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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해 밥 하는 시간 '죽순 비빔밥'

혼밥, 너무 편하다

by 서진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다는데, 나는 혼자 잘 먹는다.


아침에 누워 몸을 좌우로 비틀고 구부렸다 펴기를 반복, 가만히 누워 숨을 한번 내쉬고 벌떡 일어나 이불을 접었다. 미적지근한 물 한잔을 마시고, 오늘 날씨를 느껴보려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나섰다. 이른 새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가만히 조그만 아파트를 한 바퀴를 돌아 옆에 옆집 할머니를 만났다.


“운동 나왔당가? 나도 동네 한 바퀴 싸목싸목 돌고 오는디. 그나저나 오늘도 허버 더울랑가벼?”

“일찍도 나오셨네. 예. 오늘도 덥겠어요.”

“뭣한다요?” 옆집 딸 할머니가 냄비를 들고 내려오셨다.

“안녕하세요.” 옆집 딸 할머니가 날 한번 쓱 위아래로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인사법이었다

“뭣 땜시 일찍 나왔디야. 할마씨는 인났소?” 옆에 옆집 할머니께서 옆집 딸 할머니에게 엄마 할머니 안부를 물어봤다.

“벌써 인났제. 아까 침에 진지도 깨깟이 드십디다.” 그러곤 날 한번 바라본다. '넌 밥 먹었냐?'라는 뜻이었다.

“아따 빨리도 드셨소. 평안하신가베. 나도 인자 밥 먹으러 갈라요.”라며 굽은 허리로 유모차에 시동을 걸고 나를 바라봤다.

“저도 밥 먹으러 올라가려고요.”

“난 이거 조까 버리고 싸게 따라갈라요. 어서 드쑈.”라며 작고 가녀린 몸으로 손에 들린 냄비를 들고 잽싸고 빠른 걸음으로 음식물 수거장으로 향하셨다.


“그럼 저는 들어갈게요.”

“밥 안 묵고 그냥 갈라고?”

“저도 씻고 나가야죠.”

“나도 싸게 밥 먹고 회관 갈라네.”라며 옆에 옆집 할머니는 현관 앞에 유모차를 주차했다. 빠른 동작으로 허리를 뒤로 젖혀 한 손으로 허리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도어록을 틱틱틱틱 눌러 문을 열어젖혀 방충망을 닫았다. 그리곤 날 쳐다보고 “걱정 말고 들가.”라며 손짓을 했다.

“걱정 안 해요. 그냥 찬찬히 갈라고.”라며 내가 웃자, “지랄.”이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꽃단장하러 들어가셨다.

거의 매일 같은 말을 주고받지만 언제나 새로운 일인 양 즐거워하는 할머니들이 부러웠다.


그나저나 이러다 사투리가 입에 눌어붙을까 봐 약간, 아주 아~주 조금 걱정되지만... 할 수 없지.라고 중얼거리며 옆집을 지나쳤다.


항상 방충망도 닫지 않은 열린 현관에서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오늘 아침은 엄마 할머니가 좋아하는 생선국을 끓였나 보다.

나도 배가 고팠다.


집에 들어온 나는 곧장 목욕탕에 들어가 찬물과 한바탕 물놀이를 끝내고 시원한 팔을 흔들어 냉장고를 열었다.

당장 한입 베어 물으면 이가 시릴 사과 하나. 토마토 하나를 꺼내 씻고 잘라 접시에 담아 의자에 걸터앉았다. 사과 한쪽을 베어 물고 다리를 까딱 거리며 베란다 건너 아침 운동 나온 분들 아침 담배 피우러 나오신 아저씨, 그들을 그냥 바라봤다.

삶아두었던 달걀 두 알을 냉장고에서 꺼내 톡톡 두드려 껍질을 까고 입안에 가득 넣었다. 그리고 토마토 한 조각을 입안에 밀어 넣으며 흘러내린 육즙을 손가락으로 끌어올려 입술 틈으로 집어넣었다. 입안에 가득한 토마토와 달걀이 이리 섞이고 저리 섞이며 츱츠츠츠읍 입안을 끌어당겼다.

가슴이 가득해지니 배도 가득해졌다.

