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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친구에게 찾아온 급성 당뇨. 나라고 안 올까

성인병 Adult disease과 생활습관병 Lifestyle disea

by 서진

정확히 한 달 전, 대낮에 사진 한 장이 왔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엉클어진 머리에 잠옷을 입고 앉아 찍은 사진. 딱 봐도 피곤에 지쳐 늦잠 잔 얼굴.

‘뭐야 이 녀석. 가게 문도 안 열고 이제 일어난 거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라는 부호를 전송하고 전화기를 툭 던져 놓았다.

녀석에게선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씻고 출근하느라 바쁘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전화가 울렸다.

“나.”

“응.”

“넌 내가 사진을 보냈는데 걱정도 안 돼?”

“늦게까지 푹 잤다고 자랑한 사진?”

“나 병원인데. 너만 전화 안 해.”


나는 순간 놀랬다. 안 그래도 1년이 넘게 계속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였다. 난 친구에게 병원에 가기를 권했지만, 병원에선 별다른 증상이 없다는 소견만 받았을 뿐이라며 잠을 푹 못 자서 그런 것 같다고 ‘자고 싶어.’ 자주 투덜댔다.

사진을 잘 들여다볼 걸 그랬나.


“집 아니고? 오랜만에 늦잠 잤다고 자랑하는 줄.”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왔는데 입원하라네.”

“왜?”

“급성 당뇨래.”

‘너 내가 우리 갱년기라고 건강관리 잘해야 한다고 했지! 살을 좀 빼라고. 어쩐지 한동안 친구들하고 술 마시고, 그 시간에 들어가서 잠을 자야지. 계속 봉지에 든 음식들만 데워 먹었던 거야! 좀 귀찮아도 집에서 반찬이랑 냉동 밥이라도 가져다 두고 먹으라니까. 야채도 씻어 냉장고에 넣어놓고….’라는 잔소리를 늘어놓아야 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갑자기? 얼마 전 병원 갔을 때 별소리 없었잖아. 그래서 머리가 아팠던 거야?”

“눈도 잘 안 보이고 도저히 서서 걸어가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왔지.”

“그래도 걸어갔네. 의사가 뭐래? 심각해?”

“나 인슐린 주사 맞아. 급성 당뇨래. 그런데 원인이 뭔지 잘 모르겠나 봐.”

“살 빼! 밥 잘 먹고. 병원에서 주는 밥 맛없다고 거르지 말고 다 먹어. 당뇨식 주지?”

“알았어. 그만. 그만~.”

그때야 제정신이 들었다. 아픈 사람한테 내가 지금 뭐라고 하고 있는 거야.


의학지식이 전무후무한 나도 약이 아닌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는 것은 심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다시 잔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몸이 안 좋으면 집에 일찍 들어가서 자라고 했지. 가게에서 꾸벅꾸벅 졸지 말고.”라고 걱정을 잔소리로 시작해 한참 주절주절 댔던 것 같았다.

아내가 저지른 외도와 그녀가 한눈을 파는 사이 벌어진 사업의 위기와 맞물려 다가온 코로나. 점점 사업은 파란을 겪고, 입시생 아이의 뒤치다꺼리와 어린아이의 돌봄까지 맡아보고 있었다. 몇 년간의 이혼 공방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버렸던 녀석.

지쳐버린 녀석은 결국 아내가 저지른 빚을 떠맡기로 하고 서류에 사인했다. 그리고 같이 살았던 집을 정리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난 “잘했다. 같이 살던 집에 있으면 짜증 나잖아. 부모님이랑 잘 지내. 엄마가 해주는 맛난 밥도 먹고.” 나도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중년이 넘어 장년기로 가고 있는 나이에 좋건 안 좋건 부모님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으니.

이 녀석도 그랬다. 주절이주절이 떠든다고 해서 아는 건 아니지만 아픈 마음을 안고 들어 온 아들을 모르지 않았을 부모님과 산다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그 후 난 이삼일에 한 번씩 그 녀석이 살아있는지, 당뇨가 심해지지는 않았는지, 다른 증상은 없는지 확인했다.


