 있는 소스 팬 선택.

따뜻하게 달궈진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른다. (올리브 오일과 버터를 반반 썩어 요리하는 분들도 많고, 올리브 오일로 시작해 마지막에 버터를 넣어주는 사람도 있다.)

먼저 마늘을 볶고 그다음 양파 그리고 썰어 놓은 대파를 넣고 뭉근해질 때까지 약한 불에서 천천히 볶아준다. (그래 봐야 몇 분 걸리지 않는다.)

- 센 불로 올려 홍합을 넣는다. 재빨리 뒤적여준다.

- 화이트와인을 뿌려 뒤적인다. 알코올향이 날아가면 뚜껑을 닫아준다.

(화이트 와인이 없으면 맥주를 넣어주어도 괜찮다.)

(토마토소스를 넣어 끓이기도 한다. 생토마토를 넣을 때는 잘 익은 토마토를 선택해 잘게 썰 어 대파가 어느 정도 물러질 때 넣어 홍합을 넣기 전까지 볶아준다.)

- 홍합 입이 다 열렸다면, 후추와 말려놓은 딜을 넣고 한 번 더 뒤적여 준다.

- 그릇에 담는다.

소금 간은 하지 않았다.

조개에서 나오는 나트륨과 만들어진 소스에서 나오는 진한 맛이 나에겐 소금 간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


홍합을 건져내고 남은 소스로 파스타를 만들 계획.


홍합.뾰고버섯 파스타




순두부



- 바닥이 두꺼운 팬을 꺼내 순두부를 담고 물을 조금 부어준다.

- 이미 간수가 되어있어 소금을 더 넣지 않아도 된다.

- 약불로 서서히 끓여준다. 센 불로 끓이다 보면 순두부에 있는 수분이 분리되어 두부처럼 단단해질 수 있으니 꼭 약한 불로 끓이길 권장한다.

- 그릇에 담는다.

깨를 갈아 넣으면 고소한 맛을 더하겠지만 이번엔 순두부 맛만 보기로.


너무너무 간단한 한 끼 거리, 다른 식물에 비해 콩은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높아 나에겐 한 끼 식사로 안성맞춤이다.

오죽하면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 하겠는가.


남은 순두부로 계란찜을 할 계획이다.


순두부가 들어간 계란찜


어라! 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 밥상은 흑. 백 요리가 되어버렸다.


결국 두루마리 화장지는 안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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