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도 시원하게 지나갑니다.
무심히 핸드폰을 힘주어 내동댕이치듯 소심히 툭 던져 놓았습니다.
그리곤 한동안 핸드폰을 찾지 않았습니다.
분명 점심 먹을 때 즈음이었는데 해가 저물어가네요.
발에 툭 걸리는 핸드폰. 죄 없는 이 녀석을 이유도 없이 홀대해 미안하더군요.
미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렸습니다.
액정이 켜있네요.
어라!
그런데 말입니다.
Mr text 작가님의 ‘자존(自尊)이란’이라는 제목의 글이 열려있어는 겁니다.
내동댕이치기 전에 분명 제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 맨 아래 작대기 세 개와 화살표같이 생긴 모양 사이 네모인지 동그라미인지 알쏭달쏭한 모양을 눌렀던 기억은 있지만, 브런치 스토리를 켜 놓지 않았고요.
제가 수시로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탓에 브런치 스토리 사이트가 열려있다 하더라도, 한 번도 들려 본 적 없는 Mr text 작가님의 서재였습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자존(自尊)이란’이란 제목의 글을 바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자존감은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축’
그리고 구독을 눌렀지요.
어쩌면 필연 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저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자존심’ 말고 ‘자존감’이란 단어였거든요.
중복이라 훈제 오리를 사 와 식탁에 올려놓고, 무심히 서서 글을 읽고 또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켜고 생각에 빠졌습니다.
요 몇 년 사이, 귀촌하고 나서, 한국에 들어와 10년, 그리고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타인과 만남은 쉽지 않아.’라는 이유로 사람들과 어울렁더울렁 지내기를 꺼리기 시작하던 저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실망함을 타인에게 전가한 셈이죠.
정말 못나지 않았습니까?
반성이 필요한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넋 놓고 있다 보니 배에서 밥 달라고 성화입니다.
이 심각한 와중에도 배는 고파집니다.
주방 식탁에 놓여있는 오리를 냉장고에 집어넣었습니다.
냉동실에 봄에 썰어 넣어 놓았던 표고버섯을 꺼내고, 냉장고에서 베이컨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적양파를 꺼냈지요.
냄비를 꺼내 물을 받아 소금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적양파와 베이컨을 썰었습니다.
마늘도 다졌습니다.
물이 끓기에 파스타를 넣어 삶아줍니다.
프라이팬에 베이컨을 볶다가 녹인 썬 버섯을 넣어 다시 볶았습니다.
볶은 베이컨과 버섯을 그릇에 담았습니다.
프라이팬은 닦지 않고 약한 불로 줄여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을 볶았습니다.
마늘을 편으로 썰어야 하는데 왜 다져 놓았을까요?
프라이팬에 양파를 넣고 볶아줍니다.
양파가 너무 많습니다.
그냥 볶았습니다. 거기에 볶아놓은 베이컨과 버섯을 넣어 다시 볶습니다.
파스타 면수를 국자로 떠서 넣었습니다.
아! 페페론치노.
볶을 때 넣었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넣어야겠습니다.
소금, 후추.
그런데... 양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래도 반은 덜어 놓았다가 밥이랑 먹어야겠어요.
아~ 푸실리를 삶았네요.
푸실리와 면수를 넣고 잘 섞어줍니다.
면수가 소스와 잘 어우러져 크리미 해졌나 봐요.
불을 끄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을 넣어줍니다.
잘 섞고 접시에 담았습니다.
볶아놓은 소스를 반이나 덜었는데도 양이 너무 많네요.
식탁에 앉아 푸실리와 버섯, 베이컨 그리고 양파를 올려 한입 물었습니다.
속도 없이 매콤한 오일파스타가 맛있습니다.
식탁에 포크와 수저를 내려놓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생각하며 적어 내려갑니다.
이렇게 중복을 시원하게 지나가나 봅니다.
오늘
참 기분이 묘한 날입니다.
Mr text 작가님의 자존(自尊)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