녀석이 퇴원하던 날,

“주사는? 주사는 계속 맞아야 한대? 이유는 뭐래?”

“그냥, 살 빼래. 커피는 하루에 한잔. 잠 잘 자고. 그리고 스트레스받지 말라는데 그게 되나. 좀 있음 오픈해야 하는 카페 작업도 나 때문에 잠시 멈췄고. 퇴원하고 카페에 들러봐야 해. 재료도 체크하고…. 엉망일 거야.”

난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너라도 서울에 살면 좋겠지만 어쩌겠어.”라더니 퇴원 수속해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스트레스로 병이 왔다 해도, 모든 걸 버리고 TV 속 자연인처럼 살 거야 라는 용기 있는 말은 나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몸은 어때? 주사는 잘 맞고 있는 거지. 아침밥은 챙겨 먹었고? 짠 건 안 돼. 커피는 하루에 한잔.”

“응, 아침 먹었어. 계란프라이에 빵. 커피도 하루에 한잔만 마실 거야.”

“밀가루 말고 두부 같은 거 먹어. 요즘은 현미밥도 잘 나온다던데. 야채도 먹어야지.”

손님이 밀고 들어오는 시간인가 보다, 친구의 목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되도록 시간 맞춰 먹고.”라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 느리디 느린 나의 말투를 최대한 빠른 말로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뇨, 이것은 비단 나의 친구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갱년기.

고지혈증이나 당뇨, 혈압, 심혈관계, 호흡기 이상 같은 성인병이 갱년기에 접어들며 노화의 시작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과 지금까지 쌓여있는 식습관과 같은 생활방식이 합쳐져서 나온 병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대두되고 있는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증가한 ‘비만’이라는 단어와 폭식으로 일그러진 몸 안, 밖에 쌓인 지방을 제거하고 TV 속 멋진 남녀가 되고 싶은 ‘미용 다이어트’라는 말이 대두되면서 성인병 발병은 나이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맛있는 음식 마음껏 먹고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충족되는 일상의 편안함을 만끽하고, 힘든 운동을 하지 않아도 날씬하고 싶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기에 포기했다.

헉! 갑자기 영화 '월-E'가 생각난다. 엑시옴 우주선에 타고 있는 그들.


사진출처; 영화 월-E 포토 : 네이버 검색


이제는 성인병 Adult disease를 생활습관병 Lifestyle disease을 함께 쓰고 있다 한다.

서울대학교 의학 정보에 따르면 생활습관병 Lifestyle disease는 식습관, 운동습관, 흡연, 음주 등의 평소 생활 습관이 미치는 영향으로 발병, 즉 고혈압,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 동맥경화증, 협심증, 심근경색증, 뇌졸중, 만성폐쇄성폐질환, 천식, 알코올성 간질환, 퇴행성관절염, 악성종양 등과 같은 성인병과 가까운 증상을 발현한다. 성인병은 이제 비단 갱년기에 접어든 중년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인가!


보름 전, 이 친구가 통화 중 단단히 삐졌다.

또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고 잔소리를 하게 됐다.

“아니, 네 입맛에 맞는 음식 중에 그나마 몸에 좋은 걸 골라 먹는 것보다 정말로 네가 가려 먹고 관리해서 주사를 안 맞을 수 있게 몸을 만들어야지. 당뇨든 뭐든 처음에 관리를 잘해야지.”

주위 사람들은 이 녀석에게 미식가라고 말한다.

키 180이 넘고 몸무게 100kg 이하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이 친구는 맛있는 음식을 잘 알고, 내가 맛 좀 아는 녀석이라고 인정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맛 잘 아는 녀석이라 그런지 요리도 제법 웬만한 가정주부보다 잘한다.

우린 이태리에서 만났다.

