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에 갈 일이 있었다.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피부과를 찾기가 힘들어 인터넷으로 한참 동안 병원을 알아보다가 마침내 한 곳을 찾게 되었다. 어렵게 찾아간 그곳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내 증상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은 연고 두 종을 처방해 주면서 "술 마시지 말고, 2주 동안 빼먹지 말고 매일 연고 바르세요. 그러면 약 안 먹어도 좋아질 거예요."라고 했다. 2주 후에 다시 와서 상태를 보고 그다음 처방을 어떻게 할지 정하자고. 그런데 나는 당장 3일 후에 도저히 빠지기 어려운 회사 회식이 예정되어 있었고, 회사 업무 말고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병원에 다시 올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는데 술을 정말 마시면 안 되냐, 2주 후에 안 오면 안 되냐고 묻는 나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일이 많아서 병원을 안 온다고요? 그건 자기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거예요. 친구들을 만나서 누가 누가 성공했다, 부자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기분 나빠서 오는 게 자존이 상한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자존이 상하는 짓이에요. 일을 왜 해요?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아픈 나를 내버려 두고 술도 마시고 일도 하고 그래요? 병원에는 안 오고?"
노(老) 의사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자존(自尊)'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존(自尊)'이란 단어가 들어간 가장 대표적인 말은 누가 뭐래도 '자존-심'과 '자존-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다. 즉, 자존심은 타인의 시선과 비교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했을 때, 내 능력이 폄하되었을 때 우리는 "자존심이 상했다."라고 표현한다. 누군가 직접적으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경쟁 열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 역시나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결국 자존심은 외부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인 셈이다.
반면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대하며 품위를 지키려는 감정"이다. 외부의 평가와 무관하게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중심으로 하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내면의 확신이 자존감의 핵심인 셈이다.
우리가 진짜 지켜야 할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일 것이다. 자존심은 우리를 때때로 방어적으로 만들거나 외부의 평가에 휘둘리게 만들지만, 자존감은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축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몸이 아플 때 병원을 갈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닌데 병원에 가느라 자리를 비우기까지 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병원을 가지 않았다면, 이것은 자존심을 세운 일이 될 것인가 자존감이 낮아지는 행동을 한 것인가. 일의 양과 책임의 경중, 컨디션의 정도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지겠지만 그 어떤 일보다도 자신의 건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문제지만.)
결국 자존은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자존은, 스스로를 위해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다. 누군가는 조용한 산책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찾고,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친구와 대화를 통해, 다른 어떤 이는 오롯이 홀로 앉아 명상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돌본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존은 거창한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하루 세끼를 잘 챙겨 먹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충분히 쉬고 충분히 회복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이런 사소한 행동들 하나하나가 나를 존귀하게 대하는 일이고, 그것들이 모여 나를 존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는 항상 바쁘고,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쌓여 있다. 하지만 자존이 선행되지 않는 노력은 타인의 시선을 위한 소비적인 행위가 되기 쉽다. 가끔씩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 나를 존중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잘 모르겠네."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잠깐 멈춰 쉬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그것이야 말로 진정 자기를 존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