조금의 시간, 입안이 즐거워 절로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내가 벌써 50대 중반이라니, 시간은 쏜살같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1층 할머니가 “어디 다녀 오요?”라며 날 바라보고 계셨다. “집에 들어와 차 한잔하고 가쑈. 그냥 갈라요.”라는 말에 목인사만 드리고, 집으로 향하는 날 바라보는 시선이 뒤꼭지에 꽂혔다.

예전 학생의 시어머님이라 잠시 말동무가 되어드리겠지만, 한번 붙잡히면 헤어 나오기 힘든 분이라. 죄송한 마음을 안고 잽싸게 튀어 1층 할머니의 레이더에서 도망쳤다.


옆에 옆집 할머니가 푸성귀값이 너무 올랐다며 투덜거리시더니 고세 김칫거리를 사다 김치를 담았은 것 같다. 갓 담은 열무김치 냄새가 집안 가득한지 풀풀 새어 나왔다.

옆에 옆집 할머니는 꼬부랑 허리를 받쳐가면서 자식들을 위해 조그만 텃밭에서 지은 채소로 김치를 담는다. 고추를 말리고, 깨를 수확해 짠 참기름과 갖가지 장아찌를 담아 자식들을 위해 준비한다.

옆에 옆집 할머니가 젊어서부터 남 챙겨주는 마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가끔 보면 굽은 허리로 유모차에 국이나 김치 아니면 반찬이 든 냄비나 반찬통울 담았다. 그리고 걷어 온 농산물도 유모차에 실어 거동이 불편한 이웃 할머니에게 챙겨 드렸다.


아마 5시쯤 식사가 끝난 옆집 딸 할머니가 엄마 할머니의 이부자리를 손보는 중이었다.

몰래 훔쳐보려 하지 않았지만. 항상 문을 열고 계시니 절로 움직이는 내 시선을 무의식 중엔 컨트롤이 힘들다. 거기다 옆집 할머니 중 한 분과 눈이 마주치면 난처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속도 없는 내 시선은 할머니 집 거실과 안방을 스쳐 지났다.

다행히 할머니들이 나의 기척을 못 느끼셨나 보다.


나이 80이 넘으면 내 몸건사하기도 힘들지 않나 싶은데 옆집 할머니나 옆에 옆집 할머니는 아직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밥하고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나의 미래는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내가 1층 할머니를 자꾸 피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며느리 즉 나의 예전 제자나 다른 분들의 썰에 의하면 나와 잘 지내는 할머니들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았다는 거다.


예를 들자면, 내가 처음 1층 할머니 집에서 차를 마시던 날...

“내가 젊었을 때 얼마나 이뻤는지 아요?”

“몸매가 좋아서 인기도 많았제. 내 가슴이.”라며 정말 가슴을 보여주시는데...

그 후 1층 할머니와는 눈을 피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1층 할머니 옆집 보안관 할머니는... 그 이야기는 다음에.


그러나 나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른 이를 위해 밥 하는 즐거움에 빠졌던 시간을 잠시 멈추었다.

이제 나는 날 위한 밥을 짓는다.


죽순 비빔밥


1. 봄에 채취한 죽순을 냉장고에 넣어 녹였다. 쭉쭉 찢어 물기를 짜준다.

고추장 가득 2T, 고춧가루 1T, 만들어 두었던 사과잼 1T, 간장 1T, 후추와 소금 조금을 넣고 주물주물 간이 배도록 주물러준다. 많이 주무를수록 죽순도 부드러워진다. 그렇다고 너무 주물러 걸레를 만들지는 말자.



2. 당근, 오이, 버섯, 상추 등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내 채를 친다.



3. 버섯은 소금을 살짝 넣어 볶아준다.


4. 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양념한 죽순을 구워준다. 강한 불에서 연기가 살살 나기 시작하면 약물로 줄여 익힌 다음 중간 불에서 물기를 날려 준다.

태울까 봐 나는 못하겠다 싶으면 기름을 두르고 볶아준다.

5. 달걀 프라이를 익혀낸다.


그릇에 쌀 3 : 콩 2 : 귀리 1 : 보리 1 : 수 1로 한 밥을 넣는다.

밥 위에 채를 썬 상추를 사르르 둘러 깔아준다.

구운 죽순과 당근, 오이, 버섯을 올린 다음 달걀 프라이를 올려 준다.

살짝 갈아 놓은 깨를 뿌린다.


*참기름을 넣으면 고소한 맛을 더한다.

*싱거우면 고추장이나 양념간장을 넣어 먹는다.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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