나는 요리 공부를, 이 녀석은 성악공부를 하고 있을 때, 어쩌다 만난 사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길 건너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한입에 털어 넣던 이 녀석이 어쩌다 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 파스타를 시작해 된장찌개에 돼지고기 김치찜을 먹었고 볶음밥에 나물 반찬과 커다란 계란말이에 불고기까지 먹었을 경, 감자탕을 주문하는가 하면 애주가인 녀석의 술안주를 주문하기 시작했던 놈이었다.

그때 안 해줬어야 했는데, 나도 먹고 싶었고, 다른 친구들도 먹고 싶어 했고, 난 요리하는 게 좋았고, 그래서 난 열심히 만들고 그들은 열심히 먹었었다. 척박했던 한국 요리 재료들로 별 걸 다 만들어 먹었었다.

친구는 한국으로 난 한국에서 호주로 떠났을 때도 네가 해준 요리가 먹고 싶다고 칭얼대던 녀석.


서울에서 375km가 떨어진 나의 집까지 내려와 정종 한 병에 밥을 먹고 간 녀석.

“네가 해준 조기조림 먹고 싶어. 네가 서울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와 친구의 통화 속 대부분은 먹는 이야기뿐인 녀석. 그런 친구가 밥을 가려 먹어야 한다니 얼마나 괴로울까.

내가 친구의 마음을 몰라서 잔소리하는 것이 아니다.

“끊어. 나 지금 너하고 말하고 싶지 않아.”라더니 전화를 진짜 끊어 버렸다.

멍하니 전화기만 쳐다보다 문자를 보냈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 이젠 말 안 할게’

다음 날 아침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도 미안’


며칠 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 친구도 며칠 전화를 하지 않았다.


걱정이 앞서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어디?”

“가게. 신선놀음 중.”

“몸은?”

“검사받으러 병원 갔다 왔어. 주사가 줄었어. 수치가 많이 내려갔다네. 혈압도 내려갔고. 이제 거의 정상으로 가는 중이야. 선생님도 놀라던데.”

“너 혈압도 있었어? 없었잖아.”

“내가 말 안 했구나. 이젠 괜찮아.”

“왜 그런 거래?”

“별 이유가 없나 봐. 선생님도 이 정도로 좋아지면 주사 맞지 않아도 된데.”

“다행이다. 진짜 스트레스 때문인가 봐. 너 한 동안 맘고생 심했잖아.”

“스트레스, 수면부족, 뭐 여러 가지겠지. 나 요즘 도시락 싸 와서 먹거든, 엄마가 반찬 몇 가지 싸주셔서. 그런데 짜. 이젠 엄마 밥에 익숙해져 괜찮을 법한데도 짜네.”

“그래, 그럼 순두부나 연두부 같은 걸 뜨거운 물에 데쳐서 같이 먹어. 그건 너희 카페에서도 간단히 할 수 있잖아. 파프리카나 오이, 당근 같은 야채를 된장이나 소스에 찍지 말고 반찬이랑 같이 먹던가.”

“안 그래도 셀러리 말고 그 뭐냐.”

“아스파라거스?”

“아니. 뭉쳐진 거 양배추 말고. 녹색.

“브로콜리?”

“응, 그것도 잘게 잘라서 데쳐 먹었어.”

“한 10분 정도 물에 담갔다가 건져서 데쳐. 보기보다 이물질이 많이 나온다.”

“잘게 잘랐는데도?”

“응. 양배추는 한 이삼십 분. 양배추 데쳐서 양념장 넣어 먹지 막고 엄마 반찬 넣어서 먹어.”

“나 연두부 사다 먹고 있다. 그런데 순두부는 부서져서 먹기 힘들잖아.”

“부서지면 어때, 짜게 먹는 것보다 좋지. 나도 어제 순두부 먹고 남은 거로 계란찜 했는데.”

“맛있겠다. 또 뭐 먹지? 네가 서울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 홍합 먹었는데, 응. 너희 가게에서도 할 수 있어. 응. 어떻게 만드냐면….”

나도 친구 덕에 내 몸 관리를 더 하게 되었다.

성인병이란 내가 지내왔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자신을 스스로 뒤돌아보며 절제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친구야, 우리 